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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안을 둘러싼 논쟁의 지점이 어디에 집중되느냐는 그 사회의 주된 관심사와 맞물려 있다. 하지만 그래서 그 사회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대학 교육의 공공성 확충과 학벌 서열 체제 완화를 위해 2003년 처음 제안된 뒤, 교육계에서 9년 동안 논의되어온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방안이 ‘서울대 폐지론’으로만 축소돼 논의되는 현상은,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가 얼마나 서울대 중심의 사고방식에 얽매어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최근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썼다”는 서울대 출신의 한 사회과학도는 <한겨레> 온라인 토론 사이트에[각주:1], 그리고 “대학 평준화는 서울대의 국제적 경쟁력 하락을 불러올 것”이라는 한 서울대 사회학과 학부생은 보수 일간지에[각주:2] 각각 글을 기고했다. 이 사실 역시 한국 사회의 주된 발언 권력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득권층에 포함된 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활용해 배제된 자들의 욕망을 자신들의 욕망으로 형질 변환시키면서도, 배제된 자들의 욕망이 결국 현실로 재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은폐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한다.

 

‘아마추어리즘’을 지적하는 아마추어적 시각

 

서울대 출신의 사회과학도가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방안(이하 통합네트워크안)을 ‘개악’이라고 규정한 근거부터 톺아보자. 먼저 이 사회과학도는 민주통합당이 통합네트워크안을 대선 공약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참으로 그 어떠한 것도 검증되지 않은 아마추어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앞에서도 밝혔다시피, 통합네트워크안은 2003년 정진상 경상대 교수가 제안한 뒤, 2004년 민주노동당이 총선 공약으로 채택하면서 이미 한 차례 대중적인 논의를 거쳤다. 이후 9년 동안 교육계에선 통합네트워크안을 기반으로 단점을 보완한 추가 방안이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민주노동당은 2010년 ‘국공립대 통합단과대체제’ 방안을 제시했고, 전국교수노동조합,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 등 3개 교수단체는 2011년 ‘국립교양대학안’과 ‘국가연구교수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올 초에는 교육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순회 토론회를 거쳐 ‘좋은대학 100 플랜’을 제안했다. 민주노동당이 2000년대 초반부터 정책 공약으로 제시했던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등을 민주당이 2010년에서야 뒤늦게 흡수한 것처럼, 이번에도 9년 동안 검토되고 깊이를 더해온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민주당이 이제야 받아 안은 것뿐이다. 그런 역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통합네트워크안을 ‘민주당의 아마추어리즘’으로 지적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얼마나 아마추어적인가.



 

게다가 이 사회과학도는 “우리나라의 대학 입시가 이렇게 과열 양상을 띠는 이유는 물론 전 국민이 필요 이상으로 대학을 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79%다. 10명 가운데 8명이 대학에 진학한다. 하지만 이는 “전 국민이 필요 이상으로 대학을 가려는 것”이 이유가 아니라,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사회 구조 때문이다. 그리고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주도해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발표된 ‘5․31 교육개혁’에서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도입하고 사실상 대학 설립을 허가제에서 신고제식으로 바꾸면서, 대학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 조처는 정부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하는 사회 구조를 바꾸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되레 그런 모순 구조를 이용해 지방 토호 권력들에 대학 설립의 길을 열어준 근거가 됐고, 현재와 같이 유령대학과 부실대학이 생겨난 이유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필요 이상으로 대학을 가려 한다”고 ‘전 국민’을 책망할 수 있을까.

 

서울대 학벌 지위 상실이 계층 이동 기회에 악영향?

 

그는 또 “국공립대를 통합하더라도 대학 서열은 폐지하지 못하며, 대학 서열은 이미 그 자체의 정의상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1위’라는 것이 없을 수 없다. 서울대가 없어진다면 대학 입시의 최정점은 연세대나 고려대와 같은 기존의 명문 사립대가 차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사립대는 ‘고교등급제’까지 적용하면서 “입시 문제나 교육 평등에 별 관심이 없”지만, “서울대는 지역균형선발제도를 도입하고 대학 장학금 기준을 가정 형편 기준으로 재편하는 등 부족하나마 나름대로 우리 사회의 교육 기회균등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덧붙였다.

 

이 주장은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지금과 같이 전국의 대학이 층층이 서열화해 있는 상황에서, 통합네트워크안에 따라 서울대가 ‘한국 26대학’이 되면 사교육 기관과 보수 언론이 발표하는 ‘배치표’상 서열은 당분간 연세대와 고려대의 차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의 교육 기회균등을 위한 노력은, 결과적으로 봤을 때 실패했다.

 

2010년 서울대 신입생의 20.2%(과학고 10.5%, 외국어고·국제고 9.7%)는 특수목적고 출신이었다. [각주:3] 연세대는 25.9%(과학고 4.8%, 외고·국제고 21.1%), 고려대는 20.5%(과학고 2.6%, 외고·국제고 17.9%)였다. 2011년 서울대 신입생의 특목고 출신 비율은 22.6%로 2010년보다 더 늘었다. [각주:4] 특목고생 비율만 따졌을 때 서울대는 연세대나 고려대와 별반 차이가 없다. 일부에선 “서울대에 과학고 출신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과학고도 외고나 국제고와 마찬가지로 상층 계급 가정 출신 학생이 많은데다, 과학고 출신 학생들은 서울대가 아니면 의대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2011년 서울대의 외고 출신(국제고 제외) 신입생 비율이 12.4%로 2010년에 견줘 급증했다는 점을 보면, 일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특목고를 제외한 일반계고 출신 합격자에서도 서울대의 특권층 쏠림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1년 서울대에 합격한 서울 지역 일반계 고교생 686명 가운데 42.5%(292명)가 ‘강남 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출신이었다. [각주:5] 전체 합격생 3255명 가운데 9%에 이르는 수치로, 결국 10명 가운데 3명 이상(31.6%)이 특목고 출신이거나 ‘강남 3구’ 출신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현재의 서울대는 사회과학도가 생각하는 만큼 ‘교육 기회균등 노력’에 결과적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서열 1위가 서울대가 됐든 연세대가 됐든 고려대가 됐든 한국 사회의 교육 양극화와 불평등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사회과학도는 “민주통합당이 생각하는 방안은 그 의도와 달리 가난하지만 재능 있는 학생들에게 그나마 열려있는 계층 이동의 기회를 줄여버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말했지만, 계층이동의 기회는 이미 줄어들고 있다. 이 때문에 통합네트워크안을 바탕으로 ‘반값등록금’ 예산 추정액(7조)의 20% 정도인 1조5000억원을 투입해 국공립대 등록금의 80%를 차지하는 기성회비를 없애, 국공립대 등록금을 ‘연간 수업료 75만원’ 수준으로 사실상 무상교육을 하는 것이 저소득층에 고등 교육의 기회를 열어주는 실질적인 장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김영삼 정부 이후 민주정부 10년을 거쳐 이명박 정부까지 17년을 이어온 ‘대학 자율화’ 조처를 약화시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해온 연세대와 고려대 등 서울 소재 주요 사립대의 정원을 차츰 줄인 뒤, 남는 정원을 통합네트워크가 흡수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사학 법인이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은 채, 정부 지원금과 학생들의 ‘연간 1000만원’대 등록금으로 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사립대의 ‘돈줄’을 끊는 방법은 다름 아닌 사립대 학생 정원 감축이다. 사실상의 무상 교육으로 국공립대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을 집중시킨 뒤 사립대와 경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출처 : <서울신문>


 

우수한 학생/교수가 없어 국공립대가 하향평준화?

 

사회과학도는 또 “국공립대 통폐합은 국공립대의 하향평준화를 낳을 것”이라며, 그 근거로 “서울대를 폐지할 경우 봉급도 적고, 이름값도 없는 서울대에 뛰어난 교수들이 올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4학년 한형직씨도 앞에서 언급한 글에서 “국공립대가 평준화된다 한들 학벌주의가 사라질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 오히려 서울대의 국제적 경쟁력 하락이 우려된다. 또 경쟁원리에 따른 위계적 질서는 사회발전의 동력 중 하나로, 대학과 교육의 의미를 되새겨본다면 무조건 평준화를 옹호할 수만은 없다”는 주장으로 사회과학도와 비슷한 논지를 펼쳤고, 대부분의 통합네트워크 비판론자들도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일단 사회과학도의 주장은 전형적인 논점 일탈의 오류다. 통합네트워크안은 서울대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대 학부생 선발을 폐지하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즉, 서울대 대학원은 그대로 유지되고, 학부 수업도 통합네트워크의 다른 캠퍼스에서 선발된 학생들을 위해 개설된다. 사회과학도의 주장이 논점을 일탈하지 않으려면, “서울대의 학벌을 폐지할 경우 이름값도 없는 서울대에 뛰어난 교수들이 올 이유가 없다”라고 주장했어야 했다. 논점을 바로잡은 이 주장을 인정한다면,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서울대의 학벌 지위’만을 보고 서울대로 온 교수들은 아마 사립대로 일부 유출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기만 할까.

 

대학 정보 공시 사이트인 ‘대학 알리미’를 통해 2010년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중앙정부 지원 연구비를 산출해보면, 서울대가 4497억여원으로 가장 많았고, 연세대(2169억여원), 고려대 (1357억여원), 성균관대(1203억여원), 한양대(1015억여원), 이화여대(681억여원), 서강대(528억여원), 건국대(473억여원), 중앙대(391억여원), 경희대(370억여원) 등이 뒤를 이었다. 중앙정부의 연구비 지원이 실적에 따라 ‘서열 상위권 대학’에 편중된 결과다. 전국 251개 4년제 대학 전체의 중앙정부 지원 연구비를 산출 해봐도, 연세대(2위), 고려대(4위), 성균관대(5위), 한양대(6위), 이화여대(11위) 등 상위 20위권 안에 주요 사립대가 10곳이나 포함됐다. 서열에 따라 과도하게 지급되는 사립대의 중앙정부 연구 지원비를 줄여 사립대가 스스로 연구비를 충당하도록 하고, 통합네트워크 내부의 국공립대에 연구비를 집중 지원하면 국공립대 교수들의 연구 환경이 보장돼 사립대 유출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다. 게다가 통합네트워크안에서 가지를 치고 나온 ‘국가연구교수제’ 역시 교수와 연구 인력 유출을 방지하면서도, 국공립대가 연구 능력을 높일 수 있는 물적 토대를 형성해주는 방안이다. ‘국가연구교수제’는 국가가 최대 3만명 정도의 연구교수를 뽑아 기본 수당을 지급[각주:6]해 박봉에 시달리고 있는 시간강사들에게 물적 토대를 마련해주자는 방안이다. ‘우수 교수’ 한두 명에게 매달리는 시스템보다,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3만명의 강사들을 양성하는 것이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서울대의 국제적 경쟁력 하락이 우려된다는 논리도 근거가 미약하다. 통합네트워크 교수들의 상대적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그들의 주장을 해석하자면, ‘서울대의 학부 강의를 듣는 학부생들의 수능 성적과 학생부 내신 성적 수준이 서울대 학벌 서열이 1위일 때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서울대의 국제적 경쟁력이 하락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제적인 대학 평가를 진행하는 어느 기관도 학부생의 입학 성적을 바탕으로 대학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곳이 없다. 게다가 대학별로 진행되는 국제적인 대학 평가는 사실 별다른 의미도 없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올림픽에선 금메달까지 따오며 환호를 받지만 국내에선 매일 팀이 해체되면서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핸드볼처럼, 대학 한 두 곳을 내세워 국제적인 대학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도 국내 대학 교육과 연구 생태계가 파괴되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국공립 체제로 대학 무상교육을 하는 북유럽 국가들이 국가 단위의 대학 경쟁력을 살펴봤을 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이나 세계경제포럼의 고등교육 경쟁력 평가에서 상위 점수를 받는 사실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회과학도는 또 “공무원과 거점 국립대병원 등 의료기관 인력을 뽑을 때 일정 비율을 지역 대학 출신자에게 할당하자는 방안”도 “공무원이나 의료 기관에서 근무할 대졸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라며 “미봉책”이라고 주장했다. ‘대학 알리미’를 통해 국공립대 29곳의 2011년 졸업생 숫자를 산출해보면, 모두 6만2728명이 국공립대를 졸업했다. 이 가운데 건강보험공단의 데이터베이스에 올라간 취업자, 즉 4대 보험 적용을 받는 정규직 취업자는 2만9634명으로 47.2% 정도다. 행정안전부는 올해 전국 16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모두 1만330명의 지방공무원을 신규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각주:7] 서울대학교병원은 올해 모두 1345명을 채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정규직 취업자가 졸업생의 47.2% 밖에 안 되는(사립대 출신들도 비율은 비슷한 수준이다) 국공립대에 1만330명의 지방공무원 일자리, 1345명의 서울대병원(전국의 국립대병원은 이 밖에도 12개가 더 있다) 일자리가 정말 적은 숫자일까.

 

스스로 공부해서 서울대에 진학했다고?

 

사회과학도의 주장은 ‘서울대를 위한 변명’이란 부제가 달린 단락에 이르면, 사회과학도라는 호명이 민망할 정도로 객관적 근거가 없는 주장으로 전락한다. 그는 “필자 자신은 강남 8학군 학생 중에서는 확실히 사교육을 적게 받은 편이었으며 이는 필자 어머니의 평생 자랑거리”였다며 그 정도로 적게 받은 사교육 수준이 10년 가까운 대학 세월 동안 만난 수십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서 ‘사교육을 가장 많이 받은 편’이라고 주장했다. 즉, 자기 주변의 서울대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대에 진학했으니, 서울대는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서울대 자체가 부유층의 계급 세습 수단이지 않느냐는 비판이 온전히 타당하지는 않다”라고 주장한다. 기본적으로 통계적 근거조차 상실한 채 “내가 만나봐서 아는데…” 수준인 이 주장에 대해 그는 후속 글에서 “사회과학 방법론에서 흔히 말하는 ‘계통적 표본추출 방법’으로 추출한 표본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뒤늦게 “사교육은 대학 진학에 효과가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 논문[각주:8]을 제시한다.

 

‘사교육이 대학 진학에 효과가 있느냐’는 것은 2000년대 교육학계에서 주요한 논쟁 사안 가운데 하나였다. “효과가 있다”는 연구도 있었고, “효과가 없다”는 연구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효과가 없다”는 연구조차 대부분 한국 사회에서 대학 진학이 부모의 계급에 따라 영향을 받고 있다는 기본 팩트는 부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교육이 대학 진학에 효과가 없는 것은, 사교육을 받지 않을 경우 가중되는 ‘불안 심리’에 의해 학부모와 학생 대부분이 함께 사교육에 투자하는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을 받아 옆에 있는 친구를 ‘눌러야’ 하는데, 옆에 있는 친구도 대부분 사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에 정작 대학 진학을 위한 상대평가 경쟁에서 사교육의 비교 우위 효과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사회과학도가 이 논문에서 최 교수가 중요한 전제로 두고 있는 팩트를 완전히 배제한 채, 입맛에 맞는 결론만 쏙 빼냈다는 사실이다. 최 교수는 논문의 초기 전제로 ‘소득분위별 대학진학률 격차’를 제시하면서, “최상위 25% 소득계층의 자녀들이 상위권(상위 10개 또는 21개) 대학 진학률은 최하위 25% 소득계층 자녀들의 상위권 대학 진학률에 비해 거의 5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나 소위 학력/부의 세습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따라서 현재의 교육적 상황에서 소위 ‘개천에서 용나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학력/부의 세습->임금 격차->다시 세습’의 악순환

 

부모의 학력과 부의 세습에 의해 벌어지는 학벌 격차는 고스란히 학벌 프리미엄으로 작동한다. 지난해 4월 한국노동경제학회의 논문집 <노동경제논집>에 실린 고은미의 논문 ‘1999~2008년 한국의 대졸자 간 임금격차 변화’를 보면, 2008년 기준으로 최상위 13개 대학 출신 취업자들은 14~50위 대학 졸업자보다 14.2%, 51위 이하 대학 졸업자보다 23.2%, 전문대 졸업자보다 42%나 임금을 더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999년에는 최상위 13개 대학과 14~50위 대학 졸업자의 임금 격차가 1%에 불과했다. 9년 사이에 ‘학벌 프리미엄’이 훨씬 커진 것이다. 결국 부모의 학력과 부의 세습에 의해 학벌을 세습 받은 이들이 노동 시장에서 임금을 더 받고, 이 임금을 바탕으로 학벌 하위 대학 졸업자들과의 경제력 격차를 늘려, 다시 학력과 부를 세습하는 악순환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과학도는 후속 글에서 “명문 대학이 그 명성을 이어가는 것은 명문 대학이기에 우수한 교수들과 학생들이 모이고 이것이 다시 명문 대학으로서의 명성을 유지하는 선순환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논점 일탈 투성이에 전혀 사회과학적이지 않은 ‘서울대’ 사회과학도의 글이 되레 ‘명문대’라는 호명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 아닐까. 이에 대해 트위터에선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안에 반대하는 글을 서울대 학생들이 자꾸 쓰면 쓸수록 어쩐지 그들이 우려하는 ‘하향평준화’와 ‘국가경쟁력 약화’가 별로 우려할 일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는 듯하다. 도대체 그런 수준의 글을 쓰면서 뭔 하향평준화를 걱정하나”(@gaLaYoung)라는 말이 나왔다.

 

‘한국형 평등주의’의 재현, 교육 경쟁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선

 

한국 사회는 기이한 평등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그 기이한 ‘한국형 평등주의’에 대해 <88만원 세대>의 저자 박권일은 이렇게 얘기했다. “일반적 의미에서 평등주의는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적게 갖는 건 불공평하다’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형 평등주의는 ‘나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이다. 자매품으로 ‘내 새끼도 서울대 가야 한다’와 ‘나도 MBA 따야 한다’ 등이 있다. 즉, 일반적 평등주의는 ‘사회 전체의 비대칭’을 문제 삼는 데 비해, 한국형 평등주의는 ‘부자와 나의 비대칭’을 문제 삼는다. 전자의 처지에 서면 필연으로 부자가 가진 것을 일정 부분 빼앗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야 못 가진 자에게 분배할 테니까. 그러나 후자의 처지에 서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 부자들의 것을 빼앗는 것은 곧 자신의 숭고한 목적을 훼손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부자 되기’ 처세서가 불티나게 팔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각주:9]

 

한국은 ‘배제된 자’ 80%가 기득권을 가진 20%의 ‘포함된 자’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에 따라 출렁이는 사회다. 그리고 교육은 그 욕망을 재현하는 주요한 기제로 작동한다. 하지만 학벌은 한국 사회의 20%가 100%의 기득권을 자신의 아래 세대 20%에게 세습하는 도구가 된 지 오래다. 통합네트워크안이 발표되자마자 가장 극렬하게 반대 목소리를 낸 이들이 바로 서울대 출신들이라는 점은, 그들의 기득권이 어떻게 그들의 발언권을 통해 재생산되고 있는지 보여줬다. 이제 80%가 20%를 욕망하며 20%의 얘기를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80%의 주체적인 일성을 외칠 때가 오지 않았을까.


*한겨레 훅에 실렸음.

  1. 윤준현, ‘국공립대 통폐합? 민주통합당의 아마추어리즘’, http://hook.hani.co.kr/archives/43662 [본문으로]
  2. 한형직,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국립대 연합’ 구상’, 중앙일보 2012년 7월14일치,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2/07/14/8380207.html?cloc=olink|article|default [본문으로]
  3. ‘SKY 대학 신입생 5명 중 1명꼴로 특목고 출신’, 중앙일보 2010년 10월2일치,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490539&cloc=olink|article|default [본문으로]
  4. ‘서울대 특목고·재수생 독식… 배출高 7년만에 첫 감소’, 서울신문 2011년 2월23일치,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223021003 [본문으로]
  5. ‘[2011학년도 합격자 분석 (상)] 서울대 신입생 강남 3구 쏠림 심화’, 서울신문 2011년 2월23일치,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223001009 [본문으로]
  6. ‘국가연구교수제’를 제안한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국가재정 7200억원 투입으로, 국가연구교수 3만명에게 연봉 2400만원을 보장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본문으로]
  7. ‘지방 공무원 채용인원 전년비 4.4% 증가’ , 파이낸셜뉴스 2012년 2월6일자, http://www.fnnews.com/view?ra=Sent1201m_View&corp=fnnews&arcid=201202060100045060001807&cDateYear=2012&cDateMonth=02&cDateDay=06 [본문으로]
  8. ‘사교육의 대학 진학에 대한 효과’, 2007년, 최형재 고려대 교수, http://222.110.238.9/pub/docu/kr/AI/WP/AIWP2007AAA/AIWP-2007-AAA.PDF [본문으로]
  9. ‘부자에게 유리한 한국형 평등주의’, <소수의견>, 박권일, 2012년, 자음과 모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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