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곽정은이 방송에 함께 출연한 가수 장기하를 두고 “침대에서 어떨지 궁금해진다”고 발언해 파문이 일었다. 사람들은 이 발언이 명백한 성희롱 혹은 성폭력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화자가 남성이었고 대상이 여성이었다면 그 남성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차했을 것이라며 곽이 이에 응당하는 책임을 지지 않으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된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평소 진보적인 관점을 견지해온 다수의 여성도 이 논점에 기대 비판에 합류했다는 사실이다. 일부에선 이 ‘다수의 여성’이 ‘명예 남성’의 지위에서 곽정은에 대한 비판에 합류한 것 아니냐고 역비판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현상은 언뜻 보기에 긍정적인 면이 있다. 사회가 구조적으로는 여전히 여성에 대해 차별을 가하고 있다 하더라도, 인식..
‘5일의 마중’은 시대의 폭력에 관한 영화다. 시대의 폭력은 대체로 집단과 제도 속에 가해자를 은폐한다. 반면 피해자는 또렷하다. 피해자는 늘 죄책감을 품고 산다. 시대의 폭력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서는 자신 역시 폭력에 편승하는 가해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모두가 각자 가해자로 살아남았다 생각하지만, 대체로 동시에 죄책감을 품은 피해자가 되어 살아간다. 폭력의 상흔이란 그렇게 서로를 옭아매 죄책감의 연대를 구성한다. 펑완위(공리)는 남편 루옌스(진도명)와의 생이별 과정에서 딸 단단(장혜문)과 갈등을 빚고, 공안의 폭력까지 겹쳐 ‘심인성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문화대혁명으로 감옥에 갇혔던 루옌스가 20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지만, 펑완위는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루옌스의 얼굴을 루옌스로 인..
국가 기관은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개인이나 기업의 정보를 수색하고 범죄 혐의를 파악할 권리가 있다. 그 정보는 개인의 신상 정보가 될 수도 있고, 개인의 발언이 될 수도 있다. 기업의 모든 정보도 포함된다. 이 합의는 어떤 경우에도 무너질 수 없다. 개인과 자본은 이 합의에 의해 공공성을 획득한다. 물론 합의에는 몇 가지 전제가 개입된다. 국가 기관의 압수수색 근거는 사법 시스템에 의해 발부된 영장이다. 이 영장은 특히 개인의 정보를 수색할 때 가능한 ‘중대한 범죄’로 제한선을 두는 게 좋다. 개인 정보를 들여다볼 때는 혐의 당사자에게 즉시 통보하고, 변호인도 현장에 입회시킨다. 압수수색의 범위도 ‘범죄 혐의와 연관된 정보’로 엄격히 제한해야겠다. 카카오톡과 네이버 밴드 사찰 의혹에서 많은 이들이 ‘나의..
홍상수의 영화는 다분히 계보학적이었다. 주로 수컷 (지식인)들의 동물적 욕망과 비루한 습속, 위선을 낳은 지배적 가치 체계와 권력 관계를 적나라하게 파고 들어갔다. 남녀 간의 관계, 지식인의 속물 근성 등 권력 관계의 계보학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를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갔다. 서사와 메시지는 대체로 분명했고, 때로는 너무 솔직하기 때문에 불편하기도 했다. 그 불편함은 대체로 기존의 가치 체계 내부의 관념이나 준거로 메시지를 판단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홍상수의 영화는 계보학을 버리고 해체주의 쪽으로 노선을 전환한 것 같다. 에서 세 남자의 시선에 따라 교차하는 ‘선희’와의 관계를 섞어 ‘진짜 선희’ 혹은 ‘순수한 선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슬쩍 보여주더니, 16번째 영화 에..
우선 전제해야 할 사실 관계가 있다. 9월4일 현재까지 밝혀진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어떤 행위는 형법 245조 공연음란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 법조항은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법조항이 애매모호해 개선이 필요하지만, 그 논의는 일단 논외로 두자. 확실하게 해야 할 사실 관계도 있다. 김 전 지검장은 자신의 검사장 지위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그의 행위로 직접 피해를 입은 사람이 나타난 것도 아니다. CCTV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적어도 공개된 장면만 봤을 땐 피해자로 특정될만한 장면이 없었다. 신고한 여고생의 정신적인 충격이 발생할 수 있었을 텐데, 상담 치유가 필요할 수 있겠다...
몇 가지 질문을 해보자. 영화 은 정말 다수 언론과 평론가들이 말하는 대로 ‘리더십 부재의 시대‘에 확고한 리더십을 보여준 이순신에 대한 열망 때문에 흥행하고 있는 것인가. 개봉 12일 만이라는 역대 최단 기간 1000만 관객 돌파라는 기록과 다시 부는 김훈의 소설 열풍, 늘어나고 있다는 참배객들을 보면 언뜻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정작 영화 속에 “이순신의 리더로서의 딜레마를 질문하는 대목이 있던가… 영화 안에 백성을 위한 영웅의 면모와 진정한 리더로서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쓰고 있다. 분명 속 이순신에게 새로운 어떤 '리더십의 전형'을 발견해내기는 쉽지 않다. 모든 장수들이 꽁무니를 빼고 있을 때 홀로 앞장 서 싸운 것이 리더십이라면, 모든 장수들을 함께 싸우게 만들지 못한 ..
오늘 서울대 이사회가 이사회를 열고, 박용현 전 두산그룹 회장을 이사장으로 선출했습니다. "응? 국립 서울대에 어떻게 재벌 기업인이 이사장이 될 수 있어?"라고 묻는 분이 계셔서 몇 가지만 간단히 정리합니다. 서울대는 2011년 12월부터 시행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http://www.law.go.kr/lsInfoP.do?lsiSeq=148824&efYd=20140701#0000 (이 법률은 추후 일부 개정됐습니다)에 따라 국립대학에서 국립대학법인으로 전환했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없었고 학내 반발도 심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주도해 법인화 전환을 일방적으로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할 것은, 국립대 법인화를 처음 추진한 정부는 노무현 정부였다는 사실..
가 후속보도 http://newstapa.com/news/201414347 를 했다. 가능하면 후속보도를 글로 읽는 것보다 동영상으로 보시길 권한다. 글에는 동영상 뉴스에서 전하고 있는 것이 일부 누락되어 있어서 동영상을 봐야 전체 맥락이 온전히 전달된다. 1. 나는 첫 번째 보도를 둘러싼 논란을 보고 쓴 지난 글 http://nomad-crime.tistory.com/177 에서 의 보도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가 첫 번째 보도에서 앞세웠던 ‘재산 축소신고 의혹’, 즉 법적 잣대를 둘러싼 부분을 앞세웠던 보도보다 ‘수상한 법인의 편법 운용’ 실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봤으면 좋았겠다는 얘기였다. ‘합법 불법’ 여부에 종속되지 말고, 자산 소득의 정당성 문제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공론을 형성했..
어떤 사안을 바라보는 언론의 판단 기준이 '법을 준수했는지 아닌지' 여부에 종속되어선 안 된다. 언론은 법의 심판자가 아니다. 게다가 법은 언제나 기득권의 논리에 의해 재생산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언론은 법보다 넓은 도덕의 문제 혹은 개별 윤리의 문제를 기준으로 사안을 논쟁할 수 있어야 한다. 비단 언론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논쟁의 잣대에서도 마찬가지로 법만이 오롯한 잣대가 될 수 없다. 언론이 기자와 데스크, 국장단 편집회의에서의 치열한 보고와 토론 과정을 통해 기사를 생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합법 불법 여부만으로 기사 가치를 판단한다면, 그런 보고와 토론 과정은 일정 부분 생략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현실의 언론은 시간에 쫓긴다는 핑계로 많은 경우 법의 잣대에 판단을 내맡기는 경우가 ..
문창극과 정성근을 통해 한국 사회의 비판 영역에서 가장 자유롭던 언론인들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언론에 대한 비판 -그것이 비록 다분히 소비자 중심주의적 시각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역시 기존의 어떤 참사나 사고 때보다 수위가 높았다. 이 자리에서 언론인의 도덕적 반성 따위를 바랄 생각은 없다. 게다가 문제는 언론인의 도덕성 같은 것이 아니다. 문창극과 정성근같은 이의 출현은 언론 시스템의 모순에 대한 근원적 성찰 속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그들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사람들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언론인 주변에 있는 일상적 인물이다. 그런 관점에서 무엇보다 언론인의 취재 윤리부터 근원적으로 되짚어야 한다. 기자가 취재하는 팩트란 무엇인지, 반대로 그 팩트를 수집하는 취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