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랬듯 이번에도 시작은 느렸다. 무언가 새로운 환경이 나를 덮칠 때, 나는 그 환경에 즉자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마뜩지 않다 느낀다. 그건 아마 정리가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다. 새로운 환경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내가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으며, 내가 그것에 종속되지 않고 그것을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려면 무엇을 사유해야할 것인가, 라는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았을 때 그 환경을 선뜻 받아들이는 건 내게 별달리 의미가 없다. “시대의 조류이니 따르지 않을 수 있을테냐”라고 외치는 목소리에 “그러지 않을 수 있다”고 소리 높일 수 있는 까닭이다. 140자 이내로 내 사유를 오롯히 담을 수 있을까, 했던 것도 느린 시작의 이유였다. 내 사유가 그만큼 깊고 넓다는 게 아니라, 내 사유에 바탕한 ..
을 읽으며 떠올린 15년 전의 기억 너의 이름을 뇌 깊숙한 곳에 봉인하던 그때도 지금처럼 온몸이 시린 2월의 겨울이었다. 요한아. 무엇이 그 봉인을 풀었는지 지금 이순간 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 문득 나는, 너와 달리 나는 졸업까지 했던 우리의 학교와 너의 이름을 검색창에 쓰고 돋보기 버튼을 눌렀다. 다행일까. 포털 한 곳은 너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사이트는 너의 이름과 죽음의 방법을 적고 '경쟁적 입시교육을 계속 고집하는 시교육청의 무책임함'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랬다. 너는 1995년 2월27일 오전 8시10분, 대구 대륜고등학교 본관 2층 화장실에서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러 스스로 숨을 끊었다. 너의 죽음은 한 신문에 묵묵히 기록돼 있었다. 신문은 경찰의 입을 빌려 "..
그녀는 관조한다. 정적인 그림을 보고 동적인 상상을 한다. 때론 자신의 상상이 개조해낸 캐릭터를 묘사하며 따뜻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까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지점에서 더는 발을 내딛지 않는다. 캐릭터가 처절하게 몸부림쳐도, 그녀는 입을 막고 함께 울지언정, 그 몸부림을 받아 안아줄 깜냥이 자신에게 없음을 알고 그 자리에 주저앉을 뿐이다. 그녀는 담담히 자신의 한계와 자신의 깜냥, 자신의 시선을 글로 표현한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몰입하지 않은 만큼이나 깔끔하다. 그는 몰입한다. 개체를 둘러싼 온갖 이데올로기의 틈입이라는 물결을, 그는 온 손가락과 발가락을 동원해 조금이라도 막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끝내 그 개체는 이데올로기의 틈입으로부터 물들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이 막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