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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투쟁 다큐 영화에 대한 두 번째 보고서


지난 22일 1년 만에 다시 만난 신동기(34)씨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에게 물었다. “요즘 정육점 일은 어떠신가요?”[각주:1] 하지만 그는 쓰게 웃으며 “그만둔 지 오래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2009년 여름, 해고 대상자가 아니면서도 77일 동안의 뜨거웠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옥쇄파업에 동참했던 그는 같은 해 11월 회사에서 파업 참가를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일자리는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그에겐 이미 ‘강성’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의 해고 노동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이 셋을 키워야 했다. 학교 선배의 도움으로 월급 130만원을 받고 정육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20km가 훌쩍 넘는 거리에 위치한 정육점에 출·퇴근하기 위해 한 달 기름값만 20만~25만원정도 써야 했다. 게다가 그즈음 함께 77일을 버텼던 976명의 동료들이 하나 둘 죽음으로 스러져 갔다. 눈물을 꾹 누른 채 며칠 동안 그들의 장례를 치르고, 평택과 서울을 분주히 오가며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면서 자연스레 정육점 일도 그만뒀다. 하지만 동료들의 죽음은 ‘몇 명째 죽음’이란 숫자로만 언론에 짧게 보도됐고, 거리에서 “해고는 살인”이라 외치는 그는 별다른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투명인간으로 존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갔더니 아내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멍한 얼굴로 방충망을 빼고 있었다. 황급히 붙잡았더니 아내는 황망한 표정으로 “통장에 34만원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먹먹했다. 고향으로 내려가 일주일 동안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했다. 얼굴에는 그 흔적이 오롯했다.

쌍용차 기업노조 김규한 위원장은 스크린에서 소통을 역설하고 있었다. 기업노조는 옥쇄파업으로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쌍용차 지부가 붕괴한 이후, 2000여명의 노동자가 쌍용차 공장에서 밀려난 그 자리에 새로 생긴 노동조합이다. 그는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이 있어야 소통이 이뤄진다. 지금은 사쪽이 무엇을 한다고 하면 100% 다 믿는다. 사쪽도 노동조합이 한다고 하면 다 믿는다”고 말했다. ‘소통’과 ‘믿음’의 결과였을까. 쌍용차는 지난해 노사파트너십 프로그램 최우수 기업 고용노동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쌍용차 지부 사무실이 있던 공간은 리모델링을 거쳐 ‘쌍용 피트니스 클럽’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곳에는 ‘복지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소통’은 그렇게 ‘유연한 복종’을 은폐하는 언어로 작동하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별로 안 되는 돈이지만 회사는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2만원 짜리 케이크를 5000개 정도 준비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나씩 손에 쥐어 줬다. 2만원 효과가 잘 나가는 회사의 200만원, 2000만원보다 더 소중한 돈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그의 웃음이 페이드 아웃된 자리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삭풍을 이기기 위해 침낭을 덮어쓰고 스티로폼을 이어 붙인 자리에 앉아 ‘쌍용차 졸속매각 반대’를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공장 안 노동자들에게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전달되고 밀린 체불임금이 지급되는 동안, 공장 밖 노동자들은 14명의 동료들과 그 가족들을 잃었다.’

쌍용차 옥쇄파업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당신과 나의 전쟁> 그 이후를 담은 20분짜리 단편 <낙인>은 자본의 분절화 전략에 따라 하나의 공동체에서 철저히 ‘당신’과 ‘나’로 분리된 채 타자화한 ‘산 자’와 ‘죽은 자’의 현재를 묵묵히 담고 있었다. 옥쇄파업 당시 ‘노노갈등’으로 내몰렸던 이들은 이합집산을 거쳐, 한쪽은 ‘기업노조’란 이름을 달고 사쪽과의 ‘소통’과 ‘믿음’을 거론하고 있었고, 다른 쪽은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외치며 통장 잔고 34만원의 한숨을 뒤로 한 채 차가운 거리로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과 ‘나’의 전쟁은 여전히 ‘우리의 전쟁’으로 승화하지 못했고, 나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전쟁’을 그들만의 ‘전쟁’으로 외면한 채 찌든 일상을 꾸역꾸역 살고 있다. 그 외면의 뒤안길에서 정리해고 대상인 ‘죽은 자’가 되어 옥쇄파업에 뛰어든 노동자, 정리해고 대상이 아닌 ‘산 자’이면서도 신동기씨처럼 옥쇄파업에 동참한 노동자, ‘산 자’로서 ‘목숨 같은 일자리’를 지키겠다며 관제데모에 참여해 어제의 동료들에게 쇠파이프를 들어야 했던 노동자로 각각 분리된 ‘당신’과 ‘나’는 실존적 간극을 점차 벌여가고 있다.[각주:2]

간극이 벌어질수록 노동자 개체의 삶은 메말라 가고 있다. 옥쇄파업을 풀 때, 976명의 노동자 가운데 ‘48%는 1년 무급휴직 뒤 복직, 52%는 정리해고’라고 정했던 노사 간의 합의는 이미 공허한 메아리가 된 지 오래다. 지난 2월26일 통장 잔고 4만원과 카드빚 150만원, 그리고 고교 1학년생 아들(18)과 중학교 2학년생 딸(15)을 남기고 숨진 임무창(44)씨 역시 복직을 약속받은 무급휴직자였다. “아이들 등록금만 생각하면 가슴이 숯덩이가 된다”던 그는 휴직 신분으로 다른 회사에 취직하지 못한 채, 건설현장에서 막노동 일을 하다 집에서 심근경색으로 숨을 거뒀다.[각주:3] 하지만 쌍용차 박용태 법정관리인은 “(무급휴직자 복직은) 결과적으로 회사가 정상화하고, 생산물량이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일거리가 있을 때를 전제로 한 것이다. 하루빨리 회사가 안정화하는 게 우선이고, 그 이후가 되어 생산판매량이 늘어나면 사람이 필요할 것이고, 그때 아마 어쩌면 합의사항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규한 위원장은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행복’에 대해 말하며 “생산이 많이 밀려 있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잔업 같은 걸 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때 아마 어쩌면’의 시점은 결국 오지 않을 미래라는 걸 그 둘은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고 있었다.


자본은 그렇게 자본의 이해에 따라 생산 현장 노동자들을 철저히 분절화한다. 노동자들은 ‘핵심 노동자’와 다수의 ‘주변화한 노동자’로 분화한 채 서로 경쟁하면서 스스로 자본의 노예가 된다. 개별적 생존을 위해 버둥대면 댈수록 ‘나’는 소외되고, 그 결과로 모두가 함께 소외되는 결과가 초래되고 만다. 자본이 무서워하는 건 어쩌면 자본의 상실이 아니라 노동자의 조직된 힘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절된 ‘당신’과 ‘나’는, 한쪽은 ‘강성 노조 노동자’라는 낙인을 이마에 붙인 채 하나 둘 사회에서 소멸해 가고, 다른 한쪽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작업효율을 70%에서 98%로 끌어올려야 하는”[각주:4] 로봇 부품이 되어 서로 닿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처럼 노동자로 살고 있는 나 혹은 너는 스스로 ‘노동자’라는 주체성을 인식하길 애써 부인한 채 그들을 타자화하고 있다. ‘남은 보지 않고 나만 보는 억압된 공기’[각주:5]가 공장 안뿐만 아니라 사회 일반으로 산재해 곳곳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억압된 공기는 쌍용차 투쟁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산별 금속노조의 중심축 현대차와 기아차, 대우차 지회에도 만연했을지 모른다. 노조는 노조 안에서도 서로를 소외시켰고, 나와 너는 그들의 소외를 이용해 노동자를 타자화했다.

영화에서 이창근 쌍용차 노조 기획부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쌍용차 문제는 너무 일반화한 얘기인 것 같다. 우리가 주장하는 합리적 의구심, 우리의 주장들이 또 하나의 주장을 보태는 방식으로 치부되고 이해되는 것이 괴롭고 답답할 때가 많다.” 여기서 그가 말한 일반화는 역설적으로 소외와 외면의 산물이었던 것 아닐까. ‘합리적 의구심’임에도 누구도 깊이 의심하지 않았기에 반복적 메아리처럼 들렸던 구호와 주장은 그저 하나의 개별적 언어로 산화할 뿐, 누구의 행동으로도 재현되지 못했다. 재현되지 않는 행동은 단 한 번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면서도, 그들의 투쟁이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란 체념부터 미리 전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재현되지 않는 행동은 결과적으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이 사회에서 하나 둘씩 밀어내는 배제의 기제로 작동했다. ‘낙인’은 그래서, ‘나’와 ‘당신’이 함께 그들에게 부여한 천형일 지도 모른다.

*미디어스에 실렸음

추신.

지난해 ‘공동체 상영’이란 방식으로 일반에 공개됐던 <당신과 나의 전쟁>은, 후속 단편 <낙인>과 함께 앞으로 특별상영이 이어질 계획이다. 2차와 3차는 4월7일과 8일 오후 7시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다. 3차 상영회 뒤에는 이창근 쌍용차 노조 기획실장, 태준식 감독, 한윤형 <안티조선운동사> 저자,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하종강 ‘노동과 꿈’ 대표 등이 패널로 참석하는 토론회도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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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고: ‘당신과 나의 전쟁은 결국 우리의 전쟁이다’ http://nomad-crime.tistory.com/72 [본문으로]
  2.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9월호, ‘그들은 왜 스스로 ‘죽은 자’ 편에 섰을까’,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460 [본문으로]
  3. 한겨레 2011년 2월28일치, ‘쌍용차 복직’ 약속만 믿다 스러져가는 ‘무급 휴직자’,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465569.html [본문으로]
  4.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옥쇄파업 이전 쌍용차 평택공장의 작업효율은 70% 정도였지만, 옥쇄파업 이후 공장이 재가동된 뒤 작업효율이 98%로 올랐다고 한다. 98% 작업효율은 인간이 배제된 기계적 노동의 결과라고도 했다. 부품제조 공정에 있는 노동자들은 작업 도중 실수를 하면, 잠시 짬날 때 쉴 수 있도록 마련됐던 의자도 빼앗긴다고 한다.-글쓴이 주 [본문으로]
  5. 고동민 쌍용차 노조 조직부장의 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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