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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트윗

@dogsul: 그것이 어느 시대든 정치와 언론이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사회가 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우리가 한국 정치를 움직인다는 조선일보의 오만이 대한민국을 망쳤듯이 말이다. 정치와 언론은 불가근불가원이 원칙이다.


출처 : <한겨레>



왠지 쿨할 것만 같았다. “쫄지마, 씨바” 정신이라면, 국회가 가진 근엄한 권위 따위에 쫄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진행자인 김용민의 19대 총선 출마선언은 뜨거운 순정 그 자체였다. “시덥잖은 우리 네 사람에게 가해지는 이런 압박들이 결국은 시민에게 가해질 폭력임을 저는 매일매일 온몸으로 느낍니다. 그게 화가 납니다 저는…(중략)…이제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세 남자의 앞에 여러분의 앞에 이 커다란 몸, 방패 되겠습니다.” 더할 나위없이 숭고하지 않은가.

“비판들 그대로 어깨에 짊어지겠다”고 했지만, 비판은 보수 언론뿐만 아니라 ‘진영 내부’에서도 제기됐다. 시사평론가 유창선(@changseon)과 ‘독설닷컴’ 고재열(@dogsul)은 입을 모아 언론인의 직업윤리를 거론했다. “정치와 언론은 불가근불가원이 원칙”이라고도 했다.

팟캐스트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사용했을 뿐, <나꼼수>가 엄연히 미디어인 것은 맞다. 네 남자는 다만 ‘객관적 저널리즘’을 앞세우며 공정보도를 추구하는 기존의 주류 언론과 다른 형태로, ‘닥치고 (주관적인) 정치’성을 맘껏 드러내면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흔들어 놨다. 꼼수는 바로 ‘중립성’과 ‘객관성’을 앞세워 두고, 숨겨놓은 자신의 정치성을 순수한 척 포장하는 주류 언론의 정치적 수사라는 점을 보여줬다. 인간이 사회관계를 통해서 하는 모든 행위는 정치다. 정치는 순수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언론인의 ‘순수성’에 대한 거론은 대중이 <나꼼수>에 열광한 까닭을 몰랐거나, 아니면 뒤늦게 <나꼼수>의 상징성을 주류 언론의 레토릭으로 억지 포장하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

김용민의 출마선언으로 <나꼼수>가 잃은 건 되레 존재 부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쾌락의 상실이다. ‘쫄면’이 된 김용민의 출마선언, 그리고 ‘면책특권’이라는 방패를 얻기 위한 제도 정치로의 투항은, 면책특권을 가지기 힘든 시민들에게 “쫄지마, 씨바”는 역시 아무나 외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나꼼수>를 좋아한 건 유쾌함 때문이었는데, 이제 유쾌는 사라지고 비장함이 가득”(@soberintown)이란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나는 되레 출마를 고민하는 김용민의 숭고한 ‘등판’을 보면서 ‘비키니 논란’ 이후 정점에서 꺾이던 <나꼼수> 열풍이 급전직하하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꼼수>와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해오던 가카는 더 이상 말 한 마디조차 눈길을 받지 못한다. 가까스로 공생관계를 이어주던 나경원마저 눈물을 흘리며 불출마 선언을 했다. <나꼼수>가 존재 가치를 이어가기 위해 필수로 적대해야 하는 대상은 이제 미래권력이 될지도 모르는 박근혜다. 어떤 세상을 만들겠다고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이를 가는 사람을 보고 그릴 수 있는 정치는 적대의 무한 반복뿐이다. 꿈꾸는 세상을 가져오기 위한 적대가 아니라, 적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정치의 뒤안길에 남는 건 냉소밖에 없다. 벌써 차기를 노리며 미래를 말하고 있는 박근혜 앞에서 과거만 바라보고선 ‘정치인’ 김용민이 할 수 있는 건 이제 없다.


*<한겨레21> [크로스] 이주의 트윗에 실렸음.

[크로스]의 다른 글은 안영춘 <한겨레> 신규매체추진팀장이 썼고

'김용민이 가리는 것들'

여기 있습니다.

<한겨레21> url은 

[크로스] 이 주의 트윗 - 나꼼수 김용민 공천 논란 
 

여기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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