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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응급실. 출처 <한겨레>


아비는 목에 턱받이 손수건을 둘렀다. 어미는 두어 개 남은 아비의 치아에 아래 위 틀니를 끼워 넣었다. 아들은 밥을 국에 말았다. 아비는 덜덜 떨며 입을 벌렸고, 아들은 수저에 뜬 밥을 아비의 입에 밀어 넣었다. 아비가 입을 오므릴 때마다, 입가엔 잔뜩 주름이 어렸다. 움푹 팬 뺨이 밥을 씹을 때마다 더 우물졌다. 아들은 힘겹게 밥을 넘기는 아비를 보며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아비도 밥을 씹으며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인상을 쓴 아비와 아들은 미간의 똑같은 자리에 비슷한 모양의 세로 주름을 그렸다. 주름의 깊이가 달랐다. 아들의 찌푸림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면, 아비의 찌푸림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는 점도 달랐다.

병원 식당가의 다른 자리엔 다섯 가족이 둘러앉았다. 일흔은 훨씬 넘어 보이는 여성과 그녀를 꼭 닮은 30대 여성 셋, 그리고 셋 가운데 한 명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이 자리했다. 그들은 그늘진 얼굴로 시선을 내리깐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젊은 여성 한 명이 고개를 잠시 들썩이는가 싶더니 쿡쿡 울음을 터뜨렸다. 일흔이 넘어 보이는 여성은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위로 들었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다시 눈 안으로 삼키려는 듯 보였다.

요즘 대형병원 식당가는 마치 음식 백화점 같다. 한식과 양식, 중식과 죽집 등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밥집이 모여 있다. 빵집과 커피 전문점, 햄버거 가게와 아이스크림 가게, 에너지 음료를 파는 가게도 즐비하다. 조명은 은은하고, 자리는 세련되었다. 하지만 장소를 말해주는 것은 공간의 조명과 인테리어가 아니다. 장소를 말해주는 것은 그 공간에 자리한 사람들의 표정이다. 사람들은 표정으로 이곳에 온 목적을 말한다. 그 목적은, 은은한 조명과 세련된 인테리어로 가려지지 않았다.

대형병원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기다림의 시간이다. 어떤 사람은 찰나의 진료 시간을 위해 대여섯 시간을 기다리고, 어떤 사람은 몸을 헤집는 수술을 받기 위해 의사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어떤 사람은 입원을 하기 위해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어떤 사람은 영원한 이별을 위해 죽음을 기다린다. 그 모든 과정을 넘어갈 수 있는 통행증은, 수납이다. 병원이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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