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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전제해야 할 사실 관계가 있다. 9월4일 현재까지 밝혀진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어떤 행위는 형법 245조 공연음란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 법조항은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법조항이 애매모호해 개선이 필요하지만, 그 논의는 일단 논외로 두자.

확실하게 해야 할 사실 관계도 있다. 김 전 지검장은 자신의 검사장 지위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그의 행위로 직접 피해를 입은 사람이 나타난 것도 아니다. CCTV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적어도 공개된 장면만 봤을 땐 피해자로 특정될만한 장면이 없었다. 신고한 여고생의 정신적인 충격이 발생할 수 있었을 텐데, 상담 치유가 필요할 수 있겠다. 남는 것은 그가 검사장이라는 직무를 수행하기에 어울리지 않게 자신의 범죄 혐의와 신분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검사 옷을 벗었다. 공연음란 혐의에 대해서는 그도 뒤늦게 인정했듯 “사법절차를 성실히 따를” 일이고, “전문가와 상의해 적극적으로 치유”할 일이다.

정작 문제는 이 사건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반응이다. 법무부는 지난달 18일 김 전 지검장의 사표를 제출받아 즉각 수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CCTV 분석 결과가 나오기 전이고, 김 전 지검장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확증되기 전이다. 형사 사건의 수사 대상이 된 검사는 우선 직무배제 혹은 보직 이동 뒤 진상을 파악하는 게 원칙이다. 이런 모습은 한국 사회의 어떤 최근 경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민주화 이후 쌓아온 제도적 합의 또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사회를 지탱해오던 원칙들이 빠르게 붕괴하고 있다. 시스템을 통하지 않은 단죄와 처벌, 사회적 배제가 일상화하기도 한다. 이것은 정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대중 주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사건도 그런 경향에 명징하게 부합한다.

일간지와 방송은 범죄 혐의 입증에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CCTV를 공개하고, 베이비로션 이야기로 몇 꼭지의 뉴스를 만들었다. 사건 자체를 스펙타클화하고 김 전 지검장의 몰락을 관음했다. 사람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진보적인 발언을 한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서도 “정신병자를 인사발령 낸 사람을 처벌하는 게 상식”이라는 발언이 나왔다. 내가 일하는 신문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그렇다면 왜 이런 성도착증에 빠지는가이다. 소위 멀쩡한 사람이, 그것도 사회적으로 가장 성공한 사람까지 바바리맨이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문장을 담은 ‘바바리맨 분석’ 기사가 등장했다. 그것은 ‘더러운 일탈자’를 빨리 씻어내려는 일종의 사회적 정화(淨化) 의식 같았다.

앞서 확인한 사실 관계를 다시 되짚자면, 현재까지 드러난 혐의를 종합해도 김 전 지검장의 혐의는 바바리맨과 같은 공격적 노출증이 아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더 문제는 사람들의 저런 문제의식 안에 담겨 있는 정상성 이데올로기다. 정상성 이데올로기에서는 ‘정상성’으로 규정된 다수의 도덕에서 이탈한 ‘예외적 인간’은 빠르게 타자화한다. 타자화의 일선에 선 문제 제기자는 ‘예외적 인간’의 예외성을 정치하게 따져보지도 않은 채 즉각 그를 ‘정신병자’로 몰아붙인다. 그를 빨리 ‘정신병자’로 규정해야 그에 대비되는 나의 순결함을 인정받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라는 ‘정상성’의 범주에 안전하게 자신을 묶어둘 수도 있다.

이어서 ‘정상적’이었고, 심지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어떻게 ‘예외적 인간’으로 이탈해갔는지 심리적 메스를 들이댄다. 이 메스는 ‘도덕적이고 능력이 강력한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암묵적 합의를 전제한다. 메스를 통해 헤집는 과정과 그에 따른 결과가 어떤 정합성을 가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미 메스를 대는 행위 그 자체다. 메스로 헤집어 ‘예외적 인간’의 이탈을 분석하고 공개하는 행위 자체만으로 ‘정상적인 일반’ 앞에 까발려지는 한편의 포르노가 된다. 앞서 얘기했던 ‘바바리맨 분석 기사’를 보면, 바바리맨은 자신의 행위가 행위의 대상에게 되레 쾌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메스를 들이대는 행위와 바바리맨의 멘탈리티, 몹시 유사하지 않은가.

*<한국방송대학보>에 실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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