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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창업주 이재웅


국가 기관은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개인이나 기업의 정보를 수색하고 범죄 혐의를 파악할 권리가 있다. 그 정보는 개인의 신상 정보가 될 수도 있고, 개인의 발언이 될 수도 있다. 기업의 모든 정보도 포함된다. 이 합의는 어떤 경우에도 무너질 수 없다. 개인과 자본은 이 합의에 의해 공공성을 획득한다.

물론 합의에는 몇 가지 전제가 개입된다. 국가 기관의 압수수색 근거는 사법 시스템에 의해 발부된 영장이다. 이 영장은 특히 개인의 정보를 수색할 때 가능한 ‘중대한 범죄’로 제한선을 두는 게 좋다. 개인 정보를 들여다볼 때는 혐의 당사자에게 즉시 통보하고, 변호인도 현장에 입회시킨다. 압수수색의 범위도 ‘범죄 혐의와 연관된 정보’로 엄격히 제한해야겠다.

카카오톡과 네이버 밴드 사찰 의혹에서 많은 이들이 ‘나의 사적 대화가 털렸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지만, 분노가 ‘털렸다’는 사실에 집중되어선 문제 해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위에서 이야기한 전제 조건처럼 ‘적절한 절차에 따랐느냐’에 분노가 집약되어야 하지 않을까.

적절하지 못했던 절차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의 13일 발언으로, 카카오톡이 감청영장을 들고 와 압수수색을 하는 검찰의 위법 조처를 거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카카오톡은 실시간 감청이 불가능한 메신저다. 그럼에도 검찰은 굳이 감청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영장을 발부했으며, 카카오톡은 감청영장을 가지고 온 검찰에 감청이 아니라 압수수색을 허했다. 감청영장으로는 압수수색을 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감청영장은 살인, 강간, 성매매, 마약 거래, 국가보안법 등 특수한 범죄 혐의에만 발부되고, 압수수색 영장은 모든 범죄에 발부될 만큼 성격이 다르다.

모든 범죄를 압수수색할 수 있는 현행법도 그 가능 범위에 문제가 있다. 게다가 압수수색 영장 역시 카카오톡 3~5일치 대화를 통째로 퍼주는 식으로 무분별하게 집행됐다. 범죄 혐의와 관련한 특정 키워드 검색으로 나온 자료로 제한하거나, 사진 파일은 빼는 등의 구체화 조처가 필요하지 않을까. 감청이나 압수수색 혐의 당사자에게 통보하는 기간도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하면 30일까지 지체할 수 있고, 관할 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승인을 얻으면 무기한 연장도 가능하다. 법적 보존 가처분 뒤 즉시 통보로 바꾸는 것이 법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런 법적 과정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이재웅 다음 창업주는 최근 “국가를 비판하지 기업을 비판하면 어떡하느냐”는 식의 반론을 폈다. 다수의 IT 경제인과 일부 지식인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이 반응들은 ’사용자들이 주체적으로 국가폭력에 맞서야지, 비겁하게 중간자인 기업에 소비자로서 갑질만 하면 어떡하느냐‘는 식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들이 잊고 있는 사실은,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밴드,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 사용자가 단순히 개발자나 창업주가 만든 플랫폼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지위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지위도 함께 가지고 있다.

사적 대화가 됐든 명예훼손 소지가 다분한 확인되지 않은 뒷담화가 됐든 먹방이 됐든 진지한 정치 사회 문화 담론이 됐든, 인류의 이 모든 ‘이야기’는 인터넷 서비스들이 ‘자발적 제공’이라 여기며 집적하거나 나아가 착취하는 거대한 문화 자본이다. 플랫폼을 만든 이들은 무엇보다 기업이 ‘무임금’으로 이들의 자발적 콘텐츠와 문화 자본을 전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그러니 이런 문화 자본이 적절한 절차를 거치면서 공공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법적 제도적 방법을 연구하는 것도 콘텐츠를 통해 수익을 얻는 기업의 중요한 의무다.

그런데도 기업이 피해자 코스프레만 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너희는 우리가 창조한 세계를 전유하는 인간들일 뿐이다. 콘텐츠를 갖다 바쳐라, 플랫폼을 창조한 우리는 열매를 따 먹을 자격이 있다’는 식의 태도가 이번 카카오톡과 같은 안일한 대처를 낳은 것 아닐까.

*<방송대학보>에 실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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