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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



서북청년단 재건위에 대관을 불허한 서울청소년수련관이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에는 정기총회를 대관해줬다며 서북청년단 재건위가 ‘이중잣대’라고 비판하고 “청소년들에게 동성애를 권장할 일이라서 승인했냐”며 따졌다고 한다.

일베와 서북청년단 재건위가 같은 주체들로 구성됐다고 보긴 어렵지만, 일베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비판 논리가 바로 이 ‘이중잣대’ 논리다. 시사인의 기사에서 묘사됐던 “자기들이 하는 박근혜 조롱은 풍자이고 우리가 하는 노무현 조롱은 패륜인가?”라고 묻는 질문들이 그 예다. 이 논리를 통해 ‘이중잣대’의 수혜자를 대척점에 두고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는 피해자 서사를 완성한다.

서북청년단 재건위가 지난 9월 서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참사 추모 리본 훼손을 시도하며 거리에 나왔을 때, 어떤 이들은 "저들은 실체가 없는 자들에 불과하다. 저들을 언급해주는 것 자체가 저들을 홍보하는 것이 되고, 그것이 결국 저들이 원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북청년단 재건위 카페 소속 회원들이 몇십명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 사실은 언뜻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놔둔 이들이 두어달 만에 해방공간에서 실제 서북청년회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한 95살 노인과 각계 극우인사들을 끌고와 조금씩 실체를 형성해가고 있다. 무엇보다 문제는, 무차별적인 폭력과 테러를 자행한 극우반공단체의 이름이 공식화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것은 한쪽이 애써 무시한다고 해서 지워지지 않는, 분명한 사회 현상이다.

일본 재특회에 대한 르포르타주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저자 야스다 고이치는 한국어판 출간기념 대담에서 “한국의 일베가 재특회처럼 거리로 나올 것이라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국 사회의 대응에 달려 있다. 재특회가 처음 나왔을 때 일본의 언론들, 지식인들은 마치 넷우익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거나 주변화시키면 금세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틀렸다. 재특회는 더욱 날뛰었다. 이들에게는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형사처분은 권력을 호출한다는 점에서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결국 시민의 힘으로 제어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를 재인용했는데, 나 역시 출간기념 대담에서 이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저들은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가 좀 더 단호하게, 해방공간과 같은 폭력과 혐오의 테러의 재현을 저지해야 한다. 그것 역시 우리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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