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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 유령처럼 도는 글이 있다. 제목은 ‘갓물주의 하루’. ‘갓물주’는 ‘신(god)’과 ‘건물주’의 합성어다. 올해 1월 발간된 한 경제 잡지 인터뷰를 바탕으로 했다.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마포구에 3채의 빌딩, 강남구와 제주도에 땅을 소유하고 있는 이 갓물주는 임대 수익으로 월 17억원을 번다. 아침 식사를 한 뒤 골프 레슨을 받고, 특급 호텔로 가서 사우나와 점심 식사를 한 뒤, 집으로 돌아와 건물 관리자에게 자산 관련 보고를 받고 휴식하는 게 그의 일과다. 주 1회 백화점에서 부인과 쇼핑을 하고, 분기별 1회 이상 외국 여행도 다닌다. 자본이 끊임없이 자본을 불리는 이런 모습에 사람들은 분노할까. 아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커뮤니티나 보수를 외치는 커뮤니티나 반응은 같다. “‘조물주 위에 갓물주’, 저런 신분을 갖고 싶다.”

박근혜 정부의 올 하반기 핵심 과제는 ‘노동개혁’이다. 지금보다 더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하며, 기업이 원하는 대로 임금피크제와 성과임금제 등을 시행하기 위해 취업규칙을 쉽게 변경할 수 있게 만드는 방안이 박근혜 정부와 경영계가 생각하는 '노동개혁'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과보호되고 있는 정규직의 특권을 없애자’는 목적을 명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일 “노동개혁은 노사의 고통분담 없이 이뤄질 수 없는 과제”라며 “10%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의 기득권에 매달리지 말고, 더욱 열악한 현실에 있는 90% 대다수 근로자들과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의 눈물 어린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와 경영계의 ‘노동개혁’은 두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노사가 고통을 분담하자’고 말하지만, 고통은 언제나 노동계가 홀로 짊어진다는 점이다. 경영계의 고통 분담이란 ‘청년 고용’인데, 청년 고용은 고통이 아니라 기업이 치러야 할 당연한 운용 절차다. 심지어 경영계가 이 고통 분담에 응하지 않아도 정부가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 반면 노동계의 고통 분담은 임금피크제부터 시작해 더 쉬운 해고를 받아들이라는 말이고, 기업이 노동시간과 신분보장, 복지제도 등을 노동자 동의없이 마음대로 변경하더라도 감수하라는 말이다. 같은 잣대로 견줄 수 없는 ‘고통’을 저울에 올려두고, ‘분담’이라고 말하면서 사실상 한쪽만 고통을 감수하라고 강제하고 있는 셈이다.

더 심각한 것은 ‘사회적 대타협’이라면서 노동계가 요구하는 쟁점은 타협의 대상으로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계는 노사정위원회에서 최저임금제도 개편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등이 포함된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 개선, 사회 안전망 확충 등을 요구해왔다. 흔히 “대기업과 사무직 이익에만 충실하다”고 비판받는 한국노총이지만, 노사정위원회에서 요구한 쟁점은 대체로 비정규직과 청년들의 이해를 대변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노동계는 이미 발언권이 없다. ‘사회적 대타협’ 협상 테이블에서 정부와 경영계가 요구하는 핵심 쟁점만이 타협책으로 논의되는 것처럼 포장된 이유다. 이 때문에 대중은 정부와 경영계의 핵심 쟁점 프레임 안에서 노동계를 ‘임금피크제 하나도 양보할 줄 모르는 이기적 집단’으로 인식한다. 그렇게 노동개혁을 둘러싼 여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이 반목하는 ‘우리끼리 싸움’이 됐다. 서로 갉아먹으면서 동반 하향 평준화를 유도하는 전형적인 ‘분할통치’(Divide and rule)다. (더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 박근혜식 '노동개혁', 노동계는 '양보'할 게 남아 있나)

‘우리끼리 싸움’이 이어지는 동안 진짜 적대는 은폐됐다. 2012년 양도소득금액 상위 1%는 전체 소득의 33%를 거둬 들였다. 1인당 양도소득은 29억원을 웃돈다. 상위 10%는 양도소득의 68%를 거둬 들였다. 임금소득이나 사업소득 격차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증여세 기준 상위 10%의 재산도 전체의 62%에 이르고, 상속세 기준 상위 10%도 전체의 45%나 상속받았다. 상층계급에 집중된 부동산과 주식 등의 자산이 어떻게 대물림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편중되고 양극화한 자산소득에 대해선 과세로 격차를 해소하는 ‘고통 분담’을 하자는 말을 거론조차 않고 있다. 대중도 이런 명징한 격차에 대해서는 '이기적인 노동계급'에 대해 분노하던 때와 달리 격차를 당연하다는 듯 인식하고, 되레 자산 상층계급인 갓물주를 선망한다.

이런 간극은 노동 시장 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언젠가 '나의 능력'에 의해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인식하는 데 견줘, 자산 시장 내 갓물주와 자산 중.하층계급의 격차는 이미 내 능력 밖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노동 시장 내 정규직이 조금이라도 상대적 이익을 누리고 있으면, 정부와 경영계에 그 이익을 함께 누리게 해달라고 압박하기보다 '언젠가 나만은 저 이익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하며 정규직에 대한 '분노'를 자기 계발의 동력 자산으로 삼는 것이다. 갓물주의 하루를 묘사한 글에 달린 댓글을 보면 이런 모습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갓물주는 직업이 아니라 신분이다.” 이 말은 부모에게 물려받지 않으면 갓물주가 될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을 적확하게 설명하면서도, 자산 상층계급을 범접할 수 없는 대상으로 우상화하는 태도를 함께 보여준다. ‘갓’들은 그렇게 ‘싸우는 우리’와 구별짓기에 성공했고, '싸우는 우리'는 '갓'들이 내려다보는 바닥에서 서로에게 '죽창'을 들이대며 아귀다툼을 벌인다. 연옥같은 현실 아닌가.

*방송대학보 기고를 보충해서 파벨라에 게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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