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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이면상입니다.

  얼마전 가수 나훈아(본명 최홍기·61)씨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미디어 상업주의’로 판단한다는 제 견해를 전한 적이 있습니다.이번에는 약간 성격이 다른 이야기를 꺼내려합니다.

  29일 아침자 한겨레신문이 ‘홍익대 미대 실기문제 사전유출 의혹’이라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지난 15일과 16일 이틀동안 치러진 홍익대 미대 실기시험을 하루 앞두고 홍익대 인근 미술입시학원에서 ‘석고상을 포함한 정물수채화’ 소재가 미리 유출됐다는 의혹을 제보자의 목소리를 통해 보도한 기사였습니다.

  먼저 홍익대의 시험 과정을 살펴보면,홍익대는 ‘석고상을 포함한 정물수채화 시험’을 치르기 2주전 후보군에 있는 석고상 16개 중 5개를 추려 이 가운데 시험 당일 실제 시험 소재가 될 1개의 석고상을 발표하겠다고 공지합니다.한겨레신문과 만난 제보자는 홍익대 인근 미술학원에 다니는 2008학년도 입시생으로 “학원강사가 가면을 쓴 여인상인 ‘이면상’과 키케로 얼굴상인 ‘칸트상’이 시험에 나온다고 해줬다.”며 학원측이 시험 문제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입시 전날 ‘이면상’과 ‘칸트상’이 시험장인 홍익대 C동으로 옮겨지는 걸 봤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또 정물에 동원된 양파링 과자봉지도 다른 미술학원에 미리 유출돼 응시생들이 전날 연습했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이 주장은 시험이 치러진 직후인 지난 16일 학생의 입시를 맡고 있다는 ‘허수정’이라는 교사가 홍익대 입시정보센터 게시판에 “출제대상 석고와 정물을 전날 학원가에서 다 알고 연습했고 오전 시험 집합장소에서도 다들 미리 알고 있더라.미술대학 관계자 및 교수와 연관이 있는지도 의심되고 모 학원엔 교수 자녀가 있다는 소문도 있어서도 더욱 의심된다.”고 주장한 것으로 뒷받침되기도 했습니다.

  한겨레신문은 지난주부터 이 사실에 대해 취재에 들어갔고 제보자와 홍익대 입학본부측,문제가 제기된 입시학원 등을 찾아 직접 사실관계에 대해 들은 뒤 기사를 쓰고 의혹을 주장했습니다.

  ‘물먹은’-기자들은 다른 신문사에 자신이 모르는 사실이 특종으로 보도되면 이렇게 표현합니다-저는 먼저 이같은 보도 경위를 파악한 뒤 홍익대와 입시학원에 가서 의혹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취재했습니다.하지만 결과부터 말씀드리면,한겨레신문과 같이 의혹을 제기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같다는 판단을 내려 저는 이 기사를 신문에 게재하지 않는 게 나을 것같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먼저 학교측이 ‘강한 부정’과 함께 제기한 구체적인 해명 자료가 원인이었습니다.홍익대 정은수 입학관리본부장의 해명으로 제기된 의혹에 대해 하나씩 베일을 벗겨보죠.먼저 시험 전날인 14일 석고상 2개가 유출됐다는 의혹은 학교측이 보관해둔 입시자료에 의해 해명이 됐습니다.정 본부장은 “시험 당일 오전 7시30분쯤 이종수 교무처장과 미대 교수 6명,미대학장 등 8명이 입회해 5개의 석고상 중 뭐를 출제할 지 사다리를 타 결정했다.그리고 휴대전화를 모두 따로 보관해 유출을 막았다.”고 했습니다.8명의 교수들이 당일 직접 형광펜과 수성펜으로 사다리를 그려 석고상을 정한 종이도 공개했습니다.종이를 조작할 가능성도 있지만 종이의 내용과 잉크의 메마른 상태를 눈 짐작으로 봤을 때 조작된 것처럼 보이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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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정은수 입학관리본부장이 미대 교수 등 출제위원들이 시험 당일 사다리를 타서 석고상을 고른 당시의 자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10년이 넘은 선정 방식이라고 하는군요.

  둘째,시험 전날 ‘이면상’과 ‘칸트상’이 C동으로 옮겨진 걸 봤다는 주장입니다.이것 역시 정 본부장은 시험 전날 석고상을 옮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명하더군요.그는 2주전 5개의 석고상 예비 후보군을 공개한 직후 5개의 후보들 모두를 C동에 미리 옮겨둔다고 했습니다.“시험 보는 학생이 모두 2000여명 정도이고 그걸 이틀에 절반씩 나눠 시험을 봅니다.고사실이 30개 정도 되고 정물을 3∼5 세트 정도 놔두는데,한 세트를 8명 정도가 보고 그림을 그립니다.즉 석고상이 모두 많게는 각각 150개씩 있어야하는데 그걸 시험 전날 눈에 띄게 어떻게 옮기겠습니까.미리 시험장에 넣어둬야 관리가 됩니다.”이것 역시 크게 논리상 무리가 없습니다.

  셋째,문제의 양파링 봉지입니다.정물의 특성상 빛의 반사가 중요한 채점 포인트이기 때문에 시험에선 반짝이는 물질이 칠해진 과자 봉지가 많이 동원된다고 합니다.그래서 많이 쓰이는 게 양파링과 새우깡,깐쵸 등의 과자 봉지라고 하는군요.결국 양파링은 적은 후보군 가운데 하나였고 그걸 입시학원에서 예측한 게 우연히 맞았을 뿐이라는 설명입니다.정 본부장은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나훈아씨 심정을 알게 됐다.한겨레신문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할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학원가에서도 펄쩍 뛰며 홍익대측의 해명에 힘을 실어줬습니다.홍익대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입시학원의 C원장을 만나봤습니다.그는 “우리 학원에 180명 정도가 응시했는데,5개 후보군이 발표되자마자 교실에 10여개의 석고상을 각각 놔두고 연습시켰다.이런 가운데 전날 연습한 학생이 시험 현장에서 ‘나 어제 저거 연습했어’라고 말한 것이 와전된 게 아니겠느냐.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며 연방 담배를 빼물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미대 입시경쟁이 워낙 치열해 매번 이런 사태가 날 때마다 학원들 간에 경쟁에 따른 질시가 이어지면서 이런 일이 불거졌다고 반박했습니다.“2004년에는 이화여대 미대 입시에서 저희 학원이 미리 시험 문제를 알고 있었다고 조선일보가 보도했었습니다.그때 제보자를 추적해보니 인근 다른 학원의 강사였어요.결국 조선일보 기자가 우리 학원에 사과했습니다.이번에도 그냥 넘어갈 순 없습니다.이건 무슨 의도가 있는 보도라고밖에 볼 수 없어요.나훈아씨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사실 이렇게 취재를 하고도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기자는 진실을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일뿐,진실은 결국 당사자들밖에 모르죠.아무리 확실한 증거자료를 제시한다 하더라도 결국 진실에 가까이갈 뿐,진실을 안다고 말할 순 없을 겁니다.한겨레신문의 보도처럼 실제 시험 문제 유출이 있었을 지도 모르죠.아니면 한겨레신문이 제보자의 주장에 의지해 결과적으로 없었던 일을 보도했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가 서두에 나훈아씨 얘기를 꺼낸 이유가 이제 나옵니다.지루하셨죠?제가 좀 만연체라….

  나훈아씨 보도에 제가 느낀 점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카더라식의 선정 보도,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도 없는 무분별한 보도,결국 신문 팔기나 인터넷 클릭수를 조금이라도 받아보려는 ‘낚이식’ 보도라는 점이었습니다.그 점에서 같은 기자로서 고개 숙여 반성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이번 홍익대 사건은 약간 성질이 다릅니다.먼저 구체적인 제보를 해온 제보자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나훈아씨 보도에는 그런 제보자는 정체를 찾아볼 수 없었죠.둘째,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사실관계에 대해 확인작업을 벌였다는 점입니다.홍익대와 학원측의 확인취재가 그것이었죠.

  셋째는 제 주관이 담긴 차이점인데,진실을 캤을 때 결과물로 나오는 ‘의혹의 해소’가 가져오는 당위성의 문제입니다.나훈아씨 사건은 사실 진실이 알려졌다해도 크게 문제될만한 사안이 없었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법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건 ‘간통죄’ 하나였던데다,나훈아씨의 신체 주요부위 손상 등 모든 사안은 전적으로 나훈아씨 개인이 손해를 입었냐 마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언론이 나서서 진실을 밝히라고 강요할 자격이 없는 사안이었습니다.일반 대중들이 나훈아씨의 문제에 의해 손해볼 것도 없었죠.하지만 홍익대 사건은 다르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홍익대 사건은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을 경우 수많은 억울한 수험생들이 피해를 입은 입시 비리가 밝혀지게 되는 겁니다.진실을 밝혀내야하는 당위성이 있는 거죠.그래서 전 정 본부장과 학원장 C씨가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나훈아씨의 심정을 알게 됐다.”고 똑같이 털어놓았을 때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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