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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에 온갖 글이 난무하는 세상입니다.개중엔 남을 설득하기위해 지난하게 노력하는 글이 있는 반면,그런 노력보단 자신의 주장이 가진 당위성만 강조하는 ‘스트레스 해소성’ 글도 많은 것 같습니다.

  최근 다음 블로그에서 화제가 된 글이 있었습니다.‘어느 연구사의 아내’라는 제목으로 농촌진흥청(농진청) 연구사 아내가 쓴 글이 누리꾼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일으켜 20만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누군지 궁금증이 일어 수소문 끝에 대구에 사는 박미숙(38)씨와 전화 인터뷰를 할 수 있었습니다.박씨는 농진청 대구사과연구소 재배실에서 14년동안 일해온 6급 연구사(44)의 아내였습니다.

  처음엔 인터뷰를 내내 조심스러워 했습니다.그냥 답답한 마음에 블로그에 글을 올린 것 뿐인데,아무 것도 모르는 당신이 괜히 아는 척 나서는 것같다는 얘기였습니다.하지만 농진청과 그에 의지하는 농민들을 위한 기사라는 지난한 설득에 결국 응해주셨습니다.다음은 5일자 서울신문 사회면에 채 싣지 못한 박씨와의 인터뷰 전문을 쭉 정리해봅니다.

→남편이 하시는 일은
-농진청 산하 대구사과연구소 재배실 6급 연구사입니다.4급 연구관 4분과 6급 연구사 9분이 같이 일하고 있어요.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연구사 시험에 합격해 처음엔 제주도 농업시험장에 발령받아 2년동안 근무하다 대구로 온지 14년 됐습니다.사과나무에 생긴 병 연구,토양 연구,품종 개량,병충해 치료,과실 당도 높이기 등을 연구하고 농민에게 전파합니다.

→출장이 잦다는데
-대구사과연구소는 전국을 관할하기 때문에 대한만국 어느 곳이든 필요한 곳에 달려가기 때문에 한달에 10회 정도 출장갑니다.

→매일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신다는데
-연구소에 수천평 규모의 과수원이 있어서 늘 사과나무를 재배하면서 연구하기 때문에 양복입고 출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지요.사무실 행정직이 아니다보니,흙에서 일해야하니까 늘 면바지에 허름한 점퍼,운동화를 신고 다니고 강의 다닐 때만 구두로 바뀌신습니다.검게 그을린 얼굴을 보고 누구든 공무원이라고 생각지 않지요.

→월급은 어느 정도
-16년째 근무지만 군복무까지 18호봉이에요.박사과정까지 수료했지만 각종 수당이 많은 행정직보다 월급이 적습니다.(구체적인 액수는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연구직이라 박사학위도 따야한다는데
-연구직에겐 반의무사항이기 때문에 2005년 박사과정을 수료했지요.제주도에 있을 때 석사과정에 다니다 인사 이동으로 채 마치지 못하고 대구에 와서 다시 석사 2년을 하고 박사과정 수료에 3년이 걸렸어요.학비만 2000여만원이 들었습니다.보통 오전 8시까지 출근하고 오후 10시∼11시는 되어서야 퇴근하는데,그 시간을 쪼개서 졸린 눈을 비비면서 과제도 하고 고생 많이 했지요.

→사는 형편은 어떠시나
-초등학교 3∼4학년인 아들 딸이 있는데,학비 등에 돈을 많이 쓰고 개인적인 사정도 있어서 지난해 2월에야 아파트 분양받아 집을 장만했습니다.

→생계를 돕고 계시다던데
-저도 대학원 졸업해서 9년동안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했습니다.지금은 형편 탓에 그만두고 초등학생 방과 후 학교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남편도 박사학위 해야해서 저는 공부는 포기하고 뒷바라지만 했지요.

→블로그 글 올리게 되신 계기는
-지난달 16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농진청 폐지안을 발표하는 것을 보고 남편이 그날부터 너무 힘들어했어요.공무원 그러면 철밥통이라고,그래서 신이 내린 직장이란 비웃음을 많이 들었죠.저도 사실 공무원이 안정적이라는 점 때문에 남편의 직업을 좋아했죠.하지만 남편 일은 편한 직종이 아니었어요.농업 자체가 현실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편견 때문인 지 몰라도,농민들이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됐다는 말을 늘 해왔어요.남편은 그런 점에서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강했어요.주목받진 못해도 묵묵히 일해왔는데,정부조직개편안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죠.남편은 그날부터 축 처진 어깨로 매일 인수위 홈페이지에 가서 혹여나 변동사항은 없나 살피고,관련 의견 글도 올리고 했어요.하지만 “철밥통 지키려하느냐”는 비난 대글도 많아서 상처받는 걸 보고,글을 써야겠다 생각했어요.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공무원 아니라도 먹고 살 길 많지 않느냐”고 위로한답시고 말하면 “나야 다른 거 연구해서 월급받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 농민들을 대상으로 했던 모든 서비스를 이제 줄 수가 없어 영세하고 절박한 농민들은 이제 어떡해야할 지 모르겠어서 막막해.”라고 답하더군요.‘이 사람은 정말 공무원이 아니라 농사꾼이구나’ 생각했어요.

→남편이 평소에 자신의 일에 대해서 어떻게 말해왔나
-늦게 퇴근해서도 그 다음날 농민들을 위한 강의가 있으면 밤늦게까지 공부해요.이제 웬만하면 편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물으면 “내 강의를 듣는 사람이 못배운 농민들이라 하더라도 강의가 끝나면 늘 부족했던 것같아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어.늘 강의할 때마다 부족한 게 없는지,공부하지않으면 고생하는 그분들에게 미안하잖아.”라고 해요.강의 갔다오면 농민들이 주시는 사과 등 먹거리나 배추 등 채소를 자랑스레 들고와서 순박하게 웃어요.

→폐지되면 어떤 게 바뀐다고 하던가요
-농진청은 사라지고 연구기관들은 출연연구기관이 되고 행정직은 농림부로 편입되는데,출연기관이 되면 국가에서 50%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연구 실적을 내서 운영비를 자체 해결해야한대요.농업 관련 연구는 사실 돈을 벌기위한 실적 내기가 불가능에 가까워요.공산품 연구와는 다르죠.그래서 수년이 걸리는 품종개발은 거의 불가능하대요.그러면 이제 영세 농민들에게 개발된 품종을 보급하기도 어려워지고,실적을 쌓기위한 연구만 하게되죠.게다가 영세 농민들에게 대농 서비스를 해주던 것도 못하게 되고,농진청이 자체 개발해 국유 특허권을 가진 게 100건 정도 있는데,이젠 농민들이 그걸 사용하려면 로열티를 지불해야해요.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부담이 가는 거죠.

→연구사 아내로서 바라보는 농진청은 어떤 곳인가요
-먹거리를 연구하기위해 농민들이랑 같이 호흡하는 곳이죠.우리가 먹는 것에 그들의 노고가 구석구석 많이 녹아있어요.정부 업무 평가에서도 1위 받은 적이 있고,지난해엔 국가고객만족도에서도 1위였어요.그때 남편이 함박웃음이 사라지지 않았었죠.그런데 폐지하다니….현장을 모르는 인수위의 탁상공론 같아요.이 땅의 농민들이 아직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서 먹거리를 지키기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는데,그런 농민들과 같이 호흡하는 농진청이 존치될 수 있도록 모두 힘을 보태주셨으면 좋겠어요.

→글올린 뒤 20만여명이 읽었는데
-조회수를 보고 놀랐어요.대글 1400여개 하나하나 다 읽어보고 대글을 달았어요.격려가 80% 이상이었죠.저도 대글을 보고 농진청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공무원에 대한 고깝지 않은 시선이 있는게 현실인데
-공무원이라고 무조건 편안하게 밥그릇 지키려고 무사안일하게 대처한다고만 생각진 않아주셨으면 좋겠어요.연구사의 아내라기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실상을 잘 아는 곳이 억울하게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알리고 싶었어요.

→이제까지 수십조원을 쏟아부어도 농촌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인데
-우리나라 경제를 살리려고 얼마나 많은 돈과 인력을 쏟아붓는데,경제도 이 모양이잖아요.농촌보다 교육에 쏟아붓는 돈은 얼마며,정권이 바뀔 때마다 혼란도 일죠.농진청은 수익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라 1차 산업인 농업을 위해 기초 분야 연구를 하고 그걸 농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곳이에요.투자 대비 성과만 따질 수없는 가치가 있는거죠.

아래 링크는 제가 5일자로 쓴 기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0205009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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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마친 뒤 농진청 폐지 논란에 대해 알아보기위해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과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을 취재해,폐지 찬반론에 대해서도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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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은 농진청 폐지 이유에 대해 국책 출연연구기관으로 전환해야 기술연구능력 증대와 관련된 경쟁력이 배가된다고 주장합니다.이 의장은 “농업에도 바이오기술 등을 접목시키기위해 기술력 증대가 필요한데 행정조직에만 머물러선 연구실적이 증가할 수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강 의원은 출연연구기관 전환은 농업 기술 개발의 공공적 성격을 무시한 처사하고 주장하더군요.“종자 개발만 길게는 15년이 걸리고 개발돼도 지역에 따라 시험 수확을 한 뒤 농민들에게 보급되기때문에 출연연구기관에선 돈이 되는 단기간 연구에만 매달릴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한나라당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대비해 우리 농업을 고급농과 기술농으로 바꿔 국제 경쟁에 대비해야하고 이를 위한 출연연구기관 전환은 일본에서의 성공적인 모델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이 의장은 “출연연구기관이지만 국책이니 많은 지원으로 고급 기술을 개발할 수있도록 뒷받침할 것”이라고 밝혔죠.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농업기술개발은 국가가 책임지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고 반박합니다.강 의원은 “미국,영국,독일 등 선진국은 정부가 연구개발을 주도하고 출연연구기관으로 전환했던 일본도 최근 국가기관으로의 환원을 추진하고있다.”고 주장했습니다.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이죠.

  게다가 강 의원은 연구기능은 출연연구기관으로 가고 기술지도를 하는 행정기능은 농림부로 이원화돼 연구성과를 농민에게 기술지도하는데 효율성이 떨어지게된다고 폐지의 비효율성을 따집니다.“연구할 사람 따로 있고 그 성과를 보급할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건 한나라당이 내세우는 실용주의 효율성에도 맞지 않는 이율배반 아닌가요.”

  한나라당 이 의장도 이에대해 “그런 측면이 있을 수 있다.”면서 “끊임없는 교류로 극복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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