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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늘 해석하는 자의 몫이다. 진실과 사실 사이에 늘 이견이 존재하듯 역사의 해석에도 다른 견해가 분분하다. 하지만 후한 말 중국을 소재로한 삼국지(三國志)만큼 이견이 적은 역사 해석이 존재할까. 대부분의 평역 삼국지에서 인물 각색은 비슷한 구도를 보인다. 유비는 우유부단하지만 너그러운 덕치주의자 이미지, 손권은 공격보단 수비적인 자세로 일관했던 수성주의자 이미지, 조조는 교활하고 잔인한 간웅의 이미지로 고착화됐다. 아마 정사 삼국지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가진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문열이 삼국지에서 평했듯 “모든 것을 다 할 줄 아는 만능의 치자보단, 모든 것을 다 할 줄 아는 사람을 부릴 줄 아는 인치(人治)의 치자가 더 사랑받는 대중의 지지”도 한몫했을 것이다.

때문에 이문열도 “조조를 주인공으로 쓰고 싶은 유혹을 받았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평역에서 토로한다. 그랬을 것이다. 이문열은 이미 초기 이문열이 아니기 때문이다. 파격은 그에게 거슬림이 됐고, 역사의 흐름은 그에게 지켜야할 체제의 무게로 갈음돼있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재일 한국인 이학인(李學仁)이 그려낸 파격 삼국지 ‘창천항로’가 매력적이다. 창천항로는 철저히 조조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다. 그는 조조를 철저히 실용적인 인물로, 때문에 난세에 더욱 더 어울리는 영웅으로 그려낸다. 창천항로는 ‘새로운 해석’이라는 파격 탓에 온갖 질타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가 해석의 파격은 일으켰는지 몰라도 적어도 삼국지라는 소재의 매력은 잃지 않았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이제까지 읽은 삼국지 중 가장 사실관계에 가까이 다가간 이야기 전개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그 이유는 바로 삼국지가 가진 최대의 장점인 각양각색의 인물이 가진 각각의 매력포인트를 균등하게 그려내는 데 소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비는 음흉하지만 소탈한 매력을, 손권은 음뭉스럽지만 혈기왕성한 매력을, 제갈량은 변태스러울 정도로 희한하게 그려지지만 그래도 질 것이 뻔한 사람에게 자신의 그릇을 맡길 수 있는 용기라는 매력을 각각 보유하고 있었다. 조조가 뻔히 주인공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래도 불편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이유였다.

 

하지만 오우삼은 실패했다. 그가 그려낸 프레임의 한계를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그의 ‘적벽대전’ 1,2 시리즈에서의 인물 해석은 상상력의 날개를 너무 곧추세우는 바람에 나의 지지를 잃고 말았다. 조조를 ‘소교’라는 여자 하나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고 여자의 차에 취해 공격 시기를 놓쳐 전쟁에서 졌으며 전쟁의 흐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사사로운 감정에만 휩싸인 ‘바보’로 그렸다. 삼국지연의의 구도에서 벗어나 주유를 적벽의 주인공으로 그려낸 것까진 좋았지만 온갖 전투의 선봉에서 모든 장수보다 우위의 무력을 뽐내는 인물로 과대포장한 건 무리수였다. 현명한 경국지색으로 역사에 장식된 소교지만 적벽대전에서 남편 주유를 위해 조조의 진영으로 뛰어들어 큰 역할을 하게되는 것도 결국 주유를 과대포장하기 위한 밑거름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 구도였던데다 조조의 온갖 장수들은 그나마 드러나지도 않았다. 결국 오우삼은 영화의 고전적인 선악구도 주인공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주유를 부각시키고 그에 반해 조조를 바보로 만들기위한 온갖 장치에만 골몰해 삼국지가 가진 '다양한 인물 묘사'라는 매력을 잃어버린 셈이다.

게다가 전쟁이 끝난 뒤 주유가 조조에게 새삼 “이 전쟁은 누구의 승리도 아니다.”라며 마치 평화주의자인양 멋부리는 장면에선 실소까지 나온다. 그럼 과연 흥건하게 피가 난무하는 온갖 전쟁신은 누구의 것이며 3만으로 수십만 대군에 맞서는 게 무리라는 노숙의 건의에 “내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며 전의를 다지는 주유의 이전 대사가 가진 괴리는 어쩔 셈인가. 억지스런 평화주의자 행세는 마치 억지스럽게 오우삼 영화에 등장하는 비둘기만큼이나 부조화를 드러냈다.

 영화는 한계가 있는 예술이다. 그런 점에서 오우삼이 그려낸 장엄한 전쟁신은 비록 컴퓨터 그래픽이 가미됐다하더라도 감탄사가 나올만 했다. 하지만 또다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스토리 구조의 부족함, 세밀치 못한 인물 묘사는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삼국지는 그렇게 가볍게 건드릴 수있을만한 소재가 아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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