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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이는 초록 풍선을 거머쥔 손을 꼬물거렸다. 세상에 난 지 28개월됐다. 막 ‘아빠’란 말을 조그만 입으로 오물거릴 때다. 하지만 아이는 “아빠, 보고 싶어”라고 또박또박 발음했다. 20여 일째 아빠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철조망과 폐 트레일러로 가로막힌 공장 밖에서 풍선을 띄웠다. 아빠는 하늘을 볼 여유가 있었을까.

시각 아빠 박일규(40)씨는 온갖 살인무기가 오가는 경찰과의 격렬한 충돌 현장에 서 있었다. “전기가 끊겨 충전이 어려운지 짧게 통화했어요. 위험하니 아기 데리고 집에 가라더군요. 더 위험하면서…” 엄마 김향금(27)씨는 메마른 날숨을 길게 내뱉었다. 아무도 그를 달랠 수 없었다.

악다구니가 벌어졌다. 사측 직원들과 진압을 위해 고용한 용역들이 ‘정상조업’이라 적힌 주홍 완장을 차고 줄지어 걸어갔다. 길옆에 걸터앉아 애타게 공장을 바라보던 노조원들의 가족들이 욕설을 퍼부었다. “너희가 사람 새끼냐. 그렇게 벌어먹고 살고 싶으냐.” 잠시 행렬이 멈칫했다. 어딘가에서 플라스틱 물병이 날아와 용역의 얼굴을 때렸다. 충돌 직전, 주변에서 뜯어말렸다.

인력사무소에서 끌려왔을 용역들 역시 하루살이긴 매한가지다. 하지만 “함께 살자”며 고용 유지를 위해 몸부림치는 자들을 막기 위해 또다시 고용되어 온 자들을, 나는 비난할 수 없었다.

누군가 외쳤다. “정부는 쌍용차를 구제하라.” 하지만 정부가 쉽사리 그럴 것 같지 않다. 쌍용차는 경쟁에서 도태됐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열심히만 하면 모든 게 다 된다’고 믿는 대통령에게 쌍용차는 그저 게으른, 그래서 무능한 존재일 뿐이다. 세상이 열심히만 한다고 모든 게 이뤄질 만큼 너그러우면 얼마나 좋을까. 시커먼 연기가 타오르는 평택에서, 그 말들의 공허함을 나는 가늠키 어려웠다.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도로는 휴가 다녀오는 자동차들로 꽉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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