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재훈의 인앤아웃 no.5

녀석은 늘 웃음이었다. 독실한 신자로 술을 삼가는 녀석은, 모임마다 끝까지 남아 독주의 고통에 허덕이는 선후배를 챙겼다. 이사를 도우러가면 목장갑을 낀 녀석이 늘 한쪽에서 끙끙대며 짐을 옮기고 있었다. "넌 좀 그만 와도 돼"라고 핀잔주면, 씩 웃고 말았다.

4수로 뒤늦게 4년제 대학 3학년이 된 후배 효준(28)이는 그러던 어느 날부터, 모임에도 이사 때도 나타나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 녀석의 목소리엔 웃음기가 묻어나지 않았다. "보습학원 비정규 강사로 일해요"라고 했다. 

처음 넉 달은 80만원, 이젠 100만원 받는다. 오후 3시부터 자정까지 꼬박 수업한 대가다. 때문에 녀석은 대학 강의를 오전에 몰아서 듣는다. 4.2점을 웃돌던 학점은 3점을 겨우 넘긴다. 밥값과 교통비로 얼추 40만원을 쓰고, 나머지로는 이전 학기 학자금 대출을 갚고 이번 학기 등록금 330만원을 나눠낸다. 토익 점수를 따고 인턴을 수료하고 자격증을 따고 기업 공모전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스펙을 쌓아도 취업이 어렵다는 주변 얘기에 공감하면서도, 녀석은 왠지 외롭다. 초봉 2000만원짜리 직장에서 밥벌어보겠다는 녀석의 소박한 희망은, 나이가 들면서 하나씩 지워야하는 철없는 어린 시절 꿈처럼 문득 비현실이 됐다.

교육과학기술부가 20일 4년제 대학 취업률을 발표했다. 정규직 취업률은 48.3%로 지난해보다 7.8% 줄었다. 비정규직은 7.4% 늘어난 26.2%였다. 둘 중 하나도 정규직이 되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한해 등록금 1000만원을 내고 각종 스펙을 위해 '취업 사교육비'까지 감당해야 하는 대학생들은 그들이 목매는 기업의 경영철칙 1조 1항인 '투자 대비 가치 효율'을 온몸으로 부정당한 채 사회에 내동댕이쳐지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공익을 위해 세금을 거두거나 병역을 맡기거나 법을 지키라거나 도덕성을 갖추라고 강요할 자격이, 우리에겐 있는 걸까.

위법과 비도덕성에 대한 성토가 빗발치는 총리와 장관 인사청문회 생방송이, 그래선지 자꾸만 공허하게 들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