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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6

2009년 현재 온갖 미디어는 '서민'을 호명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정부 정책 발표에도, 뉴스에도 서민은 족족 등장한다. 어느덧 우리도 서민이란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리곤 한다. 언론재단 기사 검색에서 서민이란 단어를 찾아봤다. 종합일간지에서 2008년 한 해 동안 '서민'은 모두 1만183번 쓰였다.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5338건보다 1.9배, 10년 전인 1998년 2184건보다 4.7배 늘었다. 우리를 서민으로 불러주는 정치인과 공무원, 언론인이 그만큼 늘어난 셈이다. 왜 그럴까.

서민은 왕조 시대 단어다. 아무 벼슬을 갖지 못한 사람, 즉 평민이란 의미였다. 왕족 이하 특권층인 양반, 그리고 평민과 천민 등 신분계급이 명확한 시대였다. 당연히 서민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최상계급인 왕조의 보살핌을 받는 존재였다. 이때 서민은 실제 보살핌을 받든 아니든, 적어도 자신의 실존적 계급은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는 서민이란 단어를 두 가지 의미로 분리해 생각한다. 정치적 의미에서 민주화 사회의 서민은 일부 특권층과 부유층을 제외한, '선거권을 가진 다수'로 인식된다. 하지만 경제적 의미의 서민은 '중류 이하 생활을 하는 저소득층'이란 뜻으로 쓰인다.

IMF 구제금융 이후 빈부격차가 늘고 저소득층이 다수가 되고 있음에도 우리는 정치적 의미의 다수와 경제적 의미의 다수를 여전히 따로 보고 있다. 자신만은 정치적 다수, 즉 '중산층 서민'이라고 위로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저소득층의 또 다른 우리는 경제적으로 소외되고 만다.

이명박 정부가 서민정치를 거푸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공무원들은 저소득층 정책을 '서민정책'이라고 선전한다. 27일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놓은 국비유학생 선발제도 개선안은 아무리 다시 봐도, 저소득층 위주 선발안인데, 내내 서민이라고만 적혀있었다.

권력자가 저소득층이란 단어를 배제하고, 서민이라는 단어로 우리를 호명할 때, 차별은 은폐되고 우리의 실존적 위치는 망각된다. 우리가 그들의 호명에 따라 서민을 자꾸 되뇌면,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할 정책적 권리는, 실제로 받고 있든 아니든 정부의 시혜로 의미가 변질한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우리를 스스로 서민이라고 칭하는 이면엔 그런 함수가 숨어있다. 우리부터 먼저 서민이란 단어를 버리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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