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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8


1996 비아르 舊 자이르
photo by 성남훈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은 이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결같이 참담하고 먹먹하다고 했다. 쭈뼛거리며 책을 들었더니, 그 반응은 슬몃 이해가 되면서도 언뜻 표상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엔 병자호란 때의 처절했던 역사가 담담하지만 숨막히는 문체로 서술돼 있었다. 국제관계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설 속 개인들은 국가가 요구하는 당위에 얽매이지 않았다.

무너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개인이 희생돼야한다는 이데올로기를, 김훈은 강요하지 않았다. 개인은 철저히 생존 본능에만 충실했다. 그 ‘속물적’ 선택들은 우리에게 내 속의 본능을 날 것 그대로 쳐다봐야하는 불편함을 안겼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국가가 요구하는 당위에 길들여진 것이란 사실을 문득 자각하게되는 순간, 불편함은 더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한 아이가 화물열차에 올라타기 위해 줄 서 있다. 왼손엔 물이 한 움큼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있다. 바로 옆에 선 다른 아이는 카메라 렌즈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아프리카판 세계대전’이라 불렸던 2차 콩고 내전에 휩싸여 죽음과 상실이 난무하던 1996년, 구 자이르의 비아르 지역에선 2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사진작가 성남훈은 이들을 조곤조곤 카메라에 담았다.

피난길에 휩쓸린 채 피사체가 된 아이들은 렌즈 너머 지구 반대편 생명들에게 어떤 얘기를 던지고 싶었을까. 생존을 향해 몸부림치는 그들을 그저 바라봐야만 하는 현실은 또 다른 불편함이었다. 하지만 '남한산성'에서 잠시 하찮아 보였던 생존 본능은, 이 지점에서 더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불편할 수 없었다.

지구촌빈곤퇴치시민네트워크는 서울 광화문역 7번 출구 앞 길에서 ‘무고한 세계’라는 사진전을 열고 있다. 아프리카와 아프가니스탄 등을 찾은 성남훈, 중국 변방 소수민족들의 삶을 좇은 이상엽, 소외된 섬 마다카스카르인들의 생존을 그린 한금선의 사진이 그곳에 있다.

주최 측은 말한다. ‘한 개인이 인식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세상, 분노마저도 무색하게 하는 세상에서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주어진 세계에 상실과 고통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참혹의 현장에도 삶이 지속된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전쟁과 죽음, 그 속에 내동댕이쳐진 개인의 현실은 생생하게 아프다. 하지만 개인은 아픔을 뒤로 하고 꾸역꾸역, 살아야하기 때문에 살아간다. 그 생명의 피사체들은 17일까지 거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2002 카불 아프가니스탄
photo by 성남훈

2008 안타나나리보 마다가스카르
photo by 한금선

2007 귀양 중국
photo by 이상엽


1995 사라예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photo by 성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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