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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30

신동기(33)씨는 붉은 조명의 정육점에서 고기를 썰었다. 고기를 잡는 왼손도 칼을 든 오른손도 어색했다. 바투 깎았던 머리칼은 한 움큼 자랐고 최루액이 들어가 핏발이 섰던 왼쪽 눈은 제 색깔을 찾았다. 한 달에 130만원가량 받아 부인과 세 자녀를 키운다고 했다. 요즘도 가끔 잠을 자다 놀라 벌떡 눈을 치뜨면 부인이 몸을 쓰다듬으며 달랜다.

신씨를 만난 건 쌍용자동차 옥쇄파업이 막 끝난 지난해 8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정리해고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리해고 대상자들과 함께 77일 동안 공장을 지켰다. 눈을 질끔 감으면 업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답은 명료했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죠. 인간적인 도리까지 저버리면서 돈을 벌라면, 차라리 도둑질하고 맙니다. 똥을 푸더라도 당당하게 벌어 애들을 키워야죠. 쇠고기 먹고 싶으면 돼지고기 먹으면 되고, 그게 안 되면 닭고기 먹으면 됩니다."

쌍용차 옥쇄파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당신과 나의 전쟁'은 신씨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이어 매일 출근하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과 정리해고 대상자들을 교차시켰고, 서거한 대통령을 추모하던 전국의 2009년 6월과 "우리는 일하고 싶다"고 목소리 높여도 섬처럼 유리됐던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같은 6월을 견줬다. 살기 위해 악을 쓰는 그들을 사람들은 경쟁에서 도태된 쌍용차의 현실이 엄존한데 그저 자기 살겠다고 '떼만 쓰는 이기적 존재'로 봤다. 서거한 대통령이 중국 상하이차 자본의 투자 약속을 '순진하게' 믿었다가 기술만 유출되고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가려졌다. "일자리를 지키는 일이 건강한 가정의 핵심"이라고 했던 지금의 대통령이 2주 만에 같은 라디오 연설에서 "지금이 구조조정의 적기"라고 말해도 아무도 이물감을 느끼지 않았다.

신씨는 징계위원회를 거쳐 지난해 11월23일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해고 사유는 볼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나와 내 동료들이 물도 전기도 끊긴 공장에서 지키려고 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고 했다. 그들이 지키려던 건 이념이나 진영이 아니었다. 그저 가족을 건사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자, 어울림으로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공동체 아니었을까. 그러나 우리가 부르길 꺼려하며 어느덧 경계인으로 만들어버린 '노동자'란 이름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이자 아버지에 불과한 그들에게 우리는 앞장서 현실과 자본의 논리를 말하며 공동체와 시민과 아버지의 지위를 박탈했다. 뜨겁게 살아남으려던 자는 그래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들만큼 뜨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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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앤아웃과 외부기고에 처음 자기표절을 했다. '당신과 나의 전쟁'은 나를 그럴 수밖에 없게 했다.

'당신과 나의 전쟁'에 관한 첫번째 글. http://nomad-crime.tistory.com/72

추신.

<당신과 나의 전쟁>은 배급사를 통해서 개봉될 수밖에 없는 현재의 극장 시스템에선 상영되지 않는다. 볼 수 있는 방법은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 상영을 신청하거나, 4월에만 28번 예정돼 있는 공동체 상영 공간에 찾아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 될 듯하다. 상영일정 등은 <당신과 나의 전쟁> 공식 블로그 http://77days.tistory.com/ 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동체 상영 등 수익금은 전액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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