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업언론인 시국선언문’이 신문에 실렸다. 세월호 참사 발생 38일째 되는 날이었다. 63개 언론사 5592명의 언론인이 이름을 올렸다. 유례없는 이 선언문은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인해 드러난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지 못했다. 우선 “‘전원 구조’라는 언론 역사상 최악의 대형 오보”라는 토로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전원 구조’ 보도가 오보였고, 이 오보가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는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언론이 “취재를 통한 사실 확인보다 정부의 발표를 받아쓰기에 급급”해서 오보가 났다고 보는 시각이다. 재난이 발생하면 언론은 일단 정부가 발표하는 정보를 신뢰하고 이를 기본 텍스트로 삼아야 한다. 재난에 따른 구조가 우선인 상황에서 언론이 현장을 헤집고 다니며 전원 구조가 됐는지 구조..
그것은 무력감이었다. 사람들은 가라앉는 세월호와 그 안에서 숨져간 이들을 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과 한국 사회를 바라보며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그 무력감이 어떤 이에겐 격분과 공격성으로, 어떤 이에겐 슬픔과 우울로, 어떤 이에겐 미안함으로 표출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저 감정들 사이를 오가는 사람도 있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태연한 척하다 어느 순간 터져버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기도 했다. 세월호 안에서 숨져간 이들의 심상에 자신을 대입하면서 느끼는 공포를 유언비어에 담아 빠르게 확산하는 이들도 있었다. 유언비어 유포는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사회가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확인하고 공감을 얻은 뒤 재빨리 안도하기 위한 자기 위안적 행위였다. 총체적인 시스템의 몰락 어떤 감정이든 그것이 ..
※ 영화 내용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에는 주제 의식이 선명한 영화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언로가 막혀있다 여겨지는 사회에서 영화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고발을 공유하는 중요한 매개가 됐다. (2011), (2011), (2011), (2012), (2012) 등이 성공과 실패를 거쳤고, 천만 관객을 동원한 (2013)에 이르러 사회 고발 영화의 대중 동원력은 정점을 찍었다. 부조리한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고발극이나 다큐멘터리에서 시작해 부조리에 분노하고 각성해 정의의 화신으로 거듭나는 한 인간의 성장 서사(변호인)까지 사회 고발 영화의 화법이 진화했다. 한국의 사회 고발 영화는 사건을 파헤치게 만들거나 인간을 분노케하는 선명한 적대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대체로 연..
[이재훈의 영화사회학] 와 ※ 영화 내용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6살 아들이 태어난 병원에서 다른 아이와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고 혼란에 빠지는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료타의 관점에서 카메라를 움직인다. 료타는 6살 아들 케이타(니노미야 케이타)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추스르자마자, 자신의 핏줄을 이어받은 친아들 류세이(황쇼겐)를 궁금해 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엘리트’로 세상의 평가를 받아온 자신과 달리 여러 가지 면에서 뒤처진 모습을 보였던 케이타에게 실망감을 느끼며 살아온 료타는 결국 케이타와 류세이를 교환하는 선택을 내린다. 하지만 사실 이 영화의 결정적 화자는 료타가 ..
최근 이철 전 코레일 사장이 자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철도파업 돌입 직후인 지난 15일에는 과의 인터뷰에서 수서발 KTX 자회사 분리에 대해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 코레일 적자가 많으니 알짜 노선을 분리해 경쟁체제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해가 되는 논리냐”고 말했고, 24일 아침자 한겨레에는 코레일 쪽으로부터 “파업의지 불사르는 인터뷰 자제해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일부에선 그가 철도공사 사장이던 시절은 철도파업에 강경대응하는 현 최연혜 사장 체제와 달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말은 사실일까. 그래서 네이버 뉴스 상세검색에서 그가 철도공사 사장 시절인 2005년 1월1일부터 2008년 1월31일(재임 기간 날짜는 정확하지 않다)로 검색 기간을 설정하고..
18일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있자, 관련 기사의 조회 수는 평소 온라인 톱기사의 3배에 육박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아마 대부분은 이번 판결로 자신의 임금이 어떻게 변했는지, 얼마나 더 받을 수 있을지 계산해보기 위해 클릭했을 것이다. 온라인 데스크는 그런 바람을 받아 재빠르게 임금 변화 예측 기사를 잘 보이는 위치에 배치했다. 정작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이 자본과 대통령의 눈치를 보고 정무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사실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의 판단을 소급 적용하는 것에 대해 “기업으로선 예상치 못한 과도한 지출을 하게 되고 기업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되므로 신의칙상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법원과 판사의 자기존립 근거를 흔드는 논리였다. 근로기준법은 기본적으로 강행법규이다. ..
입 안이 바짝 말라 있는지, 말을 하기 위해 입술을 오무락거릴 때마다 윗입술이 자꾸만 윗니에 달라붙었다. 입을 축이라고 물을 건넸더니, 팔에 힘이 없는지 덜덜 떨다가 절반은 흘려버렸다. 볼은 움푹 패어 있었고, 화통하던 음성은 병상 옆에 바짝 붙어 앉은 사람의 귀에 겨우 소리를 닿게 할 정도로 얇아져 있었다. “음식이 써요. 어제 후배가 순두부를 먹으라고 가져다줬는데, 한 숟갈 먹고 모두 버렸어요. 사과나 귤은 또 지나치게 달아요. 당분을 과잉되게 느끼는 거지. 그런데 희한하게 잘 먹는 음식은 ‘불량식품’이에요. 라면, 자장면. 오늘 저녁도 그래서 자장면을 시켜 먹자고 했어요, 아내에게. 병원에서도 그렇게 하래요. 하하.” 지난 5일 강원도 춘천시 강원대병원 호스피스 병동. 다큐멘터리 영화 와 극영화 를..
9일 오전 9시를 기해 일제히 시작된 전국철도노동조합의 총파업과 관련한 핵심 쟁점은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 번째 쟁점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은 과연 민영화인가’이다. 코레일은 별도 법인의 계열사, 즉 자회사를 설립해 수서발 KTX를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한 이사회를 곧 개최할 예정이다. 민영화 우려가 나오자 코레일은 계열사에 대한 코레일 지분을 41%로 확대하고, 나머지 자본금 역시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 등을 대상으로 공모해 유치할 방침이며, 정관에 공공부문 이외에는 지분을 넘길 수 없도록 명시했기 때문에 민영화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조는 정관에 민간매각 방지대책을 둬도 사측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정관을 변경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게다가 현행 상법은 ..
2012년 11월 18일 오후 2시.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 조선소 사옥 앞에는 2개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사옥에 걸린 현수막에는 ‘노동조합은 회사와 하나되어 한진중공업 75년 역사 조선 1번지 긍지와 자부심을 되찾겠습니다’라고 써 있었다. 그 건물 바로 앞에 세워진 천막 텐트의 현수막 문구는 ‘158억 손배소 철회하고 민주노조 탄압 중단하라!’였다. 지난해 11월 10일 김진숙(52)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노사가 ‘1년 뒤 정리해고자 복직’에 합의하자 농성 309일 만에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그 후 1년이 지난 지난 11월 9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 92명 복직’ 뉴스가 보도됐다. 그런데 왜 여전히 천막 텐트가 있고, 회사와 화합하는 노조와 회사를 비난하는 노조로 나뉘어 서로 대립각..
▶ 서울에 사는 359만가구 중 44.2%인 154만6509가구(2012년 기준)가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는 도시의 지배적 거주 공간이 됐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아파트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아파트는 투자가 아닌 거주를 위한 곳이라는 원래의 목적을 되찾고 있습니다. 아파트 주민회를 둘러싼 정치가 더 중요해진 까닭입니다.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갈등의 현장에서, 그 정치학을 짚어봤습니다. 지난달 11일 저녁 서울 동작구 본동 신동아아파트 관리사무소. 김경희(58)씨는 입주자대표회의 동대표들에게 “당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동대표가 김씨를 밀쳐내고 “이 공사는 꼭 해야 합니다. 강행할 겁니다!”라고 외치고 나섰다. 한쪽으로 밀려난 김씨는 다시 “청소와 경비 용역업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