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은 이미 일상으로 내면화돼 있었다. 학교가 경쟁을 강요하며 공부 잘하는 학생만 떠받들고 있지만, 학생은 그런 학교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상위권에 들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지난 3일 서울의 ㄱ고등학교 앞에서 만난 이 학교 3학년 정성모(가명·18)군은 “아이들끼리 1등부터 50등은 ‘알짜배기’, 51등부터 100등은 ‘예비인력’, 100등 밖은 ‘잉여’라고 부른다”며 “학교가 결국 100명만 끌고 갈 것이라는 불안감이 만연해 있다”고 했다. 이 학교는 학년별로 1등부터 50등까지 성적순으로 독서실 지정석을 만들어 두고, 그들과 51~100등 사이에는 칸막이를 설치해 학생들을 갈라놓았다. 1등부터 10등까지 최상위 학생들이 앉는 책상은 다른 학생들의 책상보다 더 넓고, 사물함도 달려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12년째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아무개(38) 교사는 5일 와 만나자마자 불쑥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내밀었다. 모의고사 도중 한 교실에서 엎드려 자는 절반의 학생들, 한 개 번호로 쭉 내려 찍은 답안지, 학교에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학생들이 쓰러뜨린 화분과 쓰레기통, 욕설 섞인 낙서가 사진에 담겨 있었다. 그는 “10년 전과 달리 요즘엔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 모여 축구나 농구를 하는 학생들을 찾아볼 수 없다. 또래 문화가 사라진 학교는 그야말로 서열화한 대학 가운데 어떤 곳을 갈지 경쟁하는 학원이 되었고, 학생들은 더 이상 대학 이후에 뭘 하고파 하는지 꿈을 얘기하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와 대학이 가파르게 입시기관과 취업사관학교가 되고 있다. 학교..
이재훈의 인앤아웃 no.43 얼마 전 트위터 팔로워들이 각자 가진 악몽과 같은 체벌의 기억을 반추하는 글을 릴레이식으로 올린 적이 있다. 글을 하나씩 읽으며 그들의 기억을 간접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참담했다. 한국 사회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별적 폭력의 피해자로서 각자 트라우마를 안은 채 어딘가에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는 말과 크게 어긋나지 않음이 짐짓 각인되어서다. 체벌은 '말 듣지 않는 아이'를 다른 어떤 수단보다 빠르게 교사 개인의 권능에 복속시키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과정을 무시한 속도전과 다르지 않고, 그것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의 폭력보다 더 교묘한 인권 배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체벌이란 속도전으로 '교육'을 하는 교사와 학교가 엄존하고 있..
이재훈의 인앤아웃 no.32 그의 아버지는 시골의 실업계 학교 교사다. 혈압 탓에 몸이 불편해선지 아버지는 요즘 흰 머리가 부쩍 늘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평소 별로 말이 없다. 늙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그래서 눈 대중으로 짐작만 가능하다. 얼마 전 한 국회의원이 교원단체 명단을 공개했다는 뉴스가 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명단을 훑어봤다. 아버지의 이름 옆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는 역시 말한 적이 없었다. 곧 정년 퇴임이니 별일이야 있겠나 싶으면서도 걱정이 된다. 그는 "오늘 집에 소주라도 한 병 사가지고 가야겠다"고 했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법의 판결을 무시하고 교원단체 명단 공개를 강행했다. 공개 이후 반응은 엇갈렸다. "전교조라는 게 떳떳하다면 왜 공개를 꺼리느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