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내용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에는 주제 의식이 선명한 영화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언로가 막혀있다 여겨지는 사회에서 영화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고발을 공유하는 중요한 매개가 됐다. (2011), (2011), (2011), (2012), (2012) 등이 성공과 실패를 거쳤고, 천만 관객을 동원한 (2013)에 이르러 사회 고발 영화의 대중 동원력은 정점을 찍었다. 부조리한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고발극이나 다큐멘터리에서 시작해 부조리에 분노하고 각성해 정의의 화신으로 거듭나는 한 인간의 성장 서사(변호인)까지 사회 고발 영화의 화법이 진화했다. 한국의 사회 고발 영화는 사건을 파헤치게 만들거나 인간을 분노케하는 선명한 적대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대체로 연..
나는 영화를 본 뒤 그 영화가 좋았다거나 싫었다는 평가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철저히 나의 기준에만 따른다면, 영화는 재미있거나 재미없거나를 기준으로 보고 즐기는 대상으로만 존재하진 않는다. 내게 있어 영화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거나 그렇지 않거나의 차이로도 기능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는, 그게 비록 플롯도 상실한 채 만들어지는 잉여 영화이거나 B급 문화를 ‘저질스럽게’ 담아낸 ‘나쁜’ 영화라 하더라도 내게 의미를 손짓한다.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 철학이 있든 없든, 그런 것도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영화는 감독이 만들지만, 그가 던진 텍스트는 나와 접합하는 순간 이미 나의 해석 지점으로 넘어와 나의 사유 안에서 부유한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내겐 나와 접합했던 영화 가운데 텍스트가 유도된 객관적..
*스포일러 있음 우리는 상상력이 거세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아니 통제된 사회라고 해야 더 적확하겠다. 직업을 가진 이들은 매일 명확하게 정해진 시간이 되면 출근해야 한다. 이메일과 포털에 실린 연예뉴스를 살피다 눈치를 보며 업무를 시작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일제히 밥을 먹으러 간다. 유일하게 정해지지 않은 건 퇴근 시간밖에 없다. 일상에서 나를 해방시킬 퇴근 시간은, 이번에는 불명확성으로 내 삶을 옥죈다. 시간의 속박에 길들여진 삶은, 일상을 언제 마무리해야할 지 모르는 상황에 이르면 아노미의 불안에 빠지고, 그로 인해 지친 몸과 마음은 어두운 그 어느 시간이 되면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지 못한 채 까무룩 마무리되고 만다. 그나마 정해진 일상의 시간이 있는 사람은 나은 편이다. 일상에 구속조차 될 수 없..
아이들이 희희덕거린다. 모르는 아이들이 비웃는 건 꾹 참으면 된다. 하지만 매일 집에 같이 가는 ‘영희’가 나를 외면한 채, 반 아이들과 함께 웃는 모습은 견디기 힘들다. 배신감이 든다. 교탁 앞에서 엄마 대신 일일교사로 온 이모가 온갖 천을 덧댄 우스꽝스런 옷을 입고, 남들보다 굵은 특유의 목소리로 내 친구들에게 친한 척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들은 보편적인 모양새의 엄마나 이모를 원할 뿐, 독특함과 특별함, 그리고 다름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다들 어리니까.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보단,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파악하는 법을 배우는 데 급급한 그저 아이들일 뿐이니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자신과, 아니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과 다르다손 싶으면, 집단에 기댄 채 그 다른 존재를 비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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