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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후와 잉여라는 주체를 관통하는 공통된 흐름은 소비중심주의적 주체입니다. 생산중심주의 사회에선 배제되던 존재들이죠”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개인화·파편화하면서 기성세대 관점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주체들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주체와 양식이 ‘덕후’와 ‘잉여’라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사전을 보면 덕후는 ‘어떤 분야나 사항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열중하며 집착하는 사람’을 일컫는 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어 변용이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잉여는 ‘사회에서 인정을 못 받아서 인터넷상에서 온갖 찌질한 짓으로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인간’이라고 설명돼 있다.

 덕후는 1990년대 한국 사회가 문화적 다양성을 조금씩 확장하면서 소비주의를 중심으로 주체와 양식을 차츰 외화했다. 하지만 2000년대 소비의 물적 토대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때론 덕후와 겹치는 소비 중심주의적 주체를, 때론 덕후에 별 관심이 없던 주체를 잉여로 밀어냈다. <나·들>은 <88만원 세대>의 공저자 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과 잉여를 자칭하는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의 공저자 최태섭씨의 눈을 통해 덕후와 잉여라는 주체와 양식을 살펴보는 기획 ‘덕후와 잉여’를 연재한다. 1년 동안 매달 두 필자가 덕후와 잉여를 문화인류학적으로 관찰하면서 현상에 개념을 삽입할 예정이다.


  ♣박권일♣ 일본어 ‘오타쿠’는 아키하바라(도쿄의 전자상가가 밀집 지역) 등지에서 ‘안경 낀 여드름 돼지’ 같은 사람들이 서로 ‘댁’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했죠. 굉장히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일종의 비하어로, 일본에선 오타쿠라고 부르는 것이 ‘싸우자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덕후와 잉여’에서 우리가 ‘덕후’라는 주체와 양식을 얘기할 텐데, 그때 말하는 ‘덕후’는 한국화한 덕후입니다. 덕후라는 어떤 양식을 통해 한국 사회를 한번 들여다본다는 측면이 강하죠.


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



 ♣최태섭♣ 덕후나 잉여를 얘기할 때 조심스러운 건, 이런 호명을 자신에 대한 모독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려고 하는 면은 주체와 양식이라는 게 단순히 어떤 한 개인이 자신의 노력이나 선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시대적 배경에 의해 경로가 정해지는 면이 많다는 점이죠.

 

좌파들이 무시하던 존재 

 

 ♣박권일♣ 사회적으로 저 사람은 덕후나 잉여가 아닌데 위악적으로 자신을 덕후나 잉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사회적으로 저 사람은 덕후나 잉여인데 자신은 전혀 덕후나 잉여가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죠. 노동계급을 얘기할 때도 사람들이 자신을 노동자로 규정하느냐, 노동자임에도 부르주아나 중간계급으로 규정하느냐가 사회적으로 다른 실천을 생산해내죠. ‘덕후나 잉여’에서 그런 미묘한 면들을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최태섭♣ 덕후나 잉여는 결국 1990년대를 통과했던 한국 사회에 대한 얘기를 주요하게 해야 합니다. 덕후의 경우 한국 사회의 문화적 취향이 이전에 견줘 발전했고, 소비에 대한 죄책감이 사라진 1990년대를 경유하면서 일반화했죠. 소비를 하면서 즐기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게 됐고, 되레 아름답고 미적인 소비를 하는 게 사회적 위신이나 지위에 중요한 문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IMF 이후로 가계가 곤두박질쳤는데 여전히 그 취향은 남아 있고, 그러므로 ‘나는 욕망할 수 있으나 소비할 수 없는’ 교착상태에 빠지게 됐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잉여라는 주체들이 등장해 자괴감 같은 것을 집중적으로 분출하는 것 같아요.

 ♣박권일♣ 덕후나 잉여라는 주체를 관통하는 공통된 흐름은 소비중심주의적 주체입니다. 생산중심주의 사회에선 배제된 존재들이죠.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사회에 쓸모가 없다며 배에 태워 보내버리는 ‘바보들’이죠. 하지만 이런 양식은 영구적이고 항구적인 정체성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벗어던질 수 있는 일종의 역할극 같은 거죠. 인종적 정체성은 자기가 해볼 수 있는 게 없잖아요? 하지만 덕후나 잉여는 자기가 벗어날 수 있는 정체성입니다. 문제는 정체성 자체를 두고 옳다 그르다 비판하는 게 아니라, 사회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됐는지에 대한 사회적 배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태섭♣ 덕후와 잉여를 약간 구분하면, 덕후는 역할극 같은 느낌이 있는데 잉여는 강제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잉여는 일종의 좌절된 소비에 가깝죠. 덕후는 어쨌든 소비하는 사람들이고, 잉여는 소비할 수 없기 때문에 일각에선 소비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된장녀’를 두고 사치나 허영, 명품족 같은 면모를 혐오하기도 했죠. 자기는 그런 것을 소비할 수 없다는 점과 그런 것을 욕망하는 여성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박탈감이 있죠. 굉장한 불안감과 공포도 있습니다. 서울대 인문대에 다니면서도 위악적으로 잉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예전에는 이 대학을 나오면 어디까지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된다는 좌절감과 분노가 있어요. 게다가 이런 조건에 대한 포기에서 나오는 담대함 같은 것도 있습니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의 공저자이자 문화연구자인 최태섭씨. 박승화 한겨레 기자.


 

 대표적인 주체들로 자리잡아

 

 ♣기자♣ 포기에서 오는 담대함은 무엇인가요.

 ♣최태섭♣ 스스로 잉여라고 자각하고 나면, 종종 사회적으로 굉장히 적확한 구조적인 어떤 담론을 도출해내는 경우가 있어요. 이들은 학습되지 않았으나 자신의 경험을 객관화해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구조적인 것까지 접근해요. 저항의 측면에서도, 이제까지는 굉장히 상승지향적인 수많은 시도가 있었는데 그런 경우 결국 체제로 흡수되거나 자기네들끼리 잘 살게 되는 쪽으로 끝났죠. 하지만 일부 잉여처럼 자기의식에서 출발하는 것은 그런 상승 지향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소모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상태에 있는 거죠. 이런 것들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에서부터 새로운 저항 같은 것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박권일♣ 서동진 선생이 자기 계발하는 주체들에 대해 책을 썼잖아요. 신자유주의가 한국에 본격화한 이후에 자기 계발하는 주체가 나타난 것은 맞지만, 자기 계발하는 주체가 사실은 온전히 자기 계발만 하는 주체들은 아니죠. 자기 계발하는 주체들은 자기 계발 문화에 억압당하면서, 억압에 대해 반발하고 저항하는 주체들이기도 합니다. 그 저항의 측면을 도외시하면 폐쇄적인 얘기밖에 할 수 없죠. 그러면 국민이 ‘개새끼’가 되는 거죠. 덕후와 잉여에선 이런 양가적 측면들을 좀더 섬세하게 보여주면 좋겠어요. 이 사람들이 덕후이고 잉여인 상황이 있고, 스스로 덕후나 잉여라고 생각하는 까닭이 있는 것이고, 그 이면에는 사회적 압력이 있죠. 물질적 압력, 이데올로기적 압력이 있습니다.

 ♣최태섭♣ 잉여를 얘기하면, 나이 든 진보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사람에게 잉여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저는 이미 잉여”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생각하는, 인간에 대해 생각하는 틀 자체가 많이 변했습니다.

 ♣박권일♣ 전통적인 좌파들에게 노동계급의 전지전능함은 굉장히 중요한 테제거든요. 노동계급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을 생산할 수 있고, 가치를 만드는 존재이고, 세계를 경영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최종적으로 승리해야 하는 주체들인데, 사실은 덕후와 잉여라는 말 자체가 그런 능력을 거세시켜버린 주체들이죠. 이 기획은 그들이 그렇게 백안시하고 도외시하고 외면했던 주체들이 오늘날 대표적인 주체들이고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창간호 주제는 ‘밀덕’ 노무현 

 

 ♣기자♣ 첫 회는 어떤 주제에 대해 쓰나요.

 ♣박권일♣ 저는 “노무현은 덕후였다”라는 주제로 씁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내부 전산망 시스템 ‘이지원’을 개발했고 특허권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죠. 노무현은 젊었을 때부터 컴퓨터에 비상한 관심이 있었고,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어 쓸 정도의 고수였습니다. 얼리어답터 수준을 뛰어넘는 덕후였죠. 게다가 그는 국방 예산을 늘리고 일반인은 들어본 적도 없는 최신예 무기를 구체적으로 지적해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절대 안 판다고 한 글로벌호크를 집요하게 졸라서 4기를 도입했죠. ‘밀덕’(밀리터리 덕후)의 징후가 보이죠. 게다가 미국 백악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 인기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The West Wing)의 광적인 팬이기도 했습니다.

 ♣최태섭♣ 저는 “‘노간지’와 ‘노운지’ 사이, 왜 잉여들은 노무현을 사랑하며 증오하는가”에 대해 씁니다. 잉여들에게 노무현은 극단적 평가 대상이죠. 일부는 노무현의 서민적이고 진정성 있는 면모를 사랑하고 ‘노간지’라고 치켜세우며 그리워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를 ‘노운지’ 라고 부르며 고인에 대한 모독을 놀이처럼 일삼습니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는 이들이든, 그를 증오하는 이들이든 공유하는 한 가지 사실은 노무현이야말로 이들의 ‘정치’의 최전선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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