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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 사고로 숨진 정범구 병장의 주검이 운구되자 그의 홀어머니와 할머니가 관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이재훈의 인앤아웃 no.33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고3 1학기 중간고사 때였다. 혈압이 높고 심장이 약했던 그는 심근경색으로 돌연사했다. 좁은 마당에 천막이 내걸렸다. 문상객이 올 때마다 아버지는 울었다. 아버지는 처음 눈 콧물과 함께 울었지만 한나절이 지나고부턴 소리로만 길게 울었다. 아버지의 울음은 점액질을 잃어가는 만큼이나 감정도 메말라가는 듯했다.

문상객들은 아버지의 손을 어루만지며 황망해한 뒤 곧 고기국밥을 우걱우걱 먹었다. 그리곤 소주를 마시거나 화투를 치며 떠들썩하게 놀았다. 나는 문상객들과 아버지를 잃은 내 아버지가 슬픔을 금세 지우는 모습에 난감했다. 열여덟의 나는 장례라는 절차가 죽은 자보다 산 자를 위한 것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문상객의 고성방가가 피붙이를 잃은 이의 공허함을 달래려는 것임을 알지 못했고, 아버지의 슬픔이 소리로만 우는 겉모습에 오롯이 담겨있지 않음도 가늠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를 묻은 날 아버지는 뒷마당에서 혼자 크게 울었다. 소각할 유품을 찾으러 뒷마당에 간 나는 아버지의 울음에 다가갈 수 없었다.

차가운 함선 안에서 숨진 정범구 병장이 한줌 재로 소각되는 날, 아들을 홀로 키웠던 정 병장의 어머니도 그렇게 터질 듯 울었다. 그는 관을 부여잡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절규했다. "엄마가 너를 군대 가라 그래서 미안해 죽겠다고. 엄마가 보냈어. 돈이 없어 보냈다고. 그런데 이게 뭐냐고." 그의 책망은 아들을 징집한 국가, 누군지 모르는 사고 책임자나 가해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향해 있었다. 가학적인 자책이 피붙이의 상실이 주는 끓는 슬픔을 상쇄할 유일한 수단이었던 걸까. 그래서 그의 자책에 아무도 개입할 수 없었다.

죽음은 위로할 수 없는 실체다. 피붙이를 잃은 슬픔, 그것도 갑작스런 사고로 까닭도 모른 채 내리사랑의 대상을 잃은 슬픔은 그 누구도 애도란 이름으로 개입할 수 없다. 국가가 '영웅'과 '용사' 등으로 죽은 자에 대한 수사를 붙이고, 전국에 분향소를 차리며 국민적 애도를 요청해도 사실 죽음의 실체에 대한 위로엔 조금도 다가가지 못한다. 그 어떤 수사와 국민적 분향도 죽음 이후의 그 무엇을 위한 목적이 되진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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