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이 쓴 는 발행 두 달 남짓 만에 10만 부가 넘게 팔리며,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절박한 상황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이 책은 7년이 넘도록 복잡하게 이어져온 쌍용차 사태의 맥락과 사실 관계를 어느 정도 충실히 담은 한 권짜리 텍스트다. 그렇기에 줄지어 숨을 거두는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해 단순한 동정의 시선이 아니라, 어떤 지점에서 함께 분노해야 할지 그 팩트를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풀리기 어려워 보이는 굴레도 안고 있다. 쌍용차 사태와 관련해 하종강과 이선옥이 이미 매체에 게재한 글을, 공지영이 에 인용된 여러 글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용’했다는 논란이다. 다른 인용 글과 달리 본문에 인용 표기가 전혀 없다. 책 뒷부분 ‘출처 및 참고자료’에 하종..
언젠가부터 언론에 ‘통합’이란 단어가 부쩍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과 ‘대(大)’가 붙어 ‘국민 대통합’이란 수사가 주로 쓰인다. 이 단어의 쓰임에는 속내가 담겨 있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하나가 되어야 할 국민이 이념이나 세대, 계급의 차이로 나뉘어 갈등하는 것은 소모적이라는 관점이다. 비슷한 까닭으로 ‘소통’이란 언어가 한참 통용되더니, 선거를 앞두고는 보수든 진보든 한목소리로 통합을 말하며 갈등을 치유하고 하나 된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막말 파문’으로 인선되자마자 여론에 뭇매를 맞고 있는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에 대한 비판에서 가장 많이 보인 단어도 국민 대통합이었다. 민주 진보 진영의 다수는 “국민 대통합 시대를 열겠다”는 박근혜 당선인의 말과 ‘극우’ 윤창중..
며칠 전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트위터에 사진을 올렸다. 박근혜 지지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박정희와 육영수의 영정을 앞에 두고 큰절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진 교수는 “혹시 이런 미래를 원하십니까?”라고 썼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이 모습이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미래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박정희를 신성화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되어도, 2012년의 한국 사회에서 이런 모습이 일반화하리라 상상하는 건 무리수다. 진 교수도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25년 동안 진화한 한국의 민주화는 이미 하나의 문화로 공고화해 있다. 그런데 이런 지적을 하며 “문재..
이 주의 트윗 @mettayoon : 영화 '광해'를 보았습니다. 기득권자들, 보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친일과 독재의 뿌리들. 광해를 죽이려던 서인 세력들과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몬 그 침묵의 카르텔이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문재인후보가 운 이유, 이제사 납득이 됩니다. 이것은 어떤 가면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에서 조선의 왕 광해는 암살 위협을 피하고자 자신과 닮은 천민 하선에게 대역을 맡긴다. 하선은 독에 취해 쓰러진 광해를 대신해 군왕 노릇을 한다. 조세 개혁을 위한 대동법을 시행하고, 명에 사대를 주장하는 신하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고 외치며 실용적인 중립 외교를 명한다. 무엇보다 백성을 우선으로 생각한 착한 군왕의 현시다. 이야기는 또 다른 가면을 낳았다. 여기서 가면은 가짜 왕 하선에..
정기구독 신청 “덕후와 잉여라는 주체를 관통하는 공통된 흐름은 소비중심주의적 주체입니다. 생산중심주의 사회에선 배제되던 존재들이죠”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개인화·파편화하면서 기성세대 관점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주체들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주체와 양식이 ‘덕후’와 ‘잉여’라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사전을 보면 덕후는 ‘어떤 분야나 사항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열중하며 집착하는 사람’을 일컫는 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어 변용이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잉여는 ‘사회에서 인정을 못 받아서 인터넷상에서 온갖 찌질한 짓으로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인간’이라고 설명돼 있다. 덕후는 1990년대 한국 사회가 문화적 다양성을 조금씩 확장하면서 소비주의를 중심으로 주체와 양식을 차츰 외화했다..
걸그룹 티아라는 단 한 번도 그들의 실재를 드러낸 적이 없다. 그들은 2009년 후크송 을 히트시키며 이름을 알렸다. 고양이 발 장갑을 손에 끼고 엉덩이를 흔들며 ‘보핍’만 110번 반복하는 노래다. 지난해 6월 발표돼 인기를 끈 는, 이 노래보다 한 달 전 개봉돼 736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은 영화 의 추억 장사 콘셉트에 그대로 편승했다. 물론 다른 걸그룹도 실재를 알 수 없는 이미지 상품이긴 마찬가지다. 소녀시대는 ‘순수하지만 섹시한 소녀들’이라는 역설의 이미지로 삼촌 팬들의 열광을 이끌었고, 카라는 ‘역경과 실수를 딛고 일어선 생계형 아이돌’이라는 ‘들장미 소녀 캔디’ 이미지로 오빠 팬들의 환호를 낳았다. 하지만 티아라는 그런 상품화한 이미지조차 제대로 구축한 적이 없다. 이미 대중성을 인정받은 ..
이 주의 트윗 @unheim : 노동자들의 절절한 목소리가 더 널리 퍼져야 하거늘, 그 목소리가 따옴표로 묶인 채 그 누군가의 '지적 재산권'으로 둔갑해 배포를 거부당하는 이 사태의 황당함보다는.... 공작가의 싸가지에 대한 분노가 더 큰 게죠 2009년 여름 쌍용차 옥쇄파업의 이유는 사측의 일방적 정리해고였다. 회사는 정리해고 사유를 ‘경영위기’라고 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쌍용차의 ‘구세주’로 등장한 중국 상하이차가 핵심 기술을 유출한 뒤 회계를 조작해 회사를 법정관리 체제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처음부터 기술유출을 우려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정리해고 이후 법정 관리인은 회사의 운명과 국가 경제를 대의로 내세우며 노동자들을 배제했고, 이명..
기득권이 노력과 실력에 따라 쟁취할 수 있는 욕망의 대상으로 오해될 때, 기득권을 가진 자와 미래의 기득권을 욕망하는 자는 기득권을 유지하는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함께 힘을 합친다. 학벌과 같은 문화자본이 한국 사회의 일부 계급을 중심으로 세습되고 그 세습이 고착화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해도, 이 지적에 대한 반발에 이미 기득권을 가진 자가 아니라 미래의 기득권을 욕망하고 있는 자들이 핵심 주체로 나서는 현상은, 한국 사회의 교육 문제가 얼마나 교육의 본질 그 이상의 가치로 포장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우려가 되는 점은, 이미 기득권을 가진 자가 아니라 미래의 기득권을 욕망하는 자가 언젠가 그 욕망에서 철저히 배제된 뒤 겪게 될 박탈감이 사회로 ..
하나의 사안을 둘러싼 논쟁의 지점이 어디에 집중되느냐는 그 사회의 주된 관심사와 맞물려 있다. 하지만 그래서 그 사회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대학 교육의 공공성 확충과 학벌 서열 체제 완화를 위해 2003년 처음 제안된 뒤, 교육계에서 9년 동안 논의되어온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방안이 ‘서울대 폐지론’으로만 축소돼 논의되는 현상은,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가 얼마나 서울대 중심의 사고방식에 얽매어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최근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썼다”는 서울대 출신의 한 사회과학도는 온라인 토론 사이트에, 그리고 “대학 평준화는 서울대의 국제적 경쟁력 하락을 불러올 것”이라는 한 서울대 사회학과 학부생은 보수 일간지에 각각 글을 기고했다. 이 사실 역시 한국 사회의 주된 발언 권력이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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