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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수사팀장
며칠 전 윤석열의 폭로로 여러 지점에서 국면이 전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정당성에 상당한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은 이제 분명해 보인다. 이택광 선생의 말처럼 이제 필요한 건 ‘혁명적 주체’일 텐데, 과연 그 주체들이 생생하게 현현할 것인가. 나는 다소 부정적인 감정을 담으면서도 끝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
그런데 다른 대화를 하다가 뜬금없이, 2년 전 대구에서 발생했던 학교 폭력 사건의 유서가 떠올랐다. 이 생경한 연결고리로 이어진 까닭은, 그 사건과 윤석열의 폭로에서 공히 떠올릴 수 있는 하나의 고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론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밝혀진 사실은 세상을 지배하는 수많은 사실들의 파편에 불과하다는 점 말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 ㄷ중 학생의 폭력 피해 일지와 같은 상세한 유서가 공개되자, 한국 사회에는 마치 그 사건과 대구라는 시공간만 학교 폭력의 장으로 존재하는 양 모두가 들썩이며 스펙터클을 재생산했다. 하지만 한국의 학교에는 전국에서 일상처럼 (학교) 폭력이 벌어지고 있고, 학교는 난무하는 폭력을 제도적으로 승인하는 폭력 일상화 교육의 장이다. 우리가 집중했던 것은 전부가 아니었지만, 전부인 양 포장됐다. 2
윤석열의 폭로를 둘러싼 스펙터클도 마찬가지다. 그의 폭로로 폭로된 것은 검찰의 내분과 권력의 속살이라기보다,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정당성의 폭력이 어떻게 일상적으로 사회와 제도를 지배하고 있는가, 라고 할 수 있다. 윤석열의 폭로로 그 정당성의 운영 체제에 다소간의 흠집이 났으나, 제도는 곧 윤석열과 같은 이들을 정당한 틀을 통해 솎아내고 별 문제없었다는 듯 돌아갈 것이다.
결국 하나의 툭 불거진 예외성의 현상에만 집중해선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사회를 지배하는, 우리가 평소에 늘 보고 있으면서도 애써 보지 않으려 하고 있는 이 일상성을 전복하지 않으면, 새로움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