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의 마중’은 시대의 폭력에 관한 영화다. 시대의 폭력은 대체로 집단과 제도 속에 가해자를 은폐한다. 반면 피해자는 또렷하다. 피해자는 늘 죄책감을 품고 산다. 시대의 폭력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서는 자신 역시 폭력에 편승하는 가해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모두가 각자 가해자로 살아남았다 생각하지만, 대체로 동시에 죄책감을 품은 피해자가 되어 살아간다. 폭력의 상흔이란 그렇게 서로를 옭아매 죄책감의 연대를 구성한다. 펑완위(공리)는 남편 루옌스(진도명)와의 생이별 과정에서 딸 단단(장혜문)과 갈등을 빚고, 공안의 폭력까지 겹쳐 ‘심인성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문화대혁명으로 감옥에 갇혔던 루옌스가 20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지만, 펑완위는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루옌스의 얼굴을 루옌스로 인..
며칠 전 윤석열의 폭로로 여러 지점에서 국면이 전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정당성에 상당한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은 이제 분명해 보인다. 이택광 선생의 말처럼 이제 필요한 건 ‘혁명적 주체’일 텐데, 과연 그 주체들이 생생하게 현현할 것인가. 나는 다소 부정적인 감정을 담으면서도 끝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다른 대화를 하다가 뜬금없이, 2년 전 대구에서 발생했던 학교 폭력 사건의 유서가 떠올랐다. 이 생경한 연결고리로 이어진 까닭은, 그 사건과 윤석열의 폭로에서 공히 떠올릴 수 있는 하나의 고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론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밝혀진 사실은 세상을 지배하는 수많은 사실들의 파편에 불과하다는 점 말이다. 스스로 목..
소년은 알고 있었다. “엄마에게 나는 모든 것”이었다. 아빠는 언제나 집에 없었다. 아빠는 소년이 태어날 때부터 자주 집 밖을 겉돌았고, 5년 전부터는 아예 따로 살았다. 그럴수록 엄마는 소년에게 집착했다. 소년이 7살 때 엄마는 이미 소년을 ‘교육’하기 위해 매를 들었다. 오랜만에 집을 찾은 아빠가 여름에도 긴 바지를 입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의아해하면서 씻겨주려 옷을 벗겼을 때, 소년의 종아리와 엉덩이에는 피멍이 맺혀 있었다. 소년은 “괜찮아, 아빠”라고, 담담하고도 짧게 말했다. 엄마는 “아이를 왜 때리느냐”고 묻는 아빠에게 “애는 매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가 사용한 폭력의 도구는 다양했다. 홍두깨로도 때리고, 야구 방망이로도 때리고, 골프채로도 때렸다. 그래도 소년은 자신이 엄마에게 “..
홍상수의 영화 가운데 나를 가장 불편하게 만들었던 건 였다. 헌준(김태우)이 강제로 성폭행을 당한 선화(성현아)의 몸을 손수 씻겨준 뒤 “내가 섹스해서 깨끗하게 되는 거야”라고 내뱉는 장면을 봤을 때, 나는 참기 힘든 불편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홍상수의 위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장면이 위악이 아니고 비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성폭행을 당한 여자친구를 앞에 두고 인자한 자세로 “오빠는 괜찮아”라고 얘기하는 수컷들이 우리 주변에 산재해있지 않던가. 성폭력이 남성과 여성의 이데올로기적 권력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라는 사실은 수컷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소유한' 성이 침범당했느냐 여부일 뿐이다. 그래서 수컷에겐 폭력에 의해 상처받은 여성이 겪을 고통은 ..
이숙정 민주노동당 성남시의원이 성남 판교주민센터 비정규직 직원을 폭행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설 연휴 첫날 고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던 나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이 의원은 주민센터 직원에게 고성을 지르며 신발과 서류뭉치를 던졌고, 직원의 머리채를 잡으려 하는 등의 폭행을 저질렀다. 뉴스 동영상에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절차를 통해 정당성을 부여받은 권력이, 자신의 권력을 활용해 보호해야 할 대상을 향해 되레 위계적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내가 경직됐던 건, 이 의원이 저지른 폭력에 이 의원이 부여받은 제도적 권력, 그리고 이 의원 개인의 권위의식이 겹겹이 착종돼 있기에 사안이 가볍지 않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소식은 더 참담했다. 이 의원은 주민센터에서 보내..
이재훈의 인앤아웃 no.43 얼마 전 트위터 팔로워들이 각자 가진 악몽과 같은 체벌의 기억을 반추하는 글을 릴레이식으로 올린 적이 있다. 글을 하나씩 읽으며 그들의 기억을 간접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참담했다. 한국 사회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별적 폭력의 피해자로서 각자 트라우마를 안은 채 어딘가에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는 말과 크게 어긋나지 않음이 짐짓 각인되어서다. 체벌은 '말 듣지 않는 아이'를 다른 어떤 수단보다 빠르게 교사 개인의 권능에 복속시키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과정을 무시한 속도전과 다르지 않고, 그것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의 폭력보다 더 교묘한 인권 배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체벌이란 속도전으로 '교육'을 하는 교사와 학교가 엄존하고 있..
이재훈의 인앤아웃 no.10 길로 폰테코르보 감독의 영화 는 프랑스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알제리의 민족해방전쟁을 그리고 있다. 네이팜탄 폭격에 의해 무고한 민간인이던 친인척을 잃어야했고 자기 삶의 터전에서 프랑스인들에게 "더러운 아랍놈"이란 말을 듣고 살아야했던 알제리인들은, 시대의 야만과 무너진 자존감에 대한 분노를 알제리민족해방전선(FNL)에 대한 지지로 해소한다. FNL은 저항의 첫 수단으로 테러를 선택한다. 이에 프랑스는 1957년 공수부대를 투입해 알제리인 거주지역을 게토로 만들고 무차별로 거주민을 검거한 뒤 고문이란 극단적 수단까지 동원해 FNL 조직을 붕괴시킨다. 그러나 민중은 사라진 FNL의 저항정신을 잊지 않았다. 3년 뒤의 민중 봉기와 그에 따른 2년 뒤의 독립 쟁취는 그 저항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