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며칠 동안 한국 사회는 스펙터클로 전시된 장황한 정치 쇼에 의해 요동치고 있다. "죄송합니다"란 사과만 연발해 '죄송 내각'이란 달갑지 않은 호칭을 듣게 된 이들 가운데 29일 결국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했다. 인사청문회에서 이들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민주당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일방적 밀어붙이기'로 민심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며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의 사퇴 요청을 일단 유보했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조 후보자의 경우엔 도덕성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조 후보자가 위장전입을 한 적이 있다는 사실 관계에 대해선 여기서 그냥 한 번 웃고 넘어가 주자- 여기까지가..
이재훈의 인앤아웃 no.35 인간 광우병으로 알려진 변종 크로이츠-야코브병(vCJD)의 존재는 1996년 영국 정부가 처음 발표했다. 영국 정부의 광우병자문위원회 위원인 존 콜린지 교수는 이 병의 잠복기간이 최장 30년에 이를 수 있다고 2001년 말했다. 소의 장기와 뼈, 살코기로 만든 사료, 즉 동종의 육체를 씹어 먹고 자란 소의 고기를 섭취한 사람에게 이 병이 나타날 잠재적 위험성은 잠재적이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즉자적이면서도 가시적인 공포에 직면하지 않는 이상, 매일 밥벌어 먹으며 자신을 둘러싼 개별적 욕망의 충돌 속에 매몰된 채 벅차게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잠재적 위험성은 일상과 유리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근대 국가는 그래서 존재한다. 개인들이 인지하기 어려운 위험을 국..
채 꽃펴보지 못한 젊음들이 의무와 법의 강제란 이름으로 집총했다가 차가운 물속에서 하나 둘 스러져 갔다. 익히 예상은 했지만 사고 이후 한동안 뿌옇게 부유했던 죽음은 함미가 인양되고 주검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더 이상 부인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실체가 되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죽어야 했던가. 그 물음에 대답해야할, 그들을 차출했던 국가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런 와중에 침몰 사고의 원인과 정부의 대처에 대한 온갖 의혹과 정치적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보수 신문은 사건 초반부터 별다른 근거도 없이 북한 공격설을 제기하며 안보를 상업화하는데 여념이 없다. 익히 예상했던 대로다. 반면 진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안보 상업주의의 대척점에서 북한 연계설의 여론 확장을 막는 안티로서의 존재감..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9 한국은 평등주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했던 국가다. 1960~70년대 새마을운동의 구호는 '다함께 잘살자'였다. 모두가 최저생존권조차 갖추기 힘들었을 때 이 구호는 강력했다. 나의 이익보다 '조국'의 발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면 모두가 잘 살게 되리란 믿음이 그땐 있었다. 야간 통금과 장발 단속 등 일상적 자유에 대한 억압은 평등의 가치에 대한 신화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 양보할 수 있다고 믿어졌다. 70년대 초반 고교평준화 실시, 개발제한구역 설정 등과 같은 국가 제도는 평등의 가치를 전유하기 위해 등장했다. 하지만 70~80년대를 거치며 기승을 부린 부동산 투기붐은 평등의 신화가 해체되는 시작점이었다. '다함께 잘사는' 세상은 온전히 오지 않았다. IMF 구제금융 이후 신자유주의..
이재훈의 인앤아웃 no.28 지난해 10월부터 지하철과 보행로 곳곳엔 '우측통행' 게시글이 붙어있다. 국가는 '보행속도 증가'와 '심리적 부담 감소', '보행자 안전'과 '글로벌 보행문화 정착' 등을 시행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 나가보면 우측보행을 엄숙히 따르며 걷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들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좌측보행이 왜 우측보행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마저 그다지 없다. 왜 그럴까. 국가가 명령을 내리면 무조건 따라야만 전체가 발전할 것 같던 때가 있었다. 긴 머리를 자르라면 잘라야했고, 미니스커트를 입지 말라면 입지 않아야했다. 긴 머리와 미니스커트가 왜 국가 발전에 방해가 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강력한 국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