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늦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창근 실장이었다. 평소 답지않게 잔뜩 흥분된 목소리였다. “공장 안 굴뚝에 올라갈 예정”이라고 했다. “눈도 오고 날씨가 이렇게 추우니 딱 이날이다 싶다”고도 했다. 나는 얼어붙었다.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이 추운 날 어딜 올라간단 말이냐”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상투적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은 결의같은 것으로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 잔뜩 부풀어오른 듯한 그의 목소리에서 숭고함이 느껴져서였을까. 섣부른 말로 하는 제지는 이미 통할 것 같지 않았다. 13일 새벽 2시52분. 전화가 걸려왔다. 공장 진입에 성공했고, 굴뚝에 절반 정도 올라왔다고 했다. 정상에 도착하면 다시 연락하겠다고도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공장에 들어온 경로는 말할 수 없고요.” 그는 여..
지난 11일 경기 평택시 군문동 평택장례문화원 특 3호. 검은 소복을 입은 김정희씨는 아들 김철강(35)씨의 영정 앞에서 입술을 거의 열지 않은 채 몇 마디 말을 중얼대고 있었다. 메마른 입에서 조금씩 밖으로 세어나오는 그의 말은 드문드문 들렸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하고 싶은 거 다 해주면서 왕자처럼 키웠는데…. 해주고 싶은 게 더 많았는데 저렇게 한순간에…. 내가...” 빈소 밖에서 김철강씨를 추모하기 위해 기다리던 조문객들은 차마 그런 김정희씨를 말리지 못했다. 어머니 외엔 가족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상주 자리에 앉은 김철강씨의 이종 사촌도 그런 김정희씨를 건드리지 못했다. 아무도 김정희씨의 긴 조사에 개입할 수 없었다. 하루 전인 10일 오후 3시께 경기 평택시 비전1동 ㅈ아파트. 김정희씨는 식..
*쌍용자동차 투쟁 다큐 영화에 대한 두 번째 보고서 지난 22일 1년 만에 다시 만난 신동기(34)씨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에게 물었다. “요즘 정육점 일은 어떠신가요?” 하지만 그는 쓰게 웃으며 “그만둔 지 오래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2009년 여름, 해고 대상자가 아니면서도 77일 동안의 뜨거웠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옥쇄파업에 동참했던 그는 같은 해 11월 회사에서 파업 참가를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일자리는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그에겐 이미 ‘강성’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의 해고 노동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이 셋을 키워야 했다. 학교 선배의 도움으로 월급 130만원을 받고 정육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20km..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옥쇄파업을 했다가 77일만에 파업을 푼 지 어제 밤으로 정확히 1년이 됐다. 그 날도 이렇게 비가 흩뿌렸다. 생각이 많아져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1년 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기고했던 르포르타주를 다시 한 번 읽어봤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뭘하며 살고 있을까. 고동석(38·가명)씨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워물고 있었다. 50m 옆 언덕 위, 수원 경기경찰청 앞에선 쌍용차 옥쇄파업에 함께했던 동료 60여 명이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었다. 그는 정리해고 대상자 976명에 포함되지 않은, 비해고 대상자였다. ‘산 자’로 불렸다. 16년 동안 쌍용차에서 일했다. 그동안 쌍용, 대우, 상하이차, 그리고 다시 쌍용으로 경영 주체만 세 차례 바뀌었..
이재훈의 인앤아웃 no.30 신동기(33)씨는 붉은 조명의 정육점에서 고기를 썰었다. 고기를 잡는 왼손도 칼을 든 오른손도 어색했다. 바투 깎았던 머리칼은 한 움큼 자랐고 최루액이 들어가 핏발이 섰던 왼쪽 눈은 제 색깔을 찾았다. 한 달에 130만원가량 받아 부인과 세 자녀를 키운다고 했다. 요즘도 가끔 잠을 자다 놀라 벌떡 눈을 치뜨면 부인이 몸을 쓰다듬으며 달랜다. 신씨를 만난 건 쌍용자동차 옥쇄파업이 막 끝난 지난해 8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정리해고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리해고 대상자들과 함께 77일 동안 공장을 지켰다. 눈을 질끔 감으면 업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답은 명료했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죠. 인간적인 도리까지 저버리면서 돈을 벌라면, 차라리 도둑질하고 맙니다. 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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