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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 두근거림

숨쉬기에도 호흡이 필요하다

B급 낭인 [이재훈] 2009. 5. 26. 19:42

몽골인들은 분만실을 만들 때 빛을 차단한다. 아기가 어둠 속 엄마 자궁에서 나와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빛이 너무 강렬하면, 인생의 수만 분의 1도 채 살지 않은 상태에서 시력의 절반 이상을 잃는다고 그들은 믿는다. 이후에도 몽골의 아기들은 천막 안에서 점진적으로 어둠으로부터 밝음에 적응해가는 연습을 한다. 탁 트인 초원에서 늘 장거리 포커스로 망막의 렌즈를 맞추며 살아야하는 몽골인은, 그래서 2.0 정도는 우스울 정도의 평균 시력을 가졌다고 한다. 세상과 접목하는 순간,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의 강렬한 빛을 보며 태어나는 우리네 아기들은 태어날 때부터 상대적으로 폭력적인 환경에 놓여있는 셈이다.

도덕을 체험하게 되는 우리의 규범 감각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비도덕적’인 행위를 한 다음 그에 대해 처벌받을 때 그 행위 동기가 무엇 때문에 나쁜지 물어볼 틈을 갖지 못했다. 집단은 사실 그 동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그 개별 행위가 전체에 해를 끼치는지, 아니면 유익한지만 따진다. 해를 끼치면 응징하고 유익하면 격려한다. 때문에 우리는 ‘왜 그게 선하거나 악한 걸까’라는 도덕의 계보를 따지고 올라가기보다, 집단의 격려와 응징에 종속된 자기 선택 그 자체를 도덕과 비도덕으로 스스로 분류하게 된다. 동기에 대해 따지고픈 욕구를 까마득히 잊은 채 행위 그 자체에 선하거나 악한 특징이 내재돼 있다고 생각하고 급기야 행위를 선택한 개인의 본질 자체에 ‘선’과 ‘악’이 내재한다고 여기게 된다. 결국 ‘악’이 개인의 책임으로 고스란히 소구된다. 이때 집단은 조용히 미소 짓고, 개인은 그저 혼란스럽다. 집단은 도덕을 ‘도덕적’이라고 이름 붙여놓고, 그 기호에 개인들 스스로가 그저 순종하게 만들며 정당성까지 확보한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파라노이드 파크>는 그런 면에서 전복적으로 다가왔다. 알렉스는 고등학생이자 스케이트 보더다. 그는 보드 선수들이 직접 만든 ‘파라노이드 파크’라는 곳에서 멋지게 보드를 타는 꿈에 젖어있지만, 왠지 그곳에 다가가기가 두렵다. “나는 아직 거기 갈 준비가 안 됐어”라는 알렉스의 말에 친구 제라드는 “파라노이드 파크에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고 답한다. 알렉스는 파라노이드 파크에서 만난 한 아이와 화물열차 훔쳐 타기에 나섰다가, 미필적 고의로 경비원을 죽이고 만다.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경비원을 보드로 툭 밀었을 뿐인데, 경비원이 옆 철로에 넘어져 기차 바퀴에 깔린다. 알렉스는 이 사실을 숨기고 일상에 매몰되지만, 마음은 끝없이 불편하다.

구스 반 산트의 영화를 처음 보는 나는 내내 맘 졸이며 언제 감독이 알렉스를 도덕적으로 응징할지 기다렸다. 하지만 경찰관의 심문을 받는 장면에서 클로즈업된 알렉스는 눈동자 한 번 떨지 않고 화면을 또렷이 응시한다. “무슨 일이 있냐”는 친구 마시의 질문에 “저밖에는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나한테도 그런 일이 생겼고”라고 무덤덤하게 답한다. 타인의 남은 일생 전체를 앗아낸, 살인이라는 극악의 범죄가 알렉스에겐 그저 ‘심각한 일’일 뿐이다. 알렉스가 죄의식도 없는, 부도덕한 ‘비행 청소년’이자 ‘요즘 어린 것들’이기 때문일까. 감독은 그렇게 규정짓길 원하지 않는다. 그저 복도를 무덤덤하게 걸어가는 알렉스, 작문에 소질이 없음에도 ‘그날’ 있었던 모든 일을 꼼꼼히 기록하는 알렉스, 샤워기가 뿜어내는 물을 맞으며 얼굴을 감싸고 소리 없이 오열하는 알렉스를 천천히 따라가며 그가 어떻게 외부의 도덕 체계와 자신의 행위 자체 혹은 행위 동기 혹은 자기 본질의 관계를 이해하고 규정해나가는지 차분히 기다린다.


"그걸 쓰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해. 한번 끄집어내고 나면 한결 마음이 풀릴 거야"라는 마시의 말에는 타인과 집단에 의해 규정된 체계에 무덤덤하게 편입되기 전, 글쓰기를 수단으로 스스로와 대화하며 체제와 제도 속에 갇힌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인지할 것인지부터 고민해보라는 권유가 담겨 있다. 그리고 도덕을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 제도를 내면화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을 그저 당연하게만 받아들여온 우리에게 '왜'라는 질문을 천천히 던져보길 권한다. 파라노이드 파크라는 보더들의 공연장, 즉 인간들의 열린 공간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체계에 선뜻 다가가길 두려워하는 알렉스와 빛의 강도에 점진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세상을 봐버리면서 정작 세상을 어떻게 봐야할지에 대해선 망각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말이다. 숨을 쉬기 전에도 호흡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미디어스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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