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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문>을 읽으며 떠올린 15년 전의 기억

너의 이름을 뇌 깊숙한 곳에 봉인하던 그때도 지금처럼 온몸이 시린 2월의 겨울이었다. 요한아. 무엇이 그 봉인을 풀었는지 지금 이순간 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 문득 나는, 너와 달리 나는 졸업까지 했던 우리의 학교와 너의 이름을 검색창에 쓰고 돋보기 버튼을 눌렀다. 다행일까. 포털 한 곳은 너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사이트는 너의 이름과 죽음의 방법을 적고 '경쟁적 입시교육을 계속 고집하는 시교육청의 무책임함'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랬다. 너는 1995년 2월27일 오전 8시10분, 대구 대륜고등학교 본관 2층 화장실에서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러 스스로 숨을 끊었다. 너의 죽음은 한 신문에 묵묵히 기록돼 있었다. 신문은 경찰의 입을 빌려 "네 성적으로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겠느냐"는 꾸중을 했다는 아버지의 말을 적고, 네가 성적부진을 비관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애써 외면하고 있던 사실이 눈 앞에 드러나서일까, 갑자기 명치 끝이 쿡 아려왔다. 그때도 아렸던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해 2월 중순, 학교가 술렁였다. 곧 고3이라는 '천형'을 짊어질 우리에게 학교는 '명문대' 입학을 위해 우열반 체제를 만들겠다고 했다. 저마다 학교를 욕했지만, 저마다 '나는 과연 그 반에 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문과 우등반은 44명이었다. 너는 이과였고, 몇 명인지 알 수 없는 이과 우등반은 너를 외면했다. 2월27일은 우와 열이 갈리는 3학년 1학기 시작 사흘 전이었다. 등굣길에 아이들은 급하게 뛰어 내려가는 앰뷸런스를 봤다고 했다. 목격담을 늘어놓는 아이들보다 멍하게 먼 산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아침방송 보충수업이 끝나고 평소보다 약간 늦게 출석부를 들고 온 담임은 "어디에든 말조심해라" 고만 했다. 너의 죽음에 대한 설명, 아니 너의 이름조차 담임은 입에 담지 않았다. 희망이 아닌 절망을 얘기하면 "너는 왜 그렇게 반항적이야"라며 뺨을 올려붙이던 곳이었다. 우리가 겉으로 말하는 희망은 우리의 희망이 아니라 그들의 희망이었고, 우리가 우리끼리 속삭이는 희망은 미래의 절망이라고 말하는 그들이었다. 아이들은 입을 다물거나, 뒤에서 욕지거리를 하거나, 군것질로 그 입을 틀어막으면서 그들의 희망에 복종했다. 나도, 그랬다.

 

이제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왜 너의 이름이 떠올랐는지. 읽은 소설 때문이었다. 소설엔 두 가지 문이 나온다. 하나는 낡아서 떨어진 샌드백 고리에 한 남자가 붕대로 동여매 만든 둥근 문이다. 동반자살에 실패한 그는 기어코 죽으려 이 문에 머리를 디밀고 있다. 문 앞은 삶이고, 문 밖은 죽음 이후의 그 무엇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머리를 디밀고 있던 그 순간 그의 집 맞은 편 상가 옥상에 누워있는 한 여자의 몸에 있는 둥근, 아니 모양을 알기 힘든 문이다. 폭력적인 남자친구에 의해 미혼모가 된 그녀의 문에서 아기가 머리를 쏙 내밀었다. '이곳을 나가려는 자와 그곳을 나오려는 자는 그렇게 서로를 대면'했다. 하필 이런 때라며 그는 '에이 씨발' 욕설을 내뱉지만, 건너편 옥상으로 뛰어가 막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는다. 세상을 등지려는 자가 별 인연도 없는 여자에 의해 세상을 막 만나고 있는 아기를 살리는 이 역설. 하물며 그가 아기에게 '울지 말라고 속삭' 이는 장면에서 나는 왠지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절망적인 두 개의 이야기를 연금술사처럼 희망의 얘기로 바꿔버린"이라고 묘사했다.

 

그 박민규가 '희망'이라니

 

하지만 희망이라니, 뜻밖이었다. 박민규는 쉽사리 희망을 얘기하지 않는 소설가였기 때문이다. <지구영웅전설>에선 미국식 패권주의에 종속된 제3세계의 절망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선 '프로'와 '승자'만이 지배하는 지독한 자본의 정글을 고발하던, 아니 관조했던 그였다. 단편집 <카스테라>에선 신자유주의적 노동 유연화에 희생된 젊은이들의 삶을 희화화했고, <핑퐁>에선 왕따라는 이름의 '경쟁의 루저'를 그렸으며,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선 못생긴 여자라는 '현대사회의 천민' 얘기를 적었다. 그는 결단코 희망을 쉽게 글에 담지 않았다. 쉽게 입에도 담지 않을 거라, 짐작된다. 그는 그저 늘 '그러거나 말거나'란 태도였다. 비판한다, 는 생각이지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가 편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펴낸 단편 <아침의 문>에서 동반자살과 미혼모의 출산이란 두 가지 절망을 적절히 섞어 희망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훅, 놀라고 만 것이다.

 

하지만 박민규는 박민규였다. 2003년 등단 이후 7년 만에 삐죽 '애기똥'만큼 뱉어놓은 그의 희망은 거창한 수사가 아니었다. 그는 알 수 없는 죽음 이후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아기의 삶 그 자체에서 희망을 찾았고, 그 삶을 잠시나마 짊어지고 선 타자의 존재에서 따뜻함을 갈구했다. 막 태어난 아이에겐 그 누구도 희망을 강요할 수 없다. 그저 녀석의 존재 자체로 꿀럭 미소가 새어나오지 않더냐. 그는 아이를 통해 세상의 모든 집단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된 자아를 찾으려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여전히 희망이나 비난은 섣불리 말할 것이 아니라고 그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잠시 안도했다. 살아감에 대한 찬사는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가는 게 버거운 이들에겐 들리지 않고, 죽음의 자율적 선택에 대한 비난은 기어코 죽음의 문을 열고 나가는 이에겐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희망이나 비난은 집단 이데올로기의 정치적 수사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오롯한 나의 희망을 얘기한 적이 없다. 우등반에 들어가는 것, 명문대에 가는 것,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 적당한 짝을 만나 결혼하는 것, 집과 차를 사는 것, 삼베수의를 입고 최고급 오동나무 관에서 화려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조차 아무런 타자의 개입 없이 나 스스로 원해서 말하는 희망이라 할 수 있을까. 비난 역시 그런 타자의 희망에 스스로를 종속시키지 못한 '잉여' 혹은 집단에 복종하지 않은 개인에게 가하는 채찍이었으니까 말이다.

 

희망의 정치적 수사는 너를 뒤로하고 간 대학에서 더 거창해졌다. 누군가는 혁명을 말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통일을 말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들의 말에 선동되느냐 마느냐가 희망과 비난의 까닭이 되는 삶을 살아야 했다. '혁명이란 사교 모임의 만찬이나 문학 작품을 집필하는 것, 또한 회화를 그리거나 자수를 놓는 것이 아니다. 혁명은 그 자체로 바로 폭력적인 행동이다' 라는 모택동의 말에 대해 "그렇군. 그렇다 치자. 아니, 당신 말이 맞다"고 말한 뒤 별생각도 없이 자위를 시작하는 <아침의 문>의 그 남자에게 나는 문득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혁명의 희망은 과연 우리의 희망인가, 과문한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느 누가, 그걸, 장담할 수 있을까.

 

쭈글쭈글한 아기의 말간 자아처럼

 

하지만 나는 박민규가 싸놓은 애기똥만한 희망이 결코 작다고 생각지 않는다. 나는 그의 제안이 타자의 개입을 해체하고 온전한 내 삶의 희망이 무엇인지 스스로 고민해보자는 메시지로 들렸다. 단 한 번도 나의 희망을 말해본 적이 없는, 집단의 온갖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나를 한 번쯤 바닥부터 다시 훑어보자는 얘기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쭈글쭈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던 아기의 말간 자아처럼 말이다. 자신의 바닥조차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람이 남에게 무슨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라고 그 아기가 말하고 있는 듯도 싶다.

 

요한아, 이젠 조금 더 알겠다. 문득 네 이름이 떠올랐던 이유를. 그들이 강요한 희망이 짜놓은 굴레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다 둥근 문을 넘어선 너를 뒤로 하고, 아무런 꿈틀거림 없이 그들의 희망에 복종해 꾸역꾸역 살아온 나 자신이 한없이 비루해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반성조차, 이미 간 네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겨우 앞으로를 또 살아갈 나 자신의 자성을 위해 쓴다는 점이 또 다시 간사하게만 보이지만, 요한아. 나는 이제 조금씩 얘기하련다. 온전히 스스로의 사유로 희망을 품는 개인들이 얼기설기 짠 관계, 이뤄지기 힘들지만 꿈꿔야할 희망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 글들, 네가 지켜봐 줄 수 있을까.


*이 글은 미디어스에 실렸습니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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