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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음

 

#'리미츠 오브 컨트롤' 포스터

우리는 상상력이 거세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아니 통제된 사회라고 해야 더 적확하겠다. 직업을 가진 이들은 매일 명확하게 정해진 시간이 되면 출근해야 한다. 이메일과 포털에 실린 연예뉴스를 살피다 눈치를 보며 업무를 시작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일제히 밥을 먹으러 간다. 유일하게 정해지지 않은 건 퇴근 시간밖에 없다. 일상에서 나를 해방시킬 퇴근 시간은, 이번에는 불명확성으로 내 삶을 옥죈다. 시간의 속박에 길들여진 삶은, 일상을 언제 마무리해야할 지 모르는 상황에 이르면 아노미의 불안에 빠지고, 그로 인해 지친 몸과 마음은 어두운 그 어느 시간이 되면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지 못한 채 까무룩 마무리되고 만다.


그나마 정해진 일상의 시간이 있는 사람은 나은 편이다. 일상에 구속조차 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은 24시간 365일을 그 구속에 편입되기 위해 투자하고 투자해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투자해도 일상의 구속에 편입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결국 미래의 불명확성에 의해 불안에 떨 수밖에 없고, 이때의 삶은 24시간 365일이 일상이 되어 나를 압박한다. 이때 일상을 해체한 상태에서 시간의 속박과 정신적 구속으로부터 일탈해야 얻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충당할 시공간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


게다가 이젠 상상력을 장착하라고 강요당하기도 한다. '인문학 읽는 CEO'들이 등장하면서 그들의 눈에 띄기 위해 인문학적 상상력마저 기본 스펙으로 갖춰야하는 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은 나를 설명하는 교환가치로 전락했다. '인문학적 스펙'은 구조에 속박돼 살아가는 나를 '상당히 가치 있는 존재'라고 인식하게 하는 방법으로 내게 손짓하며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구조화해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세계의 중심이 내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리미츠 오브 컨트롤' 스틸컷


짐 자무시의 영화 '리미츠 오브 컨트롤'은 상상력마저 통제된 사회에 똥침을 날리며 통제 사회에 대한 해체 욕구를 직설적으로 내뱉는다. 크리스토퍼 도일의 촬영은 색깔은 화려하지만 장식을 최소화해 건조함마저 느껴지는 자무시 특유의 미니멀리즘 화법을 적절히 담아냈다. 한껏 절제돼 있으면서도 철학적 대사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연달아 쏟아낸다. 킬러인 '고독한 남자(Lone man, 이삭 드 번콜)'가 스페인으로 가는 공항에서 만난 '의뢰인(알렉스 데스카)'은 스페인어로 대뜸 "모든 것은 주관적이지. 상상력을 발휘하게. 인생은 한줌 흙인 것을. 우주는 중심도 주변도 없지. 모든 건 자의적인거야"라는 말을 거뭇거뭇 내뱉는다. 스페인어를 모르는 고독한 남자에게 이 언어는 통역이라는 한 단계를 거쳐 강요되지 않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고독한 남자에게 이 언어는 '의뢰인'의 말처럼 자의적인 언어로 겉돌 뿐, 당연히 따라야하는 당위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구조는 반복된다. 성냥갑 속에 담긴 암호화 같은 지령을 건네는 이들은 모두 만나자마자 "스페인어 못하죠?"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대화가 겉돌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이들은 음악과 영화, 과학과 예술, 환각의 세계가 가지는 가치에 대해 홀로 떠든다. 그 언어가 고독한 남자에게 가닿을지 아닐지는 아무도 알 수없다. 그리고 자무시는 이들의 입을 빌려 "스스로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묘지에 가봐야해. 거기서 이 세상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될 거야. 인생은 한줌 흙일뿐이란 사실을"이란 말을 되풀이한다. 여기서 '스스로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화 말미에 고독한 남자에게 살해당하는 자본가 '아메리칸(빌 머레이)'이다. 아메리칸은 자신을 살해하러온 고독한 남자를 만나자마자 대뜸 "네놈들 정신은 쓰레기들에 물들어 오염되고 타락했어"라고 일갈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현실에 저항하는 음악과 영화, 현실의 가치를 뒤집거나 부정하는 과학 이론과 예술적 상상력, 현실에서 이탈한 어딘가를 지향하거나 혹은 '어떤 색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일'만큼 때론 어떤 것이 진짜 현실인지 의심할 수 있게 해주는 환각의 세계. 자본과 자본의 대리인으로 전락한 국가는 이 가치 체계를 끊임없이 통제하고 있지 않은가. 자본과 국가 이데올로기는 '일탈이 가져올 정신의 오염과 그 오염으로 인해 다시는 일상의 평범함으로 되돌아올 수 없음, 그리고 이어질 사회에서의 도태'에 대한 공포를 끊임없이 개인에게 주입하고 있다. 하지만 고독한 남자는 아메리칸의 겁박에 "현실은 자의적이야"라고 담담히 대답하며 아메리칸을 살해한다. 이때 고독한 남자는 자본의 통제와 구속에서 해방된 개별적 자아이고, 살해 행위는 가치에 의해 강요되지 않은 자아가 선택한, 자본과 국가에 대한 단죄를 상징한다.


#'리미츠 오브 컨트롤' 스틸컷


자무시의 화법은 치밀하다. 영화 곳곳에 촘촘히 박아놓은 디테일 역시 그가 하고픈 말을 충실히 답습하고 있다. 고독한 남자가 알몸의 여성(파즈 드 라 휴에타)과의 만남에서 총과 휴대전화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일할 땐 섹스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장면이 답습의 첫 번째. 고독한 남자의 일은 쥐는 자가 즉시 상대를 죽음의 공포 아래 굴종시킬 수 있는 권력(총), 사유의 교환 없이 즉자적인 언어의 교환으로만 이뤄지는 현대적 소통(휴대전화기), 상대의 몸을 빌려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면서 그 자체로는 쾌락의 균등 분배를 약속하지 않는 행위(섹스)를 배제한 상태에서 이뤄질 만큼 권력과 즉자적 커뮤니케이션, 일방의 폭력에서 해방돼 있다.


고독한 남자가 겹겹의 경호원들과 경호 시설을 뚫고 방음마저 완벽하게 된 아메리칸의 사무실로 침입하게 되는 장면이 영화에서 생략된 점은 답습의 두 번째다. 아메리칸이 "어떻게 들어왔어!"라고 소리치자, 고독한 남자는 "상상력을 동원했지"라고 답한다. 고독한 남자가 아메리칸을 살해하고 유유히 요새 같은 사무실을 벗어난 뒤 완벽한 경호 시스템이 되레 아메리칸의 시신 발견을 지연시키는 장면은 톱니처럼 짜인 전 지구적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뛰어넘는 상상력의 우위를 증명하는 것 아닐까.


그런 점에서 '리미츠 오브 컨트롤', 즉 통제의 한계라는 제목은 2시간 가까운 러닝 타임 끝에 나오는 'No Limits No Control(한계도 통제도 없다)'이란 엔딩 크래딧으로 전복된다. 선언적 제목으로 결론을 미리 유도하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본 관객에게만 "나의 결론이 어떠냐"고 넌지시 말하는 자무시의 물음에는 이 영화의 주제의식이 오롯이 함축돼 있다. 온갖 선동과 선언에 지쳐 몸과 마음을 옹송그린 채 '도대체 나의 생각은 어디까지가 나의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면, 자무시의 날카로우면서도 지긋한 자문자답을 한 번 곱씹어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미니멀리즘 : 예술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근본 즉 본질만을 표현했을 때 현실과 작품의 간극이 최소화해 진정한 리얼리티가 달성된다는 믿음에 근거한 표현 기법. 보통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한 상태에서 단조롭고 반복적인 표현이 주를 이룬다.


*미디어스에 실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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