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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모르던 대학 시절과 어설픈 초년 기자 시절, 나는 수많은 ‘허기사’를 만나, 뭘 할 수 없음에 좌절했다. 뭘 할 수 없음에도 살갑게 대하는 것만으로 체면치레를 하려하는 나 자신의 비루함에 화가 나고, 그 와중에 한 것도 없으면서 뭔가 대단한 걸 한 듯 의기양양한 선배들이 꼴사납고, 그런 선배들에게 욕지거리 한 번 내뱉지 못한 나의 소심함에 욕이 나왔다. ‘이상한 모자’의 홈페이지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에서 개인적으로 ‘쩜셋(정확히는 ... 이다)’에게 바치는 글을 훔쳐보다, ‘아 씨발’ 욕이 불쑥 튀어나왔던 건 그래서였다. 그의 홈피가 원인을 알 수 없는(아마 그는 아는 듯 하지만) 버그에 걸려 잘 열리지 않는 바람에, 나의 블로그에 처음으로 남의 글을 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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쩜셋에게 바칩니다

 

 

 

내가 엊그제 우리 동네에서 공연이란걸 했거든요? 그래도 나도 뭐 인생에 재미란 게 있어야 할 것 아니오? 그런데 공연을 하기로 한 술집 앞에서 '허기사'를 만났습니다. 허기사가 누구냐면.. 진짜 내가 인생 통틀어 본 막장 넘버 쓰리 안에 드는 사람입니다.

 

 

이 아저씨를 내가 덤쁘아저씨들이랑 일할 때 만났는데 당시 지부장의 기사였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지부장이 이제 뭐 대충 느낌을 말해보자면 노조위원장 그런거잖아요? 그럼 이 사람이 노조 일을 해야 되는데 그래도 출신은 덤프잖아요? 그럼 덤프가 놀고 있을것 아닙니까? 그걸 운전을 하는 겁니다. 기사가. 그래서 돈을 벌어서 애초에 정한대로 차주와 수익을 나누던지 월급을 일정액 받던지 하는겁니다. 그래서 이제 허기사가 지부장 기사인데, 나름 노조니 뭐니 해가면서 허기사 허기사 하기 뭐했던거죠. 덤프 아저씨들이 지들끼리는 사장이라고 부르니까 허기사는 허부장이 됐습니다. 허부장 이쪽으로 와서 술 한 잔 해.. 그런건데요.

 

 

이 아저씨가 맨날 술을 먹어요. 뭐 막장이 다 똑같지. 아저씨가 키도 쬐끄매가지고 술 먹기 전엔 말도 없고 얌전합니다. 근데 술만 먹으면 사람이 진상을 부리는데 진상도 그런 진상이 없는겁니다. 그만 좀 먹으라고 하면.. 정해진 멘트가 있어요. '내가 알아서 합니다.' 라고 하는데, 한 번도 알아서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술은 술대고 계속 먹고 진상은 진상대로 계속 부리고.. 그냥 냅두면 24시간 그럽니다. 24시간을.. 술을 달라.. 횡설수설.. 한 얘기 또 하고.. 울고.. 계속 들러붙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덤비고..

 

 

허기사는 집도 없습니다. 덤프에서 잡니다. 돈도 없습니다. 그 날 버는 돈을 그 날 다 씁니다. 물론 술 먹는데 쓰죠. 나이라도 젊느냐 하면 지부장보다 나이가 더 많습니다. 올해로는 56세라 하니 저랑 부대낄때는 53세 52세 그랬겠죠. 이게 막장이지 뭐.. 마누라가 애를 데리고 옛날에 도망갔나 그랬을 겁니다. 그것 때문에 그런 막장이 됐는지는 제가 모르겠고요. 군대에 좀 길게 있었던거 같기도 하고.. 말은 이 얘기 저 얘기 있는데 어쨌든 막장은 막장이다.. 완전 막장이다..

 

 

그래서 이 막장의 끝이 어떻게 됐느냐면, 아 아저씨가 모처럼 용기를 가지고 자살시도를 했습니다. 물론 술에 취한 상태였겠죠. 덤프에 들어가서요. 덤프에 불을 놓았는데, 연기가 막 나니까 겁이 나서 다시 뛰쳐나왔지요. 덤프가 막 불에 타고 있으니까 엉엉 울고 그랬겠지. 결국 지부장의 덤프는 불에 활활 타서 없어졌습니다. 허기사는 잠수를 타게 되었지요.

 

 

근데 그 사람을, 이 넓은 대한민국에, 이 넓은 수원에, 하필이면 그 시간에 그 술집 앞 골목에서 딱 마주친겁니다. 웃기죠? 저를 보더니 "혹시 저 어디서 본 일 없으세요?" 라고 하더군요. 야 이거 큰일났다.. 이 생각이 딱 들더라구요. 그래도 거기다 대고 제가 잘 모르겠는데요? 이럴순 없잖아요? 이미 술냄새도 나고.. 저 영등포에 계시지 않으셨쎼요? 이렇게 되물었죠. 그랬더니 아 네 네! 그러더니 막 제 손을 붙들고 엉엉 우는겁니다. 그리고 신세한탄이 시작되는데 길에서.. 막 제 친구들이 저를 불쌍하게 쳐다봤지만 어쩔 수 없는거 아닙니까.

 

 

허기사가 주절주절 한 내용은.. 내가 참 그 때가 그립다.. 그때 울산에 간 기억이 선명하다.. (이때 울산에 당연히 때려부수러 갔겠죠?) 지부장님께는 정말 못할 짓을 했다.. 내가 죄값을 치뤘다.. 지금은 험한 일을 하느라 몸에 땀 냄새도 많이 난다... 김차장님(접니다) 정말 고생도 많이 하시고 그랬는데.. 제가 사고를 쳐서.. 횡설수설..

 

 

즉, 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덤프 시절이라는 것은 막장이 된 이후에 어떤 대의에 의해 산다는 느낌을 받았던 유일한 순간이었던 겁니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진짜 대의를 위해서 살았냐, 그거 아니고요. 그냥 지부장 기사였다니까요? 하지만 지부장은 뭔가 대의를 위해 사는 사람이고 그렇다면 기사인 나는 대의를 위해 사는 주군을 모시는 한 사람의 종자이지 않았겠는가.. 즉, 지부장이 돈키호테라면 허기사는 산초판사인거죠. 그럼 뭐 대충.. 그렇게 되는거 아닙니까?

 

 

하여간 이 아저씨가 술집에까지 따라들어오더라구요. 엄청 깜짝 놀랐습니다. 애들하고 얘기하다가 우연히 문간을 봤는데 그 아저씨가 딱 서있는데 진짜 심장이 멈출거 같더군요. 얼른 쫓아가서 오늘은 이미 많이 자셨으니 집에 가시라고.. 그랬더니 "내가 알아서 합니다." 그러더라구요? 그러더니 딱 빠에 앉아서 카프리를 시킵니다. 전 뭐 어떻게 방법이 없으니까 자리에 와서 앉고요. 한참이 지났는데 카프리를 계속 마십니다. 제가 사장을 불렀어요. 오지랖 넓게도.. 그리고 얘기를 했죠. 저 아저씨 우울증에 알콜중독인데 제가 전에 알던 사람이라 요 앞에서 만나서 쫓아들어왔습니다.. 돈을 안 낼 가능성도 있으니 계속 저러고 있으면 경찰을 부르세요... 사장이 알았다 걱정말라... 아 오해할까봐 얘기하는데, 사장과 저는 안면이 있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젊은 여자애가 생글생글 하면서 제 쪽으로 뛰어오더니 이름이 뭐냐고 묻더라고요. 아 이건 또 웬 청춘창업이야 싶었는데 알고보니 가게 알바입디다. 빠에 앉아있는 아저씨가 날 찾았대.. 또 내가 갔습니다. 그만 자시고 집에 가시라고 한참 얘기하는데.. 이 아저씨가.. 제가 안주라도 하나 보내드리고.. 제가 옛날에는... 지부장님한텐 얘기하지 마시고.. 제가 지금은 험한 일을 해서 몸에 땀 냄새가 나고... 횡설수설... 아 지부장은 뭔 지부장 내가 지금 덤프에 있지도 않는데.. 한참 설득하다가 그냥 포기하고 또 자리로 왔습니다. 제 자리에서 한참을 또 얘기를 하고 있는데 알바가 또 생글생글 웃으며 뛰어오더군요. 시발 또 뭐야? 알바가 무슨 분홍 종이쪽지를 줍니다. 야, 이거 또 창업을 하는건가 했는데 알바 왈, "저 아저씨가 편지썼어요!~"

 

 

일순간에 후로게이가 됐는데 편지 내용은 아까하던 그런 횡설수설입니다. 이걸 어째야 하나 생각하면서 허기사 쪽을 보니 이 아저씨가 옆 사람과 싸우고 있더군요. 뭐 어쩝니까, 또 제가 가야지.. 갔더니 사장이 더 이상 술을 안줘서 진상이 시작됐더라고요. 옆 사람이 아저씨 술 많이 취한거 같으니 집에 가시라 하니까 덤비기 시작한겁니다. 근데 제가 가서 아 그만 하시고 집에 가세요 라고 말하니까 갑자기 고개를 굽신굽신 하면서.. 아이고.. 아 예.. 아이고.. 하면서 눈물을 뚝뚝 또 흘리는 겁니다. 제가 아 제가 이렇게 살고... 제가 참 못할 짓을 많이 하고... 지부장님께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아이고.. 아이고....... 저는 거의 억지로 잡아 끌다시피 하면서 이제 나가시라고 막 강권을 하였죠. 다행히 이 아저씨한테 만원이 있어서 카프리 먹은거 뭐 8천원인가 계산을 하고 술집 밖으로 끌고 나왔습니다.

 

 

나와서도 신세한탄은 계속 되었지요. 내용은 똑같고. 한참을 그러다가 간신히 집에 보냈습니다.

 

 

 

제가 빨갱이니깐 남을 빨갱이로 만들긴 만들거 아닙니까? 근데 저는 야 지금 민중이 어떻고 노동자가 어떻고 이딴 소리 이제 안합니다. 제가 얘기하는건 딱 하납니다. 네가 죽기 직전에 네 삶을 돌아봤을때..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갈 것이다.. 부모 돈 축내고 대학 나와서.. 유식한 척 좀 하다가..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애 뒷바라지 하느라 온 고생을 다 하고.. 그러나 잘 되면 노후가 약간 편할 것이고 안 되면 노후고 뭐고 착취당하다가 뒈질건데.. 결국 세상에 남겨놓은게 그동안 싼 똥 밖에 없으면 얼마나 기분이 개같을 것이냐? 안 그러냐? 이렇게 말하는데 그래도 상관없다 그러면 그냥 딱 포기하죠. 근데 진짜 개같을거다 그러면 다음 얘기를 합니다. 그럼 세상을 좀 가치있게 살아야 할거 아니냐.. 정말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라.. 그러면 보통 대답이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내지는 그런거 없습니다 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예술을 해라. 근데 예술은 아무나 하나요? 예술도 뭐가 되어야 하는거지.. 물론 돈도 안되고.. 예술이 싫다 그러면 운동권 밖에 할 게 없다.. 근데 이게 웃기는 개지랄이긴 해도 꽤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허기사도 죽기 전에 덤프연대 생각을 하겠죠.

 

 

아 걍 그렇다고요. 이 글도 막줄이 망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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