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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바라보는 시선

절실함의 양면성

[이재훈] 2010. 11. 7. 18:10

예전에 써놓은 글을 참고하기 위해 뒤지다, 2005년 3월에 쓴 글을 발견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뭘하고 있을까...


치밀어오르는 분노나 표출할 수없는 답답함으로 폭발하기 직전일 때 우리는 종종 높은 곳을 찾곤 한다. 확 트인 곳에 올라가면 저 아래 삶의 현장을 잠시나마 하찮게 볼 수 있는 높이의 힘 탓에 가끔 분노나 답답함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의 활로를 찾을 때 땀흘리며 산을 오르고, 드라마에서는 답답한 사람들마다 빌딩 옥상을 찾아가는 모습이 대명사처럼 묘사되는 건지 모르겠다.

2005년 3월21일 오전 7시30분 서울 서대문네거리 도심 한복판. 평소 그 자리에 있는 지도 몰랐던 21m 높이의 교통관제센터에 3명의 젊은 여성들이 올라섰다. 안전장구 하나없이, 1∼2m 간격으로 박혀있는 대못에만 의지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그 곳으로 올라갔다. 아마 땅이 흔들리는 순간을, 다리가 후들거리는 순간을, 눈앞이 하얗게 떨리는 그 순간을, 10초가 10분처럼 길게 느끼지던 그 높이의 공포를 그들은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며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21m 높이에서 하찮게 보일성 싶던 아랫마을 삶의 현장, 너무도 쉽게 그들의 요구를 외면했던 그 세상을 향해 그들은 절실하게 외쳐댔다. “직권면직 철폐,기능직 전환 쟁취” 하지만 목소리는 지나가는 차량들에 소음에 쉽게 묻혔다.

절실함은 쉽게 전달되기 어렵다. 자신의 절실함을 절실함 그대로 강하게 표현하면 그 절실할 때까지의 경험을 함께 하지 못했던 이들은 마냥 의아할 뿐이다. 그 의아함이 집단적인 절심함과 부딪힐 때 우리는 그 절실한 무리들을 '광기'로 몰아부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 절실함에 상응하는 공포를 극복함으로써 타인의 공감을 얻어내려고도 하는 것같다. 21m 높이에 올라가는 과정의 공포와 11시간동안의 추위와 외로움을 견뎌냈던 그들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려했을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뛰어내리겠다고 그들을 절실하게 내몬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현실의 벽에 막혀 끝끝내 눈물을 훔치며 그 자리에서 내려와 경찰차로 끌려가는 그들의 쓸쓸한 옆얼굴을 바라보며 나도 한켠에서 벅차오르는 뜨거움을 함께 느꼈다. 절실함은 가끔 그런 식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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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

3명의 여성은 전국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동조합 간부들이다.

경찰 고용직은 경찰서나 파출소에서 전화교환, 교통사고 기록 입력, 비서, 경리 등의 업무를 맡아온 특수경력직 공무원이다. 경찰은 1989년 이 직제가 기능을 상실했다며 폐지한 뒤 국가공무원법 70조 직권면직 조항을 근거로 2003년 496명, 2004년 584명을 면직했다. 이 가운데 노조원 87명이 면직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지난해(2004년) 12월 16일부터 서대문네거리와 민주노동당 중앙당사 등에서 농성을 벌이며 “고용직을 기능직으로 전환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지난 25일로 그들의 투쟁은 100일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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