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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학교가 갑자기 난리법석을 치를 때가 있었다. 커터 칼로 왁스를 긁어내 흩어놓은 뒤 헝겊으로 목재 마루를 닦고, 화장실은 호스로 물을 뿌려 머리카락 한 올까지 하수구로 보낸 뒤 물기를 모두 닦아냈다. 교문에서 학교 건물까지 늘어선 화분의 오와 열을 맞추고, 운동장에는 과자 봉지의 조각 비닐까지 모두 주워담았다. 창문은 물로 깨끗이 닦고 신문지를 구겼다 편 뒤 남은 물기를 닦아냈다. 선생은 평소 문제아로 낙인찍어 책상 밑으로 몸을 숨길 때까지 매질을 해대던 아이에게 갑자기 친절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나흘 청소를 하고 '문제아'를 대하는 선생의 태도가 남다를라 치면, 며칠 뒤 어김없이 교육청에서 장학사가 찾아왔다. 장학사는 잔뜩 고개를 치켜들고 교문에 들어섰고, 아이들에게 폭력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던 교장과 교감, 선생은 연방 몸을 굽실댔다. 장학사는 겨우 한 두 교실을 시찰했고, 설사 화장실을 간다해도 교사용만 사용했으며, 운동장은 둘러보지도 않았고, 창문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물론 '문제아'에 대해선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처음의 허탈함은 그런 일이 반복되자 체념으로 바뀌었다.

지난 여름쯤부터였을까. 정부는 TV 공익광고를 통해 '글로벌 에티켓'을 선전하기 시작했다. '외국인을 만나면 웃으며 헬로~ 인사해라', '문을 열고 나갈 땐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줘라', '공공장소에선 목소리를 낮춰라', '지나갈 때 부딪히면 먼저 미안하다 말해라'는 등의 메시지가 담겼다. 그즈음 서울시는 택시 기사의 두발 단정과 흡연 금지를 명령했다. 택시 안에서 담배냄새만 나도 시민은 택시기사를 신고할 수 있게 됐고, 그러면 택시기사는 대충 월급 이상의 벌금을 물어야하게 됐다.

11월이 가까워져 오자 강박은 더 조급해졌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11월11일과 12일엔 차를 몰고 나오지 말라는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나붙었다. 서대문구청은 이 기간 동안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하지 않는다고 발표했고, 거리는 물청소하는 공무원과 공공근로자들로 득시글댔다. 급기야 경찰은 G20 공식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리며 정부의 과대선전을 풍자하던 한 번역가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검찰은 이 사건을 공안1부에 배당해 엄중 처벌을 법원에 요구했다. 경찰은 “국익을 위해 중요한 국제 행사를 앞두고 국격을 높이는 국가 홍보물을 더럽히는 것이 (시민의) 정상적인 사고라고 생각하기 어렵고, 사안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1일엔 반가우면서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기륭전자 사쪽이 해고했던 10명의 여성 노동자를 재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2005년 저임금과 무차별 해고 위협 등에 저항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해고통보를 받았던 200여명의 비정규직 파견 여성 노동자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투쟁한 10명이었다. 1895일 동안 파업과 징계, 고소와 고발, 농성과 직장폐쇄, 단식과 사쪽의 폭력 장면들이 어슴프레 떠올랐다. 그런데 사실 이번 타결 소식은 그 전날인 지난달 31일 <뉴시스>의 보도로 먼저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사쪽은 노조쪽에 "보도를 1시간 안에 삭제하지 않으면 타결을 무효로 돌리겠다"고 겁박했다. 노조 조합원들은 <뉴시스>를 비롯한 언론사에 이 말을 전했고, 보도는 곧 내려졌다. 사쪽은 1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거창하게 타결 소식을 알렸다. 1895일 동안 사람들을 실존적 극단으로 내몰면서 결국 190여명을 그 자리에 함께 설 수 없게 만들었던 행적에 대해 그들은 전혀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너무 과도한 기대일까.

이튿날엔 또 놀라우면서도 마냥 놀랍지만은 않은 소식이 들렸다. 역시 2005년부터 원직 복직과 기아자동차의 원청 사용자성 인정 등을 요구하며 투쟁해온 동희오토 해고 노동자 9명이 전원 복직됐다. 기아차의 경차 '모닝'을 하청받아 생산하던 동희오토는 역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자 100여명의 조합원을 해고했다. 해고자들은 "기아차가 원청회사이니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직접 교섭하라"고 요구했고, 지난 7월부터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 왔다. 이번 타결 역시 90여명의 조합원은 그 자리에 없었고, 현대기아차의 원청 사용성도 인정되지 않았다. 문득 "기아차는 G20 의장국인 대한민국이 자랑스럽습니다"라는TV 광고 장면과 함께 현대기아차 본사에서 G20이 열리는 코엑스까지 도로상 거리가 8.36km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 세 가지 장면은 서로 무관할까. 장학사의 방문에 학교를 '정제'하는 교권이나 중상국가의 수장들과 CEO들의 방한에 국가를 '정비'하는 정권이나, 아직 편입되지 못한 미래 권력을 향한 복종에 매몰돼 있다는 점에서 연관성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권력을 가진 자가 통제력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과시하는 이 장면들에서, 그 권력을 쥐어 준 자가 공교육에 아이들을 맡긴 학부모이거나 대의 민주주의로 권력자를 선출한 시민이라는 점은 자연스레 은폐된다. 대부분의 장학사들이 교육 환경에는 관심이 없고, 교권에 의한 통제력도 별반 눈길을 두지 않으면서 그저 자신들의 권력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으로 방문 목적을 누렸던 것처럼, 그들만의 활발한 자본 교류와 세계적 지배력의 재확인을 위해 '소풍' 오는 중상국가의 수장들 역시 이명박 정권의 국가 통제력과 장악력에 별반 관심이 없다.

하지만 교권을 가진 자들이 교육청으로의 영전과 승진을 위해 학교 통제력을 필수적으로 동원하는 것처럼, 정권을 가진 자들은 실체도 없는 국격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갖춰야 할 필수 요소인 것처럼 포장한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모습이 겹친다. 장학사가 폭풍처럼 지나간 학교의 교육환경이 전향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던 과거와 중상국가 수장들이 하루 반 머물고 떠날 자리에 국격 향상이란 수사가 조용히 소멸하고 말 미래일 것이란 전망은 기시감으로 교차한다. 이 기시감의 뒤안길에서 기득권층의 콤플렉스가 읽힌다. 교권을 가진 자들이나 정권을 가진 자들이나 자신들보다 권력적으로 우위에 있는 대상에게 자신의 하부 권력을 재확인시키는 것 외엔 자신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는 사실이 명징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인정받을 방법을 제대로 짚지 못한 채 몸부림치는 중간 권력자들의 이 코미디는 부조리라고 밖에 형용할 길이 없다.

기륭전자와 동희오토의 '극적' 타결을 통해선 콤플렉스가 바탕이 된 기득권층의 끝없는 불안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끝없는 절규와 생존을 포기한 단식을 앞에 두고도 5년 동안 꿈쩍하지 않던 사쪽이 G20을 앞두고 갑자기 자세를 돌변해 노조에 손을 내민 것이 과연 우연일까. '문제아', 특히 성적 부진아를 매질하면서 그 아이를 교실에서 철저히 배제하고 한 명의 학생에 대한 억압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자신의 지배적 교권을 오롯이 재확인하던 교사들이나, '문제노조'를 겁박해 그들을 사회에서 고스란히 투명인간으로 만들면서 경쟁지상주의의 이탈자가 어떻게 괴멸해가는지 바라보던 것을 즐기던 정권과 자본의 결탁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그들에게 '하부 계층'으로 간주되는 학생이나 노조의 '돌출' 행동은 내부의 불안한 권력 우위 관계의 치부가 드러나는 지점임에 더해, 외부의 인정지향 대상에게 자신의 권력이 박탈당할까 안달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그래서 그들은 권력 하부 계층을 끝없이 억압하고 숨 돌릴 틈 없는 생존 경쟁으로 내몰아 하부 계층이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낼 여유조차 주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정확히 합집합이 된다.

권력이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에서 탈피해 그 자체로 목적이 될 때, 권력 쟁취자는 하부 계층에 대한 폭력적 통제와 억압으로 자신의 권력 지위를 끊임없이 재확인하고, 보다 상위에 있는 권력 쟁취를 위해 그 지위를 재활용한다. 그런 점에서 G20을 앞두고 벌이는 이 정권의 온갖 뻘짓에는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지배 권력의 처절한 몸부림이 상징적으로 얽혀있다. G20 이후 이명박 정권이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꺼낼 도구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지는 건 이런 까닭에서다.

*미디어스에 실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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