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경쟁은 이미 일상으로 내면화돼 있었다. 학교가 경쟁을 강요하며 공부 잘하는 학생만 떠받들고 있지만, 학생은 그런 학교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상위권에 들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지난 3일 서울의 ㄱ고등학교 앞에서 만난 이 학교 3학년 정성모(가명·18)군은 “아이들끼리 1등부터 50등은 ‘알짜배기’, 51등부터 100등은 ‘예비인력’, 100등 밖은 ‘잉여’라고 부른다”며 “학교가 결국 100명만 끌고 갈 것이라는 불안감이 만연해 있다”고 했다. 이 학교는 학년별로 1등부터 50등까지 성적순으로 독서실 지정석을 만들어 두고, 그들과 51~100등 사이에는 칸막이를 설치해 학생들을 갈라놓았다. 1등부터 10등까지 최상위 학생들이 앉는 책상은 다른 학생들의 책상보다 더 넓고, 사물함도 달려 있다.

 
정군은 3학년생 360명 가운데 51~100등 사이에 속해 있다고 했다. 그런 부당한 조처에 화가 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화가 나기보다는, 지정석 자리를 보면 등수가 보이니까 경쟁심이 생겨서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란 생각이 들어요. 1등부터 50등까지 아이들을 보면서 열등감도 느끼고 시기심도 듭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중경외시(중앙대·경희대·외국어대·서울시립대)는 갈 수 있으니까, 어차피 쟤네(1~50등)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다’라고 생각하며 외면하고 말아요.”

1학년 때부터 줄곧 그런 환경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교장과 교감, 교사들은 늘 '출세'한 동문 선배들을 들먹이며 ‘좋은 대학’을 가야 ‘명문고’의 전통이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모의고사가 치러질 때마다 독서실 지정석 자리가 바뀐 성적에 따라 재배정됐다. 독서실에서 이뤄지는 ‘자율학습’에서 빠지려면, 학교에 ‘나는 앞으로 이 학교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내야 했다. 한번 각서를 내면 3학년이 될 때까지 다시는 독서실 자습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한 교사가 독서실에 와서 “곧 <교육방송>(EBS) 속성 보충학습반을 만드는데, 여기 아이들은 꼭 수업을 받아라. 4시간 수업당 문제집 1권을 끝내면, 한 달에 6권씩 풀 수 있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같은 선생님이 ‘잉여’들이 모인 교실에 가서는 “수업 속도가 너무 빠르니까 너희에겐 도움이 안 된다. 신청하지 마라”고 얘기하는 걸 봤다. 미안한 마음이 잠시 들었지만, 곧 지워졌다고 했다.

 
“저도 성적이 떨어졌을 때 남 탓, 학교 탓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결국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고, 제가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해요.”

 
서울 ㅇ고의 한 교사는 “이미 수준별로 반을 나누고, 최상위권 아이들만 우대하면서 나머지 학생은 성적으로 차별을 하는 학교생활이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요즘은 상담을 해도 그런 차별에 대한 반발이 별로 없다”며 “신기루처럼 최상위권 반으로 가고 싶은 욕망만 이기적으로 발현되는데, 그게 자신들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군과 헤어진 뒤 둘러본 ㄱ고 교문 앞에는 ‘ㄱ고 동문 일동’ 명의로 ‘남자는 세 번 울지만, 11월18일(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일)! ㄱ고는 울지 않는다’라는 펼침막이 붙어 있었다.

관련 기사

최상위권 16명 특혜수업...학생에 교사 선택권까지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476641.html

기숙사도 상위권 한정...성적따라 알짜-예비-잉여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476638.html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