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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이 들어왔다.

 

"기자윤리강령에 객관성 중립성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중동 기자의 객관성 및 중립성의 기준은 뭔가요? 조중동은 차치하더라도, XXX 기자와 XXX 기자의 중립성 객관성은 여기서는 그냥 개인의 의견일 수밖에 없나요?"

 

트위터로 들어온 질문인데 나의 짧은 식견으로는 140자 몇 번으로 압축해서 설명할 수 있는 사안도 못되는 것 같고, 마침 최근 비슷한 생각을 잠깐 한 적도 있어서 블로그에 글을 정리해 봤다. 다만 정제된 의견은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두고 얘기를 풀어가야겠다.

 

일단 기자윤리강령에는 ‘우리는 뉴스를 보도함에 있어서 진실을 존중하여 정확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며, 엄정한 객관성을 유지한다’라는 항목이 있다. 이 강령에 기반을 둔 것인지 아니면 저널리즘의 기본적인 책무인 것인지는 정확하게 근원을 알 수 없으나, 특히 한국 저널리즘에서 객관성과 중립성이 하나의 절대가치인 것처럼 유통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거칠게 말해서, 한국 저널리즘에서 객관성과 중립성의 절대가치는 민주화 이전 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보도통제 아래서 군사정권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를 받아쓰기만 해야 했던 시대에 객관성과 중립성, 즉 '공정성'은 그 일방성의 폭력에 대한 독립선언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군사독재라는 거악이 사라지면서, 언론은 빠르게 이념적으로 재편됐다. 이른바 ‘조중동’은 빠르게 상업주의적으로 보수화했고, 그 대척점에 한겨레, 그리고 1990년대 후반 이후의 경향신문이 자리했다. -물론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실존적으로 자본을 배제하고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객관성과 중립성이라는 절대가치는 사라지지 않고 있고, 언론은 공공연하게 이념을 지향하면서도 그 지향을 객관주의와 중립성으로 포장해, 이념 지향적인 관점이 마치 일반화한 관점인 것처럼 끊임없이 프레임화하고 있다.

 

물론 객관성과 중립성의 가치가 저널리즘에서 완전히 배제되어야 할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가치는 도구적 관점에 머물러야 한다. 하나의 사안을 취재할 때, 기자의 기초적인 태도는 그 사안에 대한 거리두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안과 관련한 모든 사실관계, 그리고 믿을만한 취재원이라 할지라도 그의 발언에 대해 한 번쯤 의심을 품어보는 행위를 기반으로 사안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사실관계를 캐고, 그 사실관계를 통해 진실에 가까워지려 노력해야 한다. 이때 객관성과 중립성의 가치가 도구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전제해야 할 건, 어떤 누구도 하나의 사안과 관련한 총체적 진실을 알 수 없다는 진실이다. 하물며 그 사안에 직접 관련된 인물도, 자신만의 시각과 처지에서 그 사안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저널리즘의 모든 보도는 결국 주관적 관점을 배제하고 말할 수 없다. 기자가 하나의 사안을 대할 때, 도구적으로 객관성과 중립성에 기반해 사안에 접근해 가지만, 결국 가닿는 것은 기자 개인의 주관적 관점이 포함된 총체성을 통해 보도로 텍스트화하는 것이다. 언론사는 그래도, 기자 개인의 기사를 데스킹이라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완결된 기사가 퍼블리시할 때까지의 과정 장치를 통해 다시 한 번 객관화의 작업을 거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 개인 혹은 언론사의 주관적 관점이 완전히 배제돼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와 유사하게, 대의 저널리즘은 끊임없이 돌출된 현상을 하나의 상징적 표상으로 개념화하려는 시도를 반복해 왔다. 이를 얘기하기에 앞서, 저널리즘 앞에 ‘대의’라는 관형어를 붙인 이유부터 설명하자면, 저널리즘의 개념이 다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로그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등장이 그 예다. 언론인 안영춘은 이에 대해 “주류 저널리즘은 대의 저널리즘이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정상 작동하는 데 필수적인 보편적 권리로 인정돼 왔는데, 그 권리의 수행 주체는 정작 소수 언론사와 언론인이었다. 그나마 대의제 정당 정치는 선출 과정을 거치지만, 저널리즘은 그조차 없이 대의자를 자처했다”고 말했다.[각주:1] 대의 저널리즘은 현상의 개념화를 기반으로 더 나아가 현상의 일반화를 시도하면서,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이념지향적 프레임 안에 모든 현상을 구겨 넣으려 한다. 나는 여기서, 적어도 현상의 개념화는 저널리즘 영역에서 도구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현상의 일반화는 철저하게 대의 저널리즘의 개별적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널리즘이 주관의 산물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앞의 논의로 돌아가 처음의 질문에 답변하자면, 기자가 객관성과 중립성을 절대가치로 내세우거나 나아가 그 가치의 절대성을 강변하는 이유에, 자신의 주관성을 객관화로 은폐하는 방법을 통해 일반적 합리성의 영역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좀 더 확장해 가려는 의도가 그 배경에 깔려 있지 않을까, 라는 의문을 나는 숨길 수 없다. 기자도 인간인 이상, 주관적이고 정치적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 '종편과 그 아버지들의 운명' http://jona01.tistory.com/26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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