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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트윗

@tokyopapillon : 현재 프랑스대학의 모습을 "대학개혁의 결과"만으로 보는 것은 오류에요. 대학 외부의 환경 즉 "사회개혁의 결과"로 보는 게 합당하죠. 또 현재의 주변환경을 그냥 놔두고 서울대철폐만으로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와 대학서열화로 인한 병폐는 치유될 수 없어요.


출처 : <한겨레>


 폭력과 제도가 결합하면 폭력은 정당성을 얻고 제도는 권력화한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제도가 승인하는 사적 폭력이다. 지난해 서울의 한 대학에선 본교와 지방 캠퍼스의 통합에 반대하는 본교 학생들이 캠퍼스 학생들을 ‘학력을 세탁하는 바퀴벌레’로 부르며 지탄했다. 학문을 위해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순서에 따라 대학에 배치되는 학생들이 자신의 서열을 정당한 노력과 투자의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도의 폭력은 그렇게 조금이라도 권력을 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를 배제하는 수단이 되고, 그 제도를 낳은 이들은 그들의 아귀다툼 뒤에 숨어 마음껏 제도의 실리를 착복한다. 그리고 권력을 덜 가진 자는 다시 자신보다 권력을 덜 가진 자를 배제하면서 폭력의 재현을 확장한다.

 학벌 문제는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과 착종돼 있다. 단순히 정책 하나가 등장한다고 해서 그 모순들이 순순히 풀린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기만이다. 하지만 대학 개혁안 논의의 중심에 선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는 한국 사회의 이런 복잡한 모순에 대한 고민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등장하자마자 트위터에서 ‘서울대 폐지’의 효용론으로 축소돼 뭇매를 맞았다. "안 그래도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서울대의 지위를 ‘하향 평준화’하려면, 세계 수준의 대학 육성 방안이 동시에 준비되어야 한다"는 ‘서울대 폐지’ 중심의 반론이 지배적이 됐다. 주변 환경을 그냥 놔두고 서울대 철폐만으로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와 대학서열화로 인한 병폐가 치유될 수 없다는 냉소도 나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고등교육비 투자에서 한국의 정부 투자 비율은 0.6%로 OECD 평균(1%)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0.6% 투자조차 2010년 기준 총액(2조392억원)의 29%가 서울대에 집중됐다.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경북대의 2.8배에 이른다. 중요한 것은 사립대인 연세대가 경북대보다 국고 지원금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국고 지원을 늘린다고 대학의 서열 지위가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얘기가 다르다. ‘반값등록금’ 예산 추정액(7조)의 20%인 1조5000억원만 투입해도, 국공립대 학생들이 사실상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다. 부모의 기득권을 상속받은 학생에게 국가의 공적자원을 권리로 획득한 학생이 맞설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는 셈이다.

 서열 상위 대학 진학의 주요 목적은 노동시장에서의 우월한 지위 확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 학벌 중심의 고용 행태를 반복할 경우 이런 독점적 지위는 흔들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학력학벌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지방 공무원이나 국립대병원 인력수요를 해당 지역 출신자로 선발할 수 있게 할당제를 도입하자는 방안도 제시됐다. 확장된 이런 방안도 역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2003년 처음 제안된 이후 8년 동안 변주된 만큼이나 확장되어온 개혁안의 깊이는 그러나, 트위터에서 편리하게 배제됐다. 정치적 민감성을 알면서도 개혁안을 툭 던진 뒤 이런 복잡한 함의를 설명하지 않은 민주통합당에 대한 즉자적 거부감도 한몫을 했고,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는 개혁안의 의미에 무작정 동의하기보다 일단 우회로를 선택해두자는 편의적 냉소도 보태어 졌다. 어떤 견해도 ‘지거국’이나 ‘지잡대’생으로 내려보는 멸시를 받아안고 살아야 하는 이들의 관점에서 정책의 효용성을 말하지 않았다. 한국의 교육, 그 제도의 폭력을 그대로 두잔 말인가.


*분량 때문에 <한겨레21> '크로스 - 이 주의 트윗'에 양을 줄여서 게재한 글의 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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