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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서기호 진보정의당 의원 트윗


언젠가부터 언론에 ‘통합’이란 단어가 부쩍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과 ‘대(大)’가 붙어 ‘국민 대통합’이란 수사가 주로 쓰인다. 이 단어의 쓰임에는 속내가 담겨 있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하나가 되어야 할 국민이 이념이나 세대, 계급의 차이로 나뉘어 갈등하는 것은 소모적이라는 관점이다. 비슷한 까닭으로 ‘소통’이란 언어가 한참 통용되더니, 선거를 앞두고는 보수든 진보든 한목소리로 통합을 말하며 갈등을 치유하고 하나 된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막말 파문’으로 인선되자마자 여론에 뭇매를 맞고 있는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에 대한 비판에서 가장 많이 보인 단어도 국민 대통합이었다. 민주 진보 진영의 다수는 “국민 대통합 시대를 열겠다”는 박근혜 당선인의 말과 ‘극우’ 윤창중의 임명은 모순이라는 논리를 확대 재생산하며 연일 비판의 날을 세웠다. 보수 언론도 이에 동참했다. 윤창중은 어느덧 국민 대통합을 위해 반드시 낙마시켜야 할 상징이 됐다.

나는 군사 정권이었던 노태우 정부부터 민주 진영의 김대중 정부, 도래할 보수 진영의 박근혜 정부 등 시대와 진영을 막론하고 늘 권력의 중심에 숟가락을 얹은 윤창중의 행보는 기회주의적 탐욕에 불과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를 비판하기 위해 통합의 이데올로기를 당위로 동원하는 시선들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통합의 이데올로기는 권력의 주체가 되어야 할 시민들을 객체화하는 도구다. 선거로 지배력을 획득한 이들이 시민에게 ‘닥치고 복종’을 강제할 때 유용한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이를테면, “다들 힘들어도 모두를 위해 잘 참고 사는 데 유독 너만 시끄럽다”는 말을 쓸 때나 절박한 처지를 호소하는 이를 ‘사회 불순세력’으로 낙인찍을 때, 통합의 이데올로기는 탁월한 배제의 도구가 된다.

윤창중은 존재 자체로 박근혜와 잘 겹치는 인물이다. 게다가 그가 사퇴한다고 달라질 것은 정치공학적 힘겨루기에서 박근혜의 기를 꺾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이 “윤창중 낙마”를 외칠 때, 새해 첫날 국회에서 저소득층 의료급여 지원 예산 2824억원과 학교 등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예산 823억원이 전액 삭감된 일, 지난달 19일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고 최강서 조합원의 아버지 최용덕씨가 8일 인수위 앞에서 “전쟁할 각오로 싸우겠다”고 나섰다는 일은 별다른 눈길을 받지 못했다.

갈등은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해소하는 것이다. 치유가 갈등의 당사자들에게 아무것도 쥐여주지 못한 채 정서적인 다독임만으로 상처를 땜질하고 마는 것이라면, 해소는 갈등이 야기된 원인을 찾아 고름의 뿌리를 뽑는 행위다. 실체도 없는 국민 통합을 위해 한 인물을 솎아내는 일보다 중요한 건, 눈길을 주지 않던 일들에 두 눈을 부릅뜨는 행위, 수동적으로 통합을 추수하기보다 좀 더 잦은 마찰을 감내하며 더불어 삶을 요구할 수 있는 주체성 같은 것 아닐까.


*한겨레21 이 주의 트윗 - 크로스에 실렸음.

*함께 쓴 원용진 선생의 글까지 보려면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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