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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 박승화 기자



1년 전 이맘 때 나는 경북 구미에 사흘 동안 머물며 20대와 30대 노동자 5명을 인터뷰했다. 5명은 모두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부분 생산직이었으며 중소 공장에서 일했다. 구미는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율이 80.3%나 됐지만, 당시 인터뷰이 5명 가운데 박 후보를 적극 지지하는 이는 1명뿐이었다. 그 1명마저 파업을 ‘노조 이기주의’로 보는 시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은 ‘일요일만큼은 쉬게 해달라’는 말을 사회에 던지고 싶지만, 주변에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토대가 없다. 진보정당은 그들과 접점이 없거나, 아예 없는 존재였다. 진보정당을 알고 있는 20대도 “그들은 노동권 문제를 개선할 힘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들은 정치에 무감한 듯했으나, 적어도 정치가 ‘나와 주변 중소 공장 노동자들 삶의 조건을 개선할 그 무엇’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18대 대선에서 완주한 진보 후보는 2명이다. 무소속 김소연 후보는 1만6687표를 얻어 득표율이 0.05%였고, 무소속 김순자 후보는 4만6017표를 얻어 0.15%를 기록했다. 유일하게 뚜렷한 진보정당 지향을 유지하고 있는 진보신당(녹색당은 이번 대선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은, 지난 19대 총선에서 얻은 정당 득표 24만2995표와 1.13%의 득표율에 비해 두 후보를 합쳐도 겨우 4분의 1밖에 얻지 못했다. 물론 비례대표를 위해 정당을 지지하는 총선과 승자 독식 구도인 대선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처럼 지리멸렬한 진보를 두고도 두 후보에게 기꺼이 표를 던진 이들이나, 오랜 고뇌 끝에 기호 2번에 투표했지만 진보정당의 가능성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충분한 해명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두 캠프가 왜 따로 후보를 냈는지를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요원한 일이다.

공감 얻지 못한 구호들

2012년 11월 27일, ‘노동자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김소연 후보가 공식 선거운동의 첫발을 뗀 장소는 삼성 본사였다. 이후 김소연 후보는 주로 노동자들의 장기투쟁 사업장이나 고공 농성 현장,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 등을 찾아 투쟁하는 이들과 연대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가 찾아와 그들의 굴곡진 현실에 함께 아파하고 ‘끝까지 싸우자’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는 행위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에서 희귀한, 그래서 가치 있는 발걸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김소연 후보 캠프는 “(새누리당에서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대가 아니라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호소했다. 선거 막바지에는 광화문에서 청와대로 행진하면서 ‘투쟁’으로 존재감을 알리려 했다. 경찰의 진압에 몸으로 부딪혔고, 후보가 경찰관에게 폭행당하기도 했다. 선거 마지막 날엔 다시 “재벌과 국가 권력에 맞서 투쟁하는 민중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삼성 본관과 경찰청, 청와대 앞에서 유세를 했다.

이런 김소연 후보의 투쟁 행보에서 나는 어떤 정치적 미래도 읽을 수 없었다. 구미에서 지금도 힘겨운 노동에 시달리고 있을 5명의 인터뷰이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당신들을 대변할 대통령 후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비정규직 노동자, 아르바이트 같은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청년층에게 “그를 지지하자”고 말할 수 없었다. 모순된 체제지만 적어도 그 체제 안에서 이뤄지는 선거에 출마했다면, ‘대통령이 되어 어떤 것을 과감히 혁파하겠다’ 혹은 ‘대통령이 되기엔 턱없이 모자라더라도 당신들이 힘겨울 때 당장 관공서에 대신 문제제기를 해주는 역할이라도 하겠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그러나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진보에 투표한다. 그러나 내가 발견한 모습은 냉정히 말해, 자족과 자기 위안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뿐이었다.

선거는 어떤 후보자를 통해 나의 지향을 남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는 하나의 이벤트다. 선거가 사람들의 모든 삶을 결정하는 절대적 절차라고 볼 수 없지만, 적어도 지향을 확장하는 데 좋은 도구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절박한 현실에 대한 호소만으로 지향을 공유하긴 어렵다. 이것은 민주 진영의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이 후보자의 ‘진정성’만은 믿어달라며, 그가 되면 어떻게든 ‘사람 사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럽 사민주의는 100년 걸렸다

김순자 후보는 적어도 이런 점에서 김소연 후보와 달랐다. 그는 울산과학대 청소 노동자로서,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 ‘당사자 후보’에만 머무르지 않고 ‘청년 알바들의 대통령’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주로 청년층이 몰리는 곳을 찾았고, 청와대 앞에서 청와대 대신 기자회견을 듣고 보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김순자 후보 역시 다양한 투쟁 현장을 찾았지만, 그에겐 연대하는 모습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미래를 그리는 언어가 함께했다. ‘노동자에게 유급안식년’, ‘최저임금 1만 원으로 인상’, ‘주 35시간으로 노동시간 단축’ 등과 같은 언어는 김소연 후보의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 불안·경쟁·차별·환경파괴·전쟁을 낳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우리의 정치’보다 더 구체적이고 소박했다. 과감하게 생각하건대, 나는 김순자 후보가 김소연 후보보다 더 많은 득표를 한 데는, 진보신당의 지난 총선 비례대표 1번으로 알려진 대중성에 더해 이런 구체적이고 소박한 언어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하지만 김순자 후보가 그리는 미래는 언어만 구체적이었다. 김순자 캠프(후보가 아니다)는 대통령 후보를 내지 못한 진보신당의 복잡다단한 내부 사정을 딛고 일어서지 못하고, 결국 정당 외부에서 출마를 선언했다. 정당을 구성하고 있는 당원들의 지지를 얻을 절차적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했다. (물론 김소연 후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앞에서도 말했듯, 대선이 지향의 확장을 모색하는 하나의 이벤트라면, 정당은 그 지향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하고 미래를 그리는 토대다. 정당 구성원들조차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는 후보가, 한 인물의 힘으로 어떤 정책을 실현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점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멍청하지 않다.

2012년 12월 12일 대장암으로 숨을 거둔 이재영 전 진보신당 정책위의장은 2011년 6월 어느 기고문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지하혁명노선과 자유주의 추종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한국 운동권이 보기에는 유럽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자들이 우매하겠지만, 유럽 사민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바라보자면 한국 운동권은 경박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이야기한다. ‘우리는 100년 걸렸습니다.’ 그 100년 동안의 분투와 성장과 변절과 퇴락을, 우리는 10년 만에 따라잡으려 하고 있다.”

과연 지금의 진보좌파 정치세력은 100년이 아니라 적어도 10년 뒤, 진보한 공동체를 상상하며 투표하고 연대할 사람들이 바라는 미래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가. ‘0.2%’의 결과 앞에서 일어나는 깊은 궁금함은 이런 것이다.

*<나·들> 2013년 1월호에서 김소연-김순자 후보에 대한 '3차원 인터뷰'의 한 꼭지로 실린 글이다. <나·들>에 실린 기사 중 칼럼식으로 쓴 글만 여기 옮겨놓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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