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유시민. @<한겨레>


신념이 자유의 언어라면, 책임은 공유의 언어다. 자유는 오롯이 나의 것이다. 나의 신념을 외부에 의해 간섭받지 않는다. 만약 외부의 간섭이 있다해도, 그 간섭은 나의 사유를 거쳐 나의 윤리로 정립되면서 나의 신념으로 다시 변증한다. 반면 책임은 나만의 것이 될 수 없다. 책임은 관계 속에서 이뤄진 행동이나 관계를 규정짓는 권력의 작동으로 인해 파생된 어떤 결과를 짊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책임은 나와 너의 관계 위에 걸친 채 공유된다.



유시민이 지난 19일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트위터(@u_simin)에 쓴 표현은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난다”였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독일의 사회학자 맑스 베버가 펴낸 책 이름이다. 베버는 책에서 정치인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의 조화를 거론하면서, 신념윤리보다는 책임윤리를 더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그러고는 “순수한 신념에서 나오는 행위의 결과가 나쁜 것이라면, 신념윤리가가 보기에 이것은 행위자의 책임이 아니라 세상의 책임이며, 타인들의 어리석음의 책임”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책임윤리가는 “인간의 선의와 완전성을 전제할 어떠한 권리도 자신에게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울 수 없다”고 믿는다.


유시민은 2006년 2월부터 1년 4개월 동안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보편적 복지의 확대보다는 “국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대내적으로는 대한민국이 경쟁력 있는 국민을 제대로 길러내는 사회투자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응당 누려야 할 권리로서의 복지가 아니라, 투자 가치가 있는 이들만 골라 시혜적 복지를 제공해 이들을 국가 경쟁력 강화의 도구로 삼자는 뜻이었다. 범새누리당 정부가 늘 ‘국민’이나 ‘서민’, 혹은 ‘국가’를 내세우면서도 실상 정책의 지향은 늘 상층 계급 쪽으로 방향키를 두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범민주당 정부를 뽑으면서 적어도 중간 계급 이하로 방향키를 두길 바랐다. 하지만 유시민이 참여한 정부와 집권 세력은 그 바람을 철저히 외면했다. 시민 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의료법 개정을 추진해, 의료 상업화와 영리화의 길을 터주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의료 민영화는, 참여정부의 정책 경로를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장관직을 내려놓은 직후 쓴 <대한민국 개조론>에서 진보 진영에 “당신들은 보건복지 지출을 확대하자고 만 하는데, 미디어와 정치권의 압도적 지원을 받는 보수파가 펼치는 ‘작은정부론’과 ‘세금폭탄론’의 장벽을 넘어설 방법이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마음먹어도 안 되는 일이 아주 많은 민주공화국”이기에 대통령이나 장관보다 국민이 스스로 개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화한 양극화의 결과로 복지가 시대의 화두가 되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시대착오적 정책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세상의 책임과 타인들의 어리석음의 책임”을 묻는다는 베버의 신념윤리 개념만 충실히 따랐다.


그러기에 유시민은 시민들과 책임이라는 언어를 공유해야하는 정치인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일 지도 모른다. 트위터로 정계 은퇴를 선언한 지 겨우 이틀 만에 그의 책이 발간됐다는 뉴스를 들으며 떠올린 생각은 그런 것들이었다.


*<한겨레21> 이 주의 트윗 - 크로스에 실렸음.

*함께 쓴 전규찬 선생의 글까지 보려면 여기를 클릭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