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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바라보는 시선

한국일보 투쟁 현장 방문기

B급 낭인 [이재훈] 2013. 6. 21. 22:49


한국일보 투쟁 현장에 다녀왔다.

 

서울 남대문로 한진빌딩 15층에 있는 한국일보 편집국은 6월 16일부터 '짝퉁 한국일보'를 만들고 있는 예닐곱명의 부장단과 사측이 동원한 용역들이 '셀프 감금'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한국일보 기자들은 조를 나눠 교대해가며 통로에서 이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순번이 아닌 기자들은 여전히 자신이 맡은 출입처나 취재 현장에서 브리핑 등에 참여하거나, 1층 로비 혹은 3층 노조 사무실에서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신문 제작 프로그램에 로그인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브리핑 참여는, 기자들이 여전히 노동을 하고 있다는 하나의 증빙이다.

 

사측의 입장에 따라 짝퉁 한국일보를 만들고 있는 부장들은 며칠째 집에도 가지 않고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며 연합뉴스 기사를 베끼고 있다고 한다. 용역들과 함께 매 끼니 120인분의 도시락을 주문해 먹고 있기도 했다. 사측의 요구에 따라 기사를 베끼는 부장들과 용역들이 먹고 버리며 생산해내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한진빌딩 15층 담당 청소 노동자가 끙끙대며 치우고 있다.


대화를 나눈 한국일보 기자들은 잔뜩 날이 서 있었다. 카톡으로 전해지는 상황에 일희일비하기도 했고, 다른 회사로 옮긴 전 동료의 비아냥에 동시다발적으로 울분으로 토하기도 했지만, 투쟁에서 이기면 어떤 한국일보를 만들어야할지 밝은 표정으로 고민하기도 했다. 그들은 "밖에서 보기엔 사태가 얼마나 오래 갈 것 같으냐", "지금 상황에 대한 외부의 시선은 어떠냐"와 같은 질문을 하며 궁금함과 불안함 사이에서 방황했다.

 

매일 짝퉁 한국일보가 발행되고 있는데다 광고국 사원들까지 투쟁에 동참하고 있어, 광고 수주 실적은 점점 떨어지고 독자들도 하나 둘 한국일보를 외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추가 투자금이나 투자 용의조차 없는 사측으로선 이 상황을 오래 끌고 가긴 힘들 것이다. 부도가 나게 되면, 그들은 경영권만 잃게 된다.

 

하지만 사측은 "가짜 한국일보에 글을 쓸 수 없다"며 사설쓰기를 거부한 논설위원실의 성명 발표에 맞서 19일 정병진 주필을 논설위원으로 강등하는 보복 인사를 단행하는 등의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유일하게 짝퉁 한국일보에 기고한 강병태 논설고문을 주필에 임명했다. 5월 1일 이영성 편집국장을 경질하는 등의 인사를 낸 이후, 사측은 계속 입맛에 맞는 행동을 하는 이들을 마름으로 앞세운 채 이들의 펜과 용역의 스크럼 뒤에 숨어 있다. 그리고 아마 다음 수순으로는 한국일보 기자들을 "좌파와 종북에 경도된 이들"이라는 식의 색깔론으로 몰아갈 것으로 보인다. 벌써 몇몇 주요 투쟁자들의 출신지를 들먹이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리고 있다.

 

다시 추리자면 한국일보 사태의 시작은, 장재구 회장이 개인적으로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중학동 한국일보 사옥 부지에 새로 들어선 트윈트리 건물 2000평의 우선매수청구권을 포기해 한국일보에 2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배임‧횡령 혐의다. 물론 그 외에도 장 회장은 단 한 번도 한국일보 경영에 플러스 요인을 만든 적이 없다. 되레 모든 사업 수익을 개인적으로 착복하고 있다는 의혹만 받아왔다. 기자들은 줄기차게 장 회장 퇴진을 요구했고, 장 회장은 개인 자산을 처분해 200억원을 돌려놓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매각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장 회장 쪽이 이상한 이유를 대며 매각협상을 반복적으로 지연시켰고, 이에 노조가 지난 4월 29일 장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리고 벌어진 사태가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중도라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중도는 어떤 지향성의 이름이 아니라 어떤 보신의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일보가 "우리는 중도를 표방하는 유일한 신문"이라고 지면을 통해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자유는 주어져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 자유가 취재 현장, 그리고 오늘 투쟁 현장에서 만난 한국일보 기자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라고 나는 믿는다. 그 어떤 매체 기자들보다 열심히 취재하고 글을 썼던 한국일보 기자들이 다시 치열하게 취재 현장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

 

p.s

현장에 방문했다가 궁금한 사람이 하나 떠올랐다. 내가 교육과학기술부에 출입할 때 '구악 기자'로 유명했던 김진각 여론독자부장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의 이름은 짝퉁 한국일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수소문해봤더니, 그는 편집국 '셀프 감금'에도 동참하지 않은 채 홀로 모처에 숨어 자신의 이름(기자 바이라인)도 넣지 않고 사람면 기사를 쓰고 있다고 한다. 대치하고 있는 사측과 투쟁 주체들의 눈치만 보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보니, 역시 가장 그다운 선택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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