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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본동 신동아아파트 정문 입구에 나부끼는 펼침막이 중앙난방을 개별난방으로 바꾸는 공사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지난해 새로 당선된 새 입주자대표는 부소장과 관리과장 등 새 직책을 만들고 청소·경비 용역을 수의 계약으로 선정하더니 난방공사를 무리하게 추진하기 시작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 서울에 사는 359만가구 중 44.2%인 154만6509가구(2012년 기준)가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는 도시의 지배적 거주 공간이 됐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아파트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아파트는 투자가 아닌 거주를 위한 곳이라는 원래의 목적을 되찾고 있습니다. 아파트 주민회를 둘러싼 정치가 더 중요해진 까닭입니다.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갈등의 현장에서, 그 정치학을 짚어봤습니다.


지난달 11일 저녁 서울 동작구 본동 신동아아파트 관리사무소. 김경희(58)씨는 입주자대표회의 동대표들에게 “당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동대표가 김씨를 밀쳐내고 “이 공사는 꼭 해야 합니다. 강행할 겁니다!”라고 외치고 나섰다. 한쪽으로 밀려난 김씨는 다시 “청소와 경비 용역업체 입찰 공고를 왜 내지 않았느냐. 왜 공사 계약금을 20%나 줬느냐”고 따져 물었다. 몇 마디 잘 들리지 않는 말을 더 하던 김씨가, 갑작스레 풀썩 쓰러졌다. 근처에 있던 다른 주민이 인공호흡을 하고 심폐소생술을 했다. 119 구급대도 달려왔다. 김씨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뇌출혈이었다고 했다. 이틀 뒤 김씨는 숨을 거두었다. 그가 말하던 ‘잘못’은 무엇이고, 동대표가 “꼭 강행해야 한다”고 외치던 ‘공사’는 무엇이며, ‘계약금 20%’는 무엇일까. 김씨는 무엇을 더 알리려다 그 말조차 맺지 못하고 숨을 거뒀을까. 이 아파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주민 10명 앉혀두고 연 형식적인 공청회

쓰러지기 몇 시간 전, 김씨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집을 나서려는 참이었다. 아내 이규자(54)씨는 그런 남편이 왠지 불안했다. “오늘은 나가지 않으면 안 돼요?”라고 물었다. 평소 같으면 아내의 그런 부탁에 “알겠다”며 별다른 저항 없이 주저앉는 김씨였다. 그날은 달랐다. “내가 할 말이 많아요. 반드시 나가야 해.” 짧은 두 문장이 단호했다.

부부는 이 아파트가 세워진 1993년 이전부터 이 동네에 터를 잡고 살았다. 재개발 조합원으로 아파트에 입주한 토박이다. 남편은 대학교 교직원이었다. 대학을 그만둔 뒤 한 아파트에서 관리소장으로 10년 정도 일한 경험이 있었다. 복잡다단한 아파트 운영을 구석구석 모르는 게 없었다. 그런데 최근 아파트 단지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동네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이아무개씨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맡은 뒤 관리사무소에 이제까지 없던 직책인 부소장직이 생기고 관리과장직이 생겼다. 관리비에서 인건비만 수백만원이 나갔다. 청소 노동자나 경비 노동자에 대한 용역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도 입찰 공고 없이 수의계약이 이뤄졌다. 김씨는 “이놈들이 해도 해도 너무 해 처먹는다”며 입주자대표회의를 여러 차례 찾아가 문제를 따졌지만 개선되지 않았다고 이규자씨는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는 중앙난방이던 아파트 난방 방식을 개별난방으로 전환하고, 노후한 급수배관을 교체하는 공사를 추진한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주민 10여명과 아파트 경비원들을 앉혀두고 형식적인 공청회를 여는가 싶었다. 지난 1월부터 동대표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동의 서명을 받았다. 개별난방 전환 공사는 입주민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구청에서 공사행위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동의 서명 결과는 발표 예정일이 지났음에도 발표되지 않았다. 3분의 2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입주자대표회의는 동의하지 않는 주민들을 몇 차례나 다시 찾아와 “개별난방으로 바꾸어야 집값이 오른대요”라고 설득했다. 마침내 3분의 2를 채웠는지 8월 개별난방 전환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공고문이 붙었다. 공개입찰을 통해 ㈜엘비케이라는 업체가 시공사로 선정됐고 9월 말부터 공사가 시작됐다.

조용하던 주민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속도전으로 치러지는 아파트 공사에 의구심을 품은 것이다. 뒤늦게 몇 가지 의혹도 제기됐다. 일부 주민이 중심이 되어 꾸린 비상대책위원회가 공개한 질의문과 비대위 쪽 설명을 종합하면, 9개 동 765가구인 신동아아파트 급수배관 공사 낙찰액은 세금을 빼고 8억3000여만원인데, 15개 동 1606가구로 가구수가 신동아아파트보다 2배 많은 광진구 구의동 현대2단지아파트는 세금을 포함해 8억5360만원에 낙찰받았다. 게다가 입주자대표회의는 엘비케이와의 공사 계약금을 공사 금액의 20%나 지급했다. 아파트 공사 입찰 사이트의 입찰 공고를 보면 통상 계약금은 10%다. 765가구가 함께 구입하는 보일러는 인터넷에서 검색 한번으로 살 수 있는 보일러보다 5만~20만원 이상 비쌌다. 중앙난방에서 개별난방으로 바꾸려면 바닥을 뜯어내야 하는 가구가 있는데 그 공사 비용 역시 각 가구가 따로 부담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 아파트 1동에 사는 정아무개(32)씨는 “공사를 하면 바닥을 뜯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공지받지 못해 뒤늦게 관리사무소에 문의했더니 ‘그런 건 미리미리 물어봤어야 하지 않느냐’고 되레 면박을 줬다”며 “집값이 오른다고 사람들을 선동해 졸속 공사를 추진한 것”이라고 말했다.

“충분히 설명했다”는 입주자대표회의

김씨가 쓰러진 11일은 관리사무소에서 비상대책위가 요구한 주민설명회가 뒤늦게 다시 열린 날이었다. “남편이 평소 고혈압과 당뇨가 조금 있었지만 평소 건강 상태는 정상인 사람이었어요. 사람이 죽었는데도 입주자대표회의 쪽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여전히 공사를 강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아내 이규자씨가 얕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도 공사는 이어졌다. 주민 민원이 빗발쳤다. 비상대책위 쪽에서도 공사에 반대하는 주민 3분의 2의 서명을 받아 동작구청에 제출했다. 결국 구청은 지난달 22일 ‘공사행위 중지 통보’를 입주자대표회의 쪽에 보냈다. “전체 입주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다시 얻어야” 공사 재개가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입주자대표회의는 8일 열린 주민설명회에서 배포한 자료를 통해 “세 차례 이상의 공청회와 모든 주민에게 배포한 자료, 전화 등으로 충분히 설명을 했고 계약금 역시 상호 간 조율하는 것이다. 공사가 중지되면 계약금 2억2000만원 이상의 손해배상금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어 “구청이 법적 규정도 없이 공사를 중지시켰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권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권한대행은 “주민 70%의 동의를 받아서 정상적으로 진행한 공사”라고 주장하며 일방적으로 마이크를 끄고 주민설명회를 끝냈다.

주민설명회에 참석한 주민 70여명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보일러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도 없이 개별난방 전환공사를 추진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동작구청 주택과 신의석 주무관은 “공사 중지 명령은 주택법에 근거한 것”이라며 “하지만 공사 시기와 내용, 방법은 아파트 자체 관리규약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구청이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결국 비상대책위는 주민 5분의 1 이상의 동의를 받아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한 감사를 서울시에 청구했다.

이런 분쟁은 사실 본동 신동아아파트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1991년 지어진 서초구 양재동 우성아파트에서도 역시 중앙난방을 개별난방으로 전환하는 공사를 두고 주민들이 절반으로 갈라져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겨우 공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 아파트에서도 현재 본동 신동아아파트 비상대책위원회가 제기하고 있는 의혹과 비슷한 의문들이 수없이 제기됐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중앙난방을 막무가내로 철거하고 개별난방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동의 서명을 거짓으로 받아 사문서를 위조했다는 주장 등이었다. 1990년 지어진 도봉구 방학동의 또다른 신동아아파트 역시 개별난방 전환 공사를 둘러싸고 2003년부터 6년 동안 주민들이 둘로 나뉘어 50여차례나 배임과 횡령, 모욕과 협박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전을 벌이기도 했다. 김씨와 비슷한 경우로, 2005년 한 70대 주민대표가 입주자대표회의에 참석했다가 심한 욕설을 들은 뒤 충격을 받고 쓰러져 심장마비로 숨지는 불상사가 있기도 했다. 1997년 지어진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주공1단지아파트 역시 최근 개별난방 전환 공사를 둘러싸고 주민들 사이에서 극심한 갈등이 일었다.

서울시 주택정책실 공동주택과가 9월11일 공개한 자료를 보면, 현재 서울 아파트 단지 258곳에서 ‘아파트 관리 실태 조사’가 요청된 상태다. 서울시 전체 아파트 단지 4093곳의 6.3%에서 아파트 관리 실태와 관련한 분쟁이 있다는 얘기다. 경찰청이 8월 공개한 아파트 관리 비리 단속 결과를 보면, 검거된 24명의 피의자 가운데 회계서류 조작 등을 통해 아파트 관리비를 횡령한 행위가 54%(11명)로 가장 많았고, 아파트 용역·공사업체 등으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가 17%(4명)를 차지했다. 피의자들은 아파트 입주자대표나 동대표, 관리소장과 관리소 직원 등이 대부분이었다. 서울시 공동주택과 김훤기 실태조사2팀장은 “양재 우성아파트의 경우 직접 실태 조사를 나갔는데 개별난방 공사 전환과 관련한 타당성은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가구별 동의가 절반에 그쳐 결국 공사가 좌절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일개 주민이 할 수 있는 일 거의 없더라”

 서울시 주택 통계에서 건축 연도별 주택 현황을 보면, 2010년 현재 서울시 아파트는 모두 144만1769가구다. 이 가운데 1994년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는 모두 54만3500가구로 전체의 37.7%에 이른다. 1995~2004년에 지어진 아파트 64만4162가구를 더하면 비율은 82.4%까지 올라간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개별난방보다는 중앙난방 시스템으로 난방 방식을 선택한 아파트 단지가 더 많았다. 최근 지어지는 아파트에 중앙난방을 선택하는 아파트는 거의 없다. 개별난방이 연료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고 관리비 부담도 적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창 아파트 경기가 좋았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지어진 지 오래된 중앙난방 아파트 단지의 개별난방 전환 공사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비용과 불편이 따라도 ‘개별난방으로 바꿔 아파트 값을 올리자’는 합의가 상대적으로 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아파트 경기는 바닥을 치고 있다. 전국 주택의 전세금 규모는 최대 500조원(한국은행 조사)으로 전체 가계부채 980조원의 절반을 넘어섰다. 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이 90%를 넘는 가구도 급속도로 늘고 있다. 아파트는 더이상 ‘자산 부풀리기’의 도구로 기능할 수 없게 됐다.

결국 ‘함께 아파트 값을 올리자’는 합의가 어려운 상황에서 입주자대표회의라는 주민 자치회가 별다른 민주적 절차 없이 개별난방 전환 공사와 같은 대규모 공사를 강행하더라도 아파트 주민들이 이를 저지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없다. 국토교통부가 고시하는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에서 개별난방 전환과 같은 공사는 사업자 선정 과정에 공개경쟁을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 수의계약을 해도 이와 관련한 비리가 포착되지 않는 이상 처벌 규정도 없다. 맞벌이가 대부분인 요즘의 아파트 가구에서 아파트 자치회 활동에 매진할 여건도 제대로 되지 않기에, 일부 입주자대표회의가 무리하게 공사를 벌이고 비리까지 저질러도 대부분 주민들 사이에 불화만 야기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구청이나 시·도에서 이를 감시하고 단속할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 역시 인력과 예산의 문제가 만만치 않다. 궁극적으로 이런 감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아파트 주민들이 보유세 등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오게 된다. 과연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까.

“제가 주택이 아니라 아파트에 사는 이유는 맞벌이하는 처지에 집 관리에 크게 신경을 쏟지 않아도 관리사무소가 있으니까 관리비를 부담하면서 여러 가지 행정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일부 주민들이 관리사무소를 장악하고 사적인 이익을 챙겨도 일개 주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더라고요. 구청이나 시에 호소하는 것도 한계가 많죠. 제도가 만들어져야 할 것 같아요.”

본동 신동아아파트 2동에 사는 한 주민의 말이다.


*<한겨레> 2013년 11월 9일치 16면 [르포]면에 실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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