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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늦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창근 실장이었다. 평소 답지않게 잔뜩 흥분된 목소리였다. “공장 안 굴뚝에 올라갈 예정”이라고 했다. “눈도 오고 날씨가 이렇게 추우니 딱 이날이다 싶다”고도 했다.

나는 얼어붙었다.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이 추운 날 어딜 올라간단 말이냐”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상투적라는 생각이 들었다. 굳은 결의같은 것으로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 잔뜩 부풀어오른 듯한 그의 목소리에서 숭고함이 느껴져서였을까. 섣부른 말로 하는 제지는 이미 통할 것 같지 않았다.

 

13일 새벽 2시52분. 전화가 걸려왔다. 공장 진입에 성공했고, 굴뚝에 절반 정도 올라왔다고 했다. 정상에 도착하면 다시 연락하겠다고도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공장에 들어온 경로는 말할 수 없고요.” 그는 여전히 긴장과 흥분으로 대화가 되지 않는 상태였다. 일방적인 말이 쏟아졌다. 나는 속으로만 ‘미끄러지지 말고 조심히 올라가시라’ 빌었다.

 

새벽 4시22분. 그가 70m 높이 굴뚝에 올랐다고 말했다.

“올라왔고요. 김정욱 사무국장은 올라오고 있고요. 지금은 얼굴 사진은 보내드리기 힘들고요.” ‘~요’라는 어미로 끝내는 특유의 그 말투가 새삼스러웠다.

그제야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그가 고공농성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대법원 판결 등으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더 이상 희망을 찾기 어려운 상태라서 공장 안으로 진입하는 결정을 내린거죠. 사쪽에 계속 교섭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심정으로... 해고자 복직 요구라고 해주세요.”

 

아침 7시49분. 문자메시지로 날아온 사진에는 휴대전화 카메라를 든 이창근 실장과 털모자를 뒤집어쓴 김정욱 사무국장의 얼굴이 실려 있었다. 이창근 실장이 “김정욱 국장이 꼭 전하고 싶어하는 말이 있다”고 했다. 전화를 건네받은 김정욱 국장이 말했다.

“6년 동안 참 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리해고의 문제, 회계조작의 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들을 밝혀낸다고 밝혀냈지만, 사법부는 결국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정부나 의회에도 기댈 곳이 없어요. 국정조사를 해준다는 약속을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결국 기댈 곳은 공장 안 동료들 밖에 없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투쟁을 하면서 공장 앞에서 만난 동료들이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고공농성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벌써부터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로 ‘힘내라’고 보내준 동료도 여럿 있었습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동료도 여럿 굴뚝 아래로 찾아와 손을 흔들어주고 있습니다. 결국 공장 안 동료들이 희망입니다. 마지막 남은 희망입니다.”

 

"결국 공장 안 동료들이 희망이다”라니..

사법부, 행정부, 의회에게 차갑게 외면당한 그들이 여전히 희망을 말하고 있다. 그 희망은 절망의 다른 이름 같기도 하지만, 절망으로 추락할 수 없다는 의지의 이름으로도 들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무 말도 대꾸하지 못했는데, 그는 나의 침묵이 ‘인터뷰를 그만하자’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그럼 끊겠습니다"라고 했다. 더 물어볼 게 많았는데, 나는 또 아무런 안부를 묻지 못하고 “알겠다”고만 답하고 말았다.

 

부디, 두 분 모두 강건하시라.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668927.html




p.s) 전에도 한 차례 이야기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미생의 '장그래'같은 고졸 비정규직 노동자, '카트'에 나오는 비정규직 마트 노동자,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아파트 경비 노동자와 같이 나보다 ‘어렵게 사는’ 이들은 관심과 응원과 위무의 대상이다. 이들에게 시혜와 동정의 눈길을 줘도, 중간계급 처지에선 당장 나의 이익과 상충하는 일이 없고, 하층계급 처지에선 중간계급에 진입하기 위한 경쟁에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되는 이유로, 정규직으로 돌아가려는 대공장 노동자들은 공격과 냉소의 대상이다.

기사에 달린 "안타까운 일이다만 대법의 판결까지 난 상황에서 뭘 어쩌자는 건지? 차라리 저 열정으로 다른 일들을 찾아본다면 쌍용 재입사하는것보다는 훨씬 더 나을수도 있을듯한데.."와 같은 댓글이 한국 사회의 어떤 전형적인 반응인 지도 모르겠다. 답답하다.

이 댓글을 보면서, 9년 전 썼던 글이 떠올랐다.

"절실함은 쉽게 전달되기 어렵다. 자신의 절실함을 절실함 그대로 강하게 표현하면 그 절실할 때까지의 경험을 함께 하지 못했던 이들은 마냥 의아할 뿐이다. 그 의아함이 집단적인 절심함과 부딪힐 때 우리는 그 절실한 무리들을 '광기'로 몰아부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 절실함에 상응하는 공포를 극복함으로써 타인의 공감을 얻어내려고도 하는 것같다. 21m 높이에 올라가는 과정의 공포와 11시간동안의 추위와 외로움을 견뎌냈던 그들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려했을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뛰어내리겠다고 그들을 절실하게 내몬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현실의 벽에 막혀 끝끝내 눈물을 훔치며 그 자리에서 내려와 경찰차로 끌려가는 그들의 쓸쓸한 옆얼굴을 바라보며 나도 한켠에서 벅차오르는 뜨거움을 함께 느꼈다. 절실함은 가끔 그런 식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2005년 3월 '절실함의 양면성' http://nomad-crime.tistory.com/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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