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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훈아(본명 최홍기·61)씨가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온갖 괴소문이 난무했죠.저도 기자라는 직종에 있다보니 여기저기서 ‘정보보고’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이야기들을 접했습니다.‘나훈아가 실은 이랬더다라.’,‘나훈아 얘기 들었어?진짜래.’라는 일반적인 수군거림도 포함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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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을 하는 나훈아씨가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네요.기자회견 내내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로 설득하는 모습은,그가 40년동안 대중을 어떻게 공공연히 흡입해왔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현장에 함께 나온 제 사진기자 동기의 작품입니다.

  25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 그랜드볼룸을 찾았습니다.오전 11시에 나훈아씨의 '괴소문' 관련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는데,500석이 마련된 자리에는 오전 8시30분부터 취재진이 자리잡기 시작해 400여명이나 왔더군요.일본에서 온 취재진도 있었습니다.

  일반인들도 있더군요.나훈아씨의 팬클럽이라는 ‘나사모’의 경기북부지부장 황인춘(38)씨도 자리에 앉아 초조하게 나씨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저도 궁금하고 관심이 있어서 왔습니다.나훈아님이 인기가 있다보니까 인기에 대한 반발하는 의미에서 그런 괴소문이 도는 것 아닐까요.정정당당하게 오해를 풀어줬으면 좋겠네요.”

  또다른 팬클럽 ‘나훈아 세상’ 운영자 황정근(54·여)씨도 만났습니다.“이런 자리가 없었으면 악성 루머가 끝도 없었겠죠.만약 나훈아님이 언론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힌다면,그리고 나훈아님이 원한다면 법적 대응도 할겁니다.너무 억울하니까요.”

  개인적으로 반가운 얼굴도 보이더군요.서대문서 강력6팀 팀장 이모 경위로 제가 취재차 몇번 만나 친분이 있는 경찰입니다.“강력팀 형사가 여긴 왠일이냐.”고 의아하게 물었더니 “당직인데,동원됐지 뭐.”라며 기자회견 내내 보고용 캠코더를 찍어대더군요.정보과 여형사도 왔고,중국에서의 주민증 위조 수사로 이름을 떨치던 외사계 김모 팀장도 왔더군요.경찰만 30여명 왔답니다.나원참.호텔 담당자는 “남북 장관급회담같은 주요 행사도 아니고 연예인 기자회견에 이렇게 많은 취재진과 일반인들이 모인 건 사상 처음”이라고 혀를 내두르더군요.이상 열풍이라고 생각지 않으세요?

  기자회견이 시작됐고,보도됐던 것처럼 나훈아씨가 혁대를 풀고 바지를 내리려는 시늉까지 하며 1시간 가량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나씨의 평소 공연처럼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각본처럼 짜여졌구나란 느낌을 개인적으로 받았습니다만,일면 그 심정이 이해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날 회견이 끝난 뒤 나씨가 “남의 아내를 탐하지 않았다.”며 항간의 괴담에 대해 강하게 부인한 내용에 얽혀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 개그맨의 이름이 인터넷 포털 네이버 검색순위에서 한때 4위에 올랐습니다.거론됐던 두 여자 탤런트의 이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고고한 척 하려는 것 아닙니다.하지만 전 기자회견 취재를 하고 인터넷 검색어가 ‘나훈아’ 등으로 도배될 때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먼저 많은 언론들의 호들갑입니다.이번 사태는 사실 '실체적 진실'이 없습니다.아직 어떤 언론도 제대로된 사실관계나 고백 등의 당사자 인터뷰를 통해서 ‘괴소문’의 실체에 접근한 기사를 쓴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한 스포츠지 연예기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소문은 마치 사실인양 떠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지난주 초 급기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까지 보도에 동참했습니다.하지만 ‘1등신문’이라는 조선일보도,“우리나라 최고의 고급지를 지향한다.”는 중앙일보도,실체적 진실에는 한 걸음도 다가간 보도를 하진 못했습니다.조선일보에 다니고 있는 제 친구 녀석은 말하더군요."대중이 원하는 사안을 보도하는 게 언론의 사명 아냐?나는 별 문제없는 것 같은데?언론이라고 고고한 척 하면서 대중이 원하는 걸 보도하지 못하는 것보단 훨씬 나아.나는 신정아건도 결국 그런 면에서 동일 선상에 있다고 보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네티즌들의 이상 과열 열풍에 부화뇌동하는 ‘미디어 상업주의’에 불과하다고 감히 생각합니다.한국종합예술대학교 이동연 교수는 말합니다.“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비해 과도하게 연예인들의 이야기에 집착하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하지만 그 측면을 이용하는 언론이 더 문제입니다.특히 신생 인터넷 매체나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는 일부 스포츠지와 일간지까지,그들은 미디어 생존과 연관지어 과열 취재경쟁이 붙었고 아주 조그만 단서만 발견되면 그걸 마치 사실인양 확대보도하고,네이버나 다음 등의 포털 사이트들은 또 그걸 여과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언론이 반성해야하죠.”

  우리 사회의 ‘집단적 관음증’도 짚고 넘어가야할 것 같습니다.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이번 사안을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뒷담화 문화’가 가미된 ‘대한민국식 집단적 관음증’이라고 진단했습니다.“우리 사회가 이제까지 여러 부분에서 투명하지 못했죠.언로가 열려있지 않은 상태에서 정계나 재계,연예계 등의 가공된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유통되곤 하면서 많은 이들이 남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 풍토가 조성됐습니다.그것이 만만한 연예인들에 대한 정보에서 우월하고싶다는 집착과 더불어 성적인 얘기까지 은밀하게 나누며 즐기고 인터넷을 통해 대량 소비하는 집단적 관음증으로 발전했죠.최근에는 말이 없고 점잖은 사람들보다 말많고 우스운 얘기를 잘하고 남을 위해 엔터테인먼트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각광받고 있다는 풍조도 일조를 했습니다.”

  사회적 병리 현상은 쉽게 드러나지만 사실 매스를 가져대기가 쉽지 않습니다.사실 고백컨데,제가 이런 의견을 담아 저희 신문에 쓴 기사도 지방으로 가는 초판에는 들어갔다가 다음판부터 빠졌습니다.편집국 내 높은 분들이 “다른 신문은 1면에 사진도 가고,나훈아와 관련된 괴소문에 대해 넓은 지면을 할애해서 썼는데,우리는 '집단적 관음증'이라고 비판만 하고 있어선 안된다.”는 의견을 내어놓으셨다고 하는군요.

  제가 기자로서 '자격 미달'이라도 상관없습니다.그저 생각합니다.“나훈아가 정말 괴소문대로 여배우와 성관계를 가졌다가 그 여배우의 배후에 있는 야쿠자에게 폭행을 당해 신체 주요 부위를 손상당하는 부상을 입었다.”는 게 사실이라면 어쩌겠습니까.그걸 알면 뭐가 그리 큰 도움이 되나요.나훈아 개인이 괜찮다는데,우리 언론이 그것에 대해 국민 앞에 당당하게 밝히라고 강요할 수 있는 권리는 대체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개그맨 부인을 범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사실 법적으로는 ‘간통죄’에 해당하니 문제삼을 수는 있겠죠.하지만 과연 이렇게까지 떠들썩하게 몇명의 연예인에게 큰 상처를 입히면서까지,선정적으로 보도해야하는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습니다.추운 날씨만큼이나 답답한,한숨이 나오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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