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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의 트위터 프로필 사진

김군이 학교 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은 IS를 선택하게 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다”는 말에서 볼 수 있듯, 여성 혐오 역시 하나의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넉넉지 않아 보이는 가정환경도 한 원인이 됐을 것이고, 원활치 않았던 부모와의 관계도 원인이 됐을 것이다. 그 밖에도 아직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사연이 18년의 삶 안에 녹아있다.

"내 나라와 가족들을 떠나고 싶다. 단지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은 한국 땅에서 김군의 삶이 그만큼 원활하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PC를 리부트하듯, 새로운 사회적 공간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가능성을 열어준 공간이 하필히면 타인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는 테러 집단이었다는 점이 문제겠지만, IS만큼 그들을 두팔 활짝 벌려 맞아주는 곳도 없다는 점이 지금 세계와 체제의 아이러니다.

인간의 어떤 선택에는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어떤 이는 그것이 구조만의 문제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그것이 개별적 선택일 뿐 같은 구조의 모든 이가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구조를 벗어난 개별자의 선택은 있을 수 없다는 반박도 있다. 그것은 딱 잘라 한쪽이 옳다 그르다 다툴 일이 아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가 알 수 있는 타인의 흔적은 늘 편린이다. 하나의 팩터로 어떤 선택의 원인을 절대화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지금 대부분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팩트를 앞세워 ‘~때문에 김군이 IS에 가입했다’고 절대화하고 있다. 이런 식의 섣부른 규정은 가장 손쉬운 배제의 방법이다. 김군이 재빨리 어떤 사람인지, 즉 ‘일베인지 아닌지’, ‘여성 혐오자인지 아닌지’, ‘왕따인지 아닌지’ 규정해야 그와 나의 다름을 확인할 수 있고, 그래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 있음에 재빨리 안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타자화라고 부른다.

지금은 섣불리 김군을 판단하거나 비난하기보다 우선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자세하게 살펴볼 때다. 내 경험상 김군의 삶은 생각보다 언론에 적게 보도되고 있다. 그것은 아마 김군이 중학교를 중퇴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서,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통로가 제한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김군의 삶을 관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타인의 삶을, 그것도 공적인 기관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던 이의 삶을 추적하는 것은 매우 지난한 일이다.

그래서 김군의 삶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일은 매우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이 김군과 같은 케이스가 반복되지 않게 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김군에 대한 혐오는 제2의 김군을 낳을 수밖에 없다.

도미야마 이치로 일본 도시샤대학 교수는 22일 열린 한 심포지엄 발제문에서 "글로벌한 이론이라는 보편적 위치에서 개별적인 사물과 현상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경험을 움직일 수 없는 근거로 삼는 앎이 아니라, 개개의 구체적인 현상을 묻고 바꿀 수 있는 복수의 상황으로서 함께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썼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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