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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일베 수습기자의 정식 임용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파벨라에 박권일, 김민하가 관련 글을 썼다.

 

박권일은 ‘’일베기자‘ 관련 메모: 일베스럽지 않게 일베와 싸워야할 의무’에서 “우리는 ‘일베’라는 정체성이 아니라, 일베에서 쓴 글의 내용, 즉 ‘구체적 행위를 문제삼아야 한다”며 “여론을 업고 일베 기자를 싹둑 잘라내면 속은 시원할 테지만 그 잠깐의 속시원함 외에 남는 게 별로 없다. 이 사건을 지속적으로 고민하면서, 사회적 차별발언의 범위를 논의해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민하는 ’KBS 일베 기자에 대한 생각‘에서 “KBS 내의 모든 구성원들에 대한 전면적이고 직접적인 차별금지교육을 상시적으로 시행하고, 차별금지교육의 성과를 인사평가에 반영해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조금이라도 해치면 최악의 징계를 당하도록 조치”하는 것으로 “여성주의의 적들과 끝없이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사실 관계를 정리해보자.

 

1. ‘일베 기자’로 불리고 있는 A기자는 여성 혐오를 담은 글을 썼다. 그 내용은 ’생리휴가를 가고 싶은 여자는 직장 여자 상사에게 사용 당일 착용한 생리대를 제출하거나 사진 자료를 남겨서 감사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 ‘핫팬츠나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닌 여자들은 공연음란죄로 처벌해야 한다’, ‘밖에서 몸을 까고 다니는 여자들은 호텔 가서 한 번 대줄 수 있는 것 아니냐’ 등이다. 전라도 지역에 대한 혐오를 담은 인종차별성 글도 썼다. 그는 혐오의 폭력을 저질렀다. 글로 여성이나 인종을 차별하는 발언을 쓰는 행위는 소수자를 향한 분명한 폭력이다.

 

2. 혐오 폭력이 행해진 장소와 시간을 살펴보자. A기자가 이 글을 쓴 곳은 일베 게시판이다. 이 글을 쓴 시점은 그가 KBS 기자 공채에 합격해 수습기자로 입사한 지난 1월보다 이전이다. KBS 기자들이 쓰는 ‘블라인드’라는 앱의 익명게시판에는 수습기자들이 글을 쓸 수 없다. 즉, A기자는 기자가 되기 전 시점에 일베라는 커뮤니티 게시판에 혐오 폭력이 담긴 글을 썼다. A기자가 기자가 된 뒤 ’블라인드 앱‘이라는 곳에 글을 썼다는 세간의 의혹은 현재까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상태다.

 

3. 그렇다면 KBS 구성원들은 어떻게 A기자가 ’일베‘라는 걸 알아냈을까. 우선 A기자가 KBS에 합격한 뒤 언론고시생들의 정보 교환 커뮤니티인 ‘아랑 카페’에 합격자 명단이 올라왔고, 이후 관련 사실이 흘러나왔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KBS 내부에서도 일베가 아니냐는 의심을 산 계기가 있었다. KBS에는 세 개의 노조가 있다. 이 가운데 주로 노동자의 사내 복지 문제에 집중하는 KBS1노조가 있고, 공정방송 문제에 집중하는 KBS새노조가 있다. KBS 기자와 PD들은 대체로 KBS새노조에 가입하고 있다. KBS새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동조합 소속이다. 하지만 A기자는 다른 기자들과 달리 공채에서 합격해 입사한 직후 KBS1노조에 가입했다. 이후 A기자가 민주노총에 대한 정치적 거부감 때문에 1노조를 선택했다는 의심을 샀고, 이에 따라 일베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4. A기자가 일베에 여성혐오와 전라도혐오 글을 썼다는 사실은 KBS 내부 감사 결과 확인이 된 사실이다. A기자 역시 해당 글을 작성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감사 도중 반성문도 제출했다고 하지만, 제출 사실과 반성문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5. A기자가 일베에 여성혐오와 전라도혐오 글을 썼다는 사실은 그가 KBS에 입사한 직후부터 논란이 됐다. 그래서 A기자는 수습기자들이 일반적으로 받는 현장 취재 교육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데스크에서 제보 전화 등을 받는 일을 하면서 내근 교육을 받았다. 수습기자가 현장에 있지 않고 내근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은 일종의 ’업무 배제‘ 징계다. 이런 사실상의 징계로 A기자가 ‘일베’라는 사실은 회사의 대부분 구성원에게 알려졌다. 그는 곱지 않은 시선과 사실상의 업무 배제의 ‘징계’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6. KBS는 이 밖에도 A기자를 해임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찾기 위해 법무법인에 의뢰해 법률 검토를 했다. 하지만 근거를 찾지 못했다. 수습기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입사 직후부터 이미 정규직 노동자다. 비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해고 사유도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KBS는 결국 A기자를 수습기자에서 정사원(일반직 4직급)으로 임용하고, 그를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에 발령냈다. KBS의 남북교류협력단은 북한과 방송을 교류하는 부서다. 이곳에는 PD도 일하고 있고, 기자도 일하고 있다. 하지만 수습을 막 마친 기자가 가기에 적당한 부서는 아니다. A기자는 적어도 당분간은 취재와 보도를 하지 못하게 됐다. 즉, A기자는 입사 전 일베에 혐오 글을 썼다는 이유로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하는 사실상의 징계를 받았다.

 

여기까지가 3일 현재까지의 사실관계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제시된 견해들에 대해 따져보자.

 

1. 'KBS는 A기자를 입사 전형과정에서 걸러내야 했다.'

 

생각해보자. KBS는 어떤 방식으로 A기자의 혐오 성향을 걸러낼 수 있을까. 우리는 혐오 성향과 혐오 행위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일베에 가입한 A기자의 정체성과 구체적인 혐오 행위를 구분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우선 A기자가 일베라는 커뮤니티에 가입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그에게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기는 힘들다. 이메일 주소만 있으면 가입할 수 있는 일베 커뮤니티에는 일베의 성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다수 가입되어 있다. 가입 사실이 일베의 성향에 동의한다는 사실의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베가 됐든 오유가 됐든 그가 어떤 글을 썼는지,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통해서 특정한 대상에게 혐오 폭력을 자행했는지 살펴야 한다. 혐오 성향 역시 마찬가지다. 혐오 성향이 어떤 행위로 표현되지 않는 한 역시 처벌이나 징계를 내릴 방법이 없다.

 

처벌이나 징계만큼 그 성향을 입사 선발 과정에서 걸러내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것을 무슨 수로 확인할 수 있을까. 입사 지원자들의 SNS와 커뮤니티 아이디를 제출받아 그들이 어떤 말들을 했는지 모두 색출해야 하는 걸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입사 전형 과정에서 “여성 혐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거나 “지역 차별과 혐오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정도의 질문으로 의견을 확인해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이 질문에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힐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그러니 시스템 장치를 동원해 개인의 머릿속을 뒤져서 처벌이나 징계 혹은 입사 과정에서 걸러내는 행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처벌이나 징계는 늘 사후적이 될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행위로 드러나지 않은 이상 시스템은 개인을 걸러낼 수 없다. 그러니 KBS가 A기자를 걸러내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고, “맹점이 있었다”고 비판하기도 어렵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 일베를 낙인찍어 비판해서 그들을 교화해야 한다.

 

과연 그럴까. 앞에서도 확인했던 것처럼, 우리가 A기자나 다른 일베 이용자들에 대해 그들이 단지 ‘일베 회원’이라는 사실만으로 낙인찍고 비판하기는 어렵다. ‘일베 회원’이라는 정체성이 아니라, 그들의 구체적인 행위에 대해 맹렬한 사회적 비판을 가해야 하는 이유다. 그들이 여성 혐오에 대한 글을 쓰면, 그 여성 혐오가 여성이란 소수자에 대해 어떤 폭력을 낳을 수 있는지 낱낱이 지적해야 한다. 전라도 혐오 발언을 하면, 역사 속의 어떤 맥락을 통해 전라도가 한국 사회에서 소수성을 가지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의 특정한 정체성을 두고 어떤 불이익을 주는 제도적 장치에는 신중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정체성은 특정한 행위로 발현되지 않는 한, 그 어떤 방법으로도 사실화할 수 없다. 사실로 확인할 수 없는 감정이나 성향을 사실화해서 처벌하거나 징계하는 것은 시스템을 배제하는 파시즘적 폭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1. 여성 혐오나 지역 혐오 발언이 확산하고 있는 문제점을 풀기 위해선 당장 한 명의 A기자에게 공력을 집중하기보다 혐오 폭력에 대한 제도적 개념부터 정립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대체로 인종과 문화, 관습과 사상, 국적과 성별, 성직 지향 및 성 정체성, 신체적 정신적 장애 여부 등을 두고 피해를 가하는 행위를 혐오 혹은 증오 범죄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차별금지법이 논의되면서 개념이 조금 더 명확해진 상태다. 물론 차별금지법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법이다.

 

2.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법적 시스템으로 처벌할 수 있는 혐오 범죄가 있다. ‘공공연하게 피해자를 특정해서 혐오 폭력을 가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이다. 형법상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이에 해당한다. 온라인에서 특정한 개인에게 혐오 발언을 한 언어폭력은 정보통신망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

 

3. 하지만 현행법 시스템으로는 특정 개인을 향한 혐오 범죄만 처벌이 가능할 뿐, 특정 집단이나 대상(여성이나 지역)을 향한 혐오는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우리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제도적 대응책은 이 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이 대응책은 매우 치열한 논쟁을 필요로 한다. 현행법에서보다 훨씬 더 처벌 대상이 커지기 때문이다.

 

4. 제도적 대응책과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은 혐오 행위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다.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적 형식을 통해 비판을 할 수 있을지, 그래서 이 혐오 행위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소수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역시 고민을 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혐오 행위와 마주했을 때 이에 대해 맹렬히 분노하고, 이 행위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 반복적으로 발언하는 행위는 어찌 보면 제도적 처벌 이상으로 중요한 사회적 대응이다. 우리는 폭력을 소수의 것으로 게토화하는 발언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결국 혐오에 엄격한 사회는 특정 개인에 대한 배제보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행하는 혐오 행위를 걸러낼 수 있는 제도적 혹은 사회적 시스템을 어떻게 합의해가느냐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축할 수 있는 어떤 성찰적 결과물 아닐까. "그 수습기자를 잘라라"와 같은 감정적 선언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팀블로그 파벨라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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