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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1심에서 벌금 500만원형을 선고받았다. 2014년 교육감 선거 당시 상대였던 고승덕 후보에 대한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다. 이 형이 확정되면 그는 교육감 직을 잃게 된다. 그는 지난해 5월25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 후보가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제보가 있다”고 밝혔다.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의 트위터 한 마디가 근거의 전부였다. 선거를 열흘 앞둔 당시 조 후보는 고 후보에게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뒤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상황 반전을 노린 무리수였다. (▶참고 : 조희연 교육감 벌금형…2014년 5월에 무슨 일이?)

 

판결 이후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여러가지 반응을 내놨다. “있을법한 의혹에 대한 해명 요구가 죄가 될 순 없다”거나 “한국 민주주의가 사법 권력에 얼마나 유린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명확히 보여준다”(▶프레시안:노무현 죽이고 조희연 물어뜯은 검찰의 횡포)는 말이 대표적이다. 일부에선 “선거는 이런저런 뒷거래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 후보자는 좋은 일만 하고 캠프 관계자들이 더러운 일을 처리해야 했다”(▶조희연 재판에서 왜 배심원은 만장일치로 유죄를 평결했을까?) 는 말도 나왔다.

 

조희연 캠프의 기자회견은 ‘있을법한 의혹에 대한 해명 요구’ 수준이 아니었다. "제보가 있다"는 유보적 표현을 쓰긴 했지만, 기자회견문은 '의혹'을 '사실'로 전제한 채 공표됐다. 그러면서도 사실화 작업이 미흡했다. 가설이 사실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작업은 일관되고 합리적인 근거를 복수의 대상으로부터 교차 확인하는 일이다. 조희연 캠프는 최경영 기자의 트위터 외엔 다른 어떤 루트로도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니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제보”는 사실이 아니라 가설에 머물러야 했다. 기자회견이라는 형식으로 공표하기에 부족한 상태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조 후보는 기자회견과 이후 대응에서 이를 사실처럼 다뤘다.

 

그런 뒤에 재판에선 “사실의 공표가 아니라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주장을 일축했다. 재판부는 “사실의 적시란…(중략)…시간과 공간적으로 구체적인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 내지 진술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표현 내용이 증거에 의한 입증이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조희연 후보)이 적시한 사실은 진실에 부합하지 않은 사항으로서 선거인으로 하여금 후보자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그르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가진 것으로 허위사실에 해당한다”며 “게다가 구체적 사실이 진실한지를 확인하는 일이 시간적, 물리적으로 사회통념상 가능하였다고 인정됨에도 그러한 확인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 후보의 기자회견 내용이 ‘의견 표명’이 아니라 구체적인 증거에 의해 입증이 가능한 ‘사실 관계’이며, 이 사실이 구체적으로 허위인 것으로 밝혀진 데다, 이것이 사실인지 허위인지 확인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사실과 의견은 명확하게 구분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없다. 흔히 사실은 객관적 근거에 의해, 의견은 주관적 가치 판단에 의해 설정된다고 인식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가설이 사실이 되기 위해선 일관되고 합리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이 근거가 일관되고 합리적이라는 평가에도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사실은 가치를 전제한다. 즉, 사실과 의견은 모두 가치를 전제하고 있다.

 

이에 더해 사실은 객관적일 수 없다. 어떤 규모의 사실을 선택해서 설명하느냐에 따라 사실은 달리 보일 수 있다. 100의 사실을 모두 보여줄 때와 10의 사실을 보여줄 때, 사실의 실체에 대한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사실을 설명하는 데 선택이라는 주관이 개입한다는 점에서 사실은 의견과 다르지 않다. 종합하자면, 조 교육감은 사실로 채 무르익지도 않은 가설을 사실처럼 다룬 것에 더해, 종국에는 주관적 의견 표명이라고 주장하면서 의견을 사실처럼 다룬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아울러 고 후보가 자신의 여권에 찍힌 미국 비자를 공개하면서 “영주권 보유”가 허위로 확인된 뒤에도 조 후보는 자신의 말을 정정하지 않았다. 그 말이 ‘있을법한 의혹에 대한 해명 요구’ 수준이었다면, 의혹이 허위로 밝혀진 뒤 자신이 던져놓은 말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과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 사안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사법권력의 유린”으로 볼 수도 없다. 이번 재판은 사법권력을 견제하겠다고 만든 국민참여재판이었고,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내렸다. 심지어 국민참여재판을 자청한 사람은 조 교육감이었다. 원치않는 결과가 나오니 시민 배심원들을 두고 “법률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라고 비판(▶인터뷰 전문)하기까지 한 조 교육감의 대처를 이해할 수 없는 까닭이다.

 

선거라는 판에서 어떤 변수가 생길 지 모르는 점, 때로는 피할 수 없는 뒷거래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은 맞다. 하지만 후보자를 보호하기 위해 캠프 관계자가 “더러운 일을 처리해야 했다”는 식의 반응을 보면, 최근 한국 사회의 일부 진보가 얼마나 대중에 대해 냉소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선거 캠프 관계자가 저지른 ‘더러운 일’의 최종 책임이 결국 후보자에게 있음을 대중은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런 식으로 얻은 선거에서의 승리는 유권자에 대한 기만에 불과하다. 그런 기만은 당장의 선거에서 달콤한 승리를 가져다줄지 몰라도, 당선 이후 교육감의 행보와 차기 진보 교육감 후보들에 대한 인식에 큰 부담을 준다. 게다가 첫 기자회견에서부터 정정과 사과조차 하지 않은 추가 대응, 당선 이후 재판 과정까지 모든 판단 과정에서 조 교육감은 캠프 보좌진의 보고를 받고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니 최종 책임은 당연히 조 교육감의 몫이다. 캠프 관계자 책임론이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번 재판에서 조 교육감 쪽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비판은 조 교육감의 말이 선거 결과를 뒤집는 결정적인 장치가 되진 못했다는 점에 견줘 법적 처벌이 과하다는 문제제기 정도다. 이를 위해 2012년 대폭 강화된 선거 사범에 대한 양형 기준의 과도함을 지적하는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 강화된 선거 사범에 대한 양형 기준은 상대방의 낙선을 목적으로 한 허위사실 유포죄에 최소 벌금 300만 원 이상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양형 기준에 의하면, 선거에 의해 당선된 이는 유죄일 경우 무조건 직을 상실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다. 그러나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은 조 교육감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오늘날의 진보는 늘 이런 식이다. 조급증에 빠져 눈 앞의 이익에만 골몰한다. 이런 반응들도 일종의 냉소주의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사악한 현실을 타파할 참된 의식인지 알고 있음에도, 그런 참된 의식을 추구하기보다 눈 앞의 권력 관계에만 집중한다. 그러다 잘못을 저지르면 거악과 싸우기 위한 과정에서 나오는 필요악으로 치부하며 성찰을 외면한다. 무엇보다 위험한 건 대중을 불신하고 자신들만의 정의감에 도취해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중 주체의 각성은 일부의 정의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 진정 어려운 일은 진리를 바라보고 참된 의식을 추구하며 용기있게 버티는 일 아닐까. 냉소주의와 조급증은 정확히 그 대척점에 서 있다.

 

*방송대학보 기고를 보충해서 파벨라에 게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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