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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7

아이는 말을 잃었다. 바싹 마른 입술은 이따금 불안하게 달싹이며 뭔가 말을 만들어내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이 소리로 맺히는 일은 없었다. 무슨 일을 당했는지,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혹시 설명해도, 그게 사실이라고 증명할 방도가 없다.

눈동자는 깊이를 잃은 채 마치 흐린 유리창 같다. 들여다봐도 안쪽이 잘 보이지 않는, 눈동자는 어디에도 초점이 맺혀 있지 않다. 바라보는 것은 가상의 한 점에 지나지 않았다. 질문에 반응하는 아이의 고갯짓은 행동반경이 고작 1㎝도 되지 않았다. 깜빡 놓쳐버릴만큼 작은 움직임이었다. 아이는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남은 빈 허물처럼 보인다.

성인에게 수없이 반복적으로 강간당했다. 자궁 내부에도 상처가 있고, 난자의 착상부가 심하게 파열됐다. 성장해도 임신은 불가능하다. 임신이 가능하다 해도, 아이는 아마 엄마가 되는 일을 원치 않을 것이다. 어느 누구와도 성행위를 원하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에서 묘사된, 열 살 소녀 쓰바사 얘기다. 무라카미는 '노부인'의 입을 빌려 쓰바사의 몸에 각인된 비가시적 폭력과 공포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폭력은 늘 눈에 보이는 형태를 취한다고 할 수 없고, 반드시 피를 흘리는 것만이 상처라고 할 수 없어요."

그럴 것이다. 폭력에 의한 가시적 통증과 상처보다 더 아픈 건 아이의 몸에서 즉자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관계에 대한 공포다. 관계 맺음의 방식을 아직 체화하지 못한 아이에게 가해진 타자의 무차별 폭력은, 문신처럼 각인돼 평생을 지배한다. 성폭행당해 평생 불구가 된 여덟 살 소녀 나영이의 현재를 떠올리면, 그런 공포에 지배당할 남은 삶이 자꾸만 중첩돼 쿡쿡 통증이 인다.

관계공포에 시달리는 아이는, 꽃잎보다 조심스레 다뤄져야 한다. 아이의 복합적 심리 속으로 극도로 세밀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내면의 공포는 언제 폭발할 지 모른다. 전문적인 준비가 된 사람이 상대해야할 이유다. 쓰바사가 말을 잃고 극히 제한적인 행동을 보이는 건, 타자에 대한 공포가 농밀하게 쌓여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부풀어올랐기 때문이다. 그런 폭발조차, 또 짓밟힐까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5일 여성부에 따르면 이런 '꽃잎'들을 상담하는 유일한 전문기관인 해바라기 아동센터가 서울에서만 연평균 245건을 상담하고 있다. 하지만 센터는 전국에 달랑 열 곳뿐이고 예산은 턱없이 적다. 매일 스러지는 꽃 같은 아이들에게 우리의 제도가 대처하는 깜냥이 고작, 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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