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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력을 말할 때 우리의 방점은 ‘성’에 찍힌다. 그 다음은 ‘아동’이다. 어떻게 그렇게 어린 ‘아이’에게 그런 ‘성’적인 행동을 하느냐가 첫 반응이다. 이때 가장 중심이 돼야 할 ‘폭력’이란 개념은 어느덧 가려진다. 아동 성폭력에서 외부적 상처는 일부에 불과하다. 폭력에 의해 덧난 정신적 상처는, 씻기 어려운 평생의 굴레다. 8일 아동 성폭력 상담과 치료, 법률지원을 맡고 있는 서울 마포구 해바라기아동센터 김태경 임상심리전문가를 만나 우리의 선입견에 따끔한 죽비를 맞아봤다.

김태경 임상심리전문가는 해바라기아동센터 개소 때부터 상담과 치료, 법률과 수사지원을 맡아왔다. 카톨릭대 심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성폭력 피해 아동에 대한 여러 건의 논문을 썼다. 올 초엔 '진술조사의 맥락에서 본 기억과 피암시성'이라는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경찰수사연수소 외래강사로 강의도 맡고 있다. 이날 하루만 그는 세 차례나 인터뷰를 했다고 했다. 하지만 한 번 터진 말은 봇물같았다. /사진 서승희(라운드테이블)

- 성폭력의 개념부터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힘의 차이, 지식의 차이, 만족의 차이란 세 가지 지점을 살펴야 해요. 힘의 차이는 물리적 힘 혹은 정신적인 우위에 의한 격차를 말해요. 지식의 차이는 성 지식의 격차고요. 만족의 차이는 행위의 결과로 얻어지는 만족에서 한쪽이 월등하고 한쪽이 불만인 경우를 말하죠. 세 기준 중에 하나라도 격차가 생기면 성폭력으로 간주해요.

- 아이가 성폭력 피해를 당하면 부모도 당황합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요.
▲일단 스스로 놀라 있는 아이를 꼭 안아주세요. 속상하다고 야단치면 절대 안 됩니다. 아이가 살아와 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게 해주세요. 치료에 아주 중요합니다. 절대 꼬치꼬치 캐묻지 마세요. 아이의 기억이 오염될 수 있어요. 아동 성폭력은 진술을 잃으면 증거도 사라집니다. 피해 당시 옷을 빨지 말고 씻기지도 마세요. 가능한 한 증거를 보존해야 하니까요. 즉시 센터로 전화주세요. 저희는 법률지원도 합니다.

- 아동은 피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죠. 부모가 어떤 징후를 체크해야 할까요.
▲일상에서 피해의심 징후를 보입니다. 성적 관심과 행동이 증가하거나 갑자기 불안해하고 초조해지고 산만해지기도 합니다. 특정 인물에 대한 공포나 야뇨증도 생깁니다. 멀쩡하게 큰 아이가 바닥을 기는 퇴행행동도 보입니다. 피해가 의심되면 아이에게 캐묻지 말고, 센터에 연락해주세요.

- 예방교육을 위해선 어떤 게 필요할까요.
▲무조건 “싫어요, 안 돼요”라고 소리지르게 하는 건 위험합니다. 아동 성폭력범은 아이들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습니다. 칭찬하거나 불쌍한 표정으로 도와 달라며 사전답사까지 한 으슥한 곳으로 데려갑니다. 그때 소리 지르면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죠. 일단 순응하라고 하세요. 얼굴 기억하겠느냐고 물으면 모르겠다고 대답하게 하세요. 가해자 검거도 중요하지만 아이 목숨이 더 중요하니까요. 이웃이나 동네 수퍼 아줌마랑 친해두세요. 성폭력 위험이 있으면 이곳에 바로 뛰어들어가게 하세요. 애들 가방이나 팔찌에 눈에 띌 정도로 크게 이름을 써두지 마세요. 범인이 이름을 부르며 아는 사람인 척합니다. 적어도 어른은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시키세요. 어른이 도움 요청하면 “다른 어른에게 도와 달라고 하세요”라고 답하거나 무조건 도망치라고 하세요.



- 성폭력 피해 아동들은 보통 어떤 증세를 보이나요.
▲단기간 피해당한 아동은 불안, 공포, 회피, 수면장애, 식사 장애 등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보입니다. 반면 몇 년 동안 만성적으로 당한 아이는 불안은 별로 안 보이는 대신 무력감이 굉장히 진합니다. 하고 싶은 게 없느냐고 물으면, “전 할 게 없어요”라고 답합니다. 이런 아이는 가해자가 보통 친인척 등 지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엄청나겠죠. 감정 자체를 해리시켜 겉으론 밝고 명랑한데, 사건 기억이 올라오면 극도로 불행에 빠져 자해나 자살을 기도하기도 합니다.

- 어릴 때 성폭력 피해를 당한 성인 여성들은 상담으로 치유가 가능한가요.
▲저희는 아동 전문기관이지만, 성폭력상담소 같은 곳에서 전문 상담을 받으면 치유가 가능합니다. 아픈 기억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 피해 아동 치료는 어떤 방식으로 하나요.

▲7∼8세 이상으로 인지가 가능한 아이들은 사건에 대한 경험을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고통 감각을 해소하게 하는 인지행동치료를 합니다. 더 어린 아이들은 미술치료나 모래 놀이치료 등을 하고요. EMDR이라고,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도 씁니다.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보면서 기억 자체를 흐려지게 해서 외상적인 사건 경험을 소화흡수시키는 거죠.

- 센터 숫자도, 직원 숫자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2004년 개소했어요. 전국 10곳 중 6곳이 올해 개소했죠. 개소 전에는 한 달에 4∼5건 정도 예상했는데, 전화상담까지 합치면 500∼600건이 몰립니다. 상근직 9명, 파트타임 3명이 상담하고 치료하고 법률지원하고 수사지원하려니 버겁죠. 인력보강이 시급합니다.

서울 해바라기아동센터 02)3274-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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