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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인앤아웃 no.9

2008년 6월 밤. 경찰청사 지하 강당에선 머리를 바투 깎은 전·의경들이 진압복을 입고 칼잠을 잤다.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를 막기 위해 지방에서 동원된 그들에겐 숙소가 없었다. 초여름 밤 열기와 습기는 지하에서도 뜨거웠다. 모기가 진압복을 파고들어가도 그들은 침낭 하나만 깔고 금세 잠들었다. 며칠 제대로 씻지 못한 얼굴엔 땟국물이 묻어났다.

장민철(22·가명)씨는 지난해 8월 의무경찰 복무를 마쳤다. 제대 전까지 그는 뜨거웠던 2달 동안의 촛불을 바라보며 매일 광화문에 섰다. 시위대가 '명박산성'을 넘고 청와대로 가서 졸속협상에 대해 캐물으려 할 때, 그는 시위대와 경찰 지도부 사이에서 방패를 들었다. 시위대는 장씨에게 정부의 잘못을 질타했고, 경찰 지도부는 그에게 "뚫리면 죽음"이라고 명령했다. 질타와 명령 사이에서 그는 뭘 해야 옳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닭장차에서 새우잠 자면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밤이면 기계적으로 동원되는 몸을 가누기에도 숨이 막혔다"고 했다.

지난 15일 신문을 펼쳐든 장씨의 눈이 꿈틀했다. 최근 1년 동안 정부청사 공무원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단 한 차례도 먹지 않고, 전경들만 먹였다는 보도가 보였다. 진압을 나갈 때 명령권자는 "농림부 장관이 공무원들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먹인다고 했다. 시위대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설득했다. 잠이 덜 깨 몽롱한 뇌 주름 사이에 박혀 있던 그 말의 기억이 스멀스멀 토악질처럼 밀려 올라왔다. "더러운 기분이 든다"고까지 했다.

노무현 정부는 2012년까지 전·의경 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바뀌고 경찰청장이 말을 뒤집으면서, '폐지'라는 말의 기록은 기억으로만 남게 됐다. 국가 권력이 집회시위 방패막이로 전·의경을 동원해도 된다는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경찰은 전투경찰대설치법의 '치안유지' 조항을 적용했다고 주장한다. 치안유지와 집회시위 방어 사이의 간극에서 나는 접함점을 찾을 수 없었다. 떳떳지 못한 국가 권력은 체제를 고수하는 데 정당한 수단을 동원하지 못한다. 경찰병력 대신 면피로 그 자리에 선 전·의경들의 존재 어디에서 정당성을 찾아야할까.

하지만 시위대와 명령권자 사이에 '인간산성'이 된 전·의경들은, 그들이 왜 동원돼야 하는지 이유조차 물을 수 없다. 쇠고기를 먹으며 원산지는 어딘지, 왜 우리만 이 위험할지도 모를 고기를 먹어야하는지, 그들은 물을 처지가 못된다. 정규경찰을 대신해 '싸구려 알바'로 동원된 20대 초반 젊은이들을 대하는 국가의 비겁함이 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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